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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서울의 밤'을 판화로 만든, 김승연

WallytheCat 2018. 11. 20. 21:15

Others 2007/02/23 18:08 Wallythe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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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40 x 60cm ⓒ 김승연


서울 사람들에게 낯익은 풍경을 흑백사진처럼 만든 동판화다. 극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여 판화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사진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작품은 1996년 일본에서 열린 '제3회 고치 국제판화 트리엔날레'에 출품하여 상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묘사하는데 성공했다'고 수상 이유에서 밝혔으니, 이 작품과 사진에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세계'란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말하는 것일까? 

화폭을 자세히 보면 화가가 불빛을 유남히 밝게 한 곳이 있다. 화폭의 약간 왼쪽 부분의 여관 간판과 위쪽의 교회다. 화가는 전체 불빛 중 여관과 교회의 불빛을 의도적으로 밝게 함으로써, 서울에는 여관과 교회가 매우 많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아울러 '극과 극'의 모습을 깅조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그 개별적 의미 혹은 공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화가가 주제의식을 갖고 특정 부분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 묘사력이고, 그 의도적 묘사에 의한 풍경의 재창조가 사진과 '극사실 동판화'의 다른 점이다.


▲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40 x 60cm 1996년 ⓒ 김승연


김승연 화백은 90년대 초반부터 서울의 밤풍경 연작을 동판화로 만들었다. 그러나 작품이 만들어질 때 마다 보이는 풍경이 모두 다른 이유는, 화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화가는 길을 가다 만난 어느 밤풍경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해 놓고 그에 맞는 밤풍경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계속해서 밤풍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밤 풍경이 낮의 풍경보다 사실적이고 감성적 느낌이 풍부하고, 불빛 하나하나가 자기의 존재를 알리려는 아우성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밤에 보이는 풍경을 통해, 낮에 보이는 풍경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서울 시민들이 살고 있는 집은 어둡게 표현하면서 멀리 보이는 국회의사당의 불빛을 강조했다. 강변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이라는 곳이 낮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밤에 불을 켜야 보이는 곳임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화가의 날카로운 풍자가 엿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35×40cm 1995년 ⓒ 김승연


달도 별도 없이 캄캄한 밤이지만, 도시에는 불빛이 찬란하다. 그래도 골목마다의 풍경은 달라 불빛이 환한 골목이 있고 어두운 골목이 있다. 불빛이 환한 골목에는 무엇이 모여있는 것일까?

유난히 하얀 빌딩, 밝은 창문, 번화한 불빛, 유흥가 불빛, 강렬한 수은등 같은 것들이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클로즈업되곤 합니다. -화가와의 인터뷰 <공간> 96년 2월호-

화가는 서울의 밤을 그렇게 파악하고, 골목 골목 가득하지만 낮에는 보이지 않는 술집과 노래방과 기타등등의 유흥시설들을 유난히도 밝은 불빛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수많은 불빛을 하나 하나 묘사해야하는 극사실 기법의 동판화 작업은 극도의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화가의 체질에 맞아야 할 수 있는 작업이고, 김승연 화백의 경우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한달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동판화 작업을 하는 화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그의 각고의 노력은 1993년 세계 최고 권위의 판화비엔날레인 루블리아나 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 미국의 유명 판화가 프랭크 스텔라에 이어 차석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주최측에서는 부상으로 유럽순회전을 주선하였고, 대영박물관에서도 그의 작품을 구입하여 소장했다. 판화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진 화가라고 할 수 있다.


▲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30 x 40cm 1997년 ⓒ 김승연


서울의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자동차의 물결이다. 왼쪽에 차선을 바꾸는 자동차를 보여줌으로써 서울에 만연해 있는 '곡예운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왼편에 '비디오방' 간판을 슬쩍 보여주면서 또 하나의 '밤 문화'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오른편의 '약' 간판을 통해 상당수의 서울 사람들이 약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동차와 '밤 문화'와 약, 사실 이 세가지가 서울의 밤을 움직이는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집에 가기 위해서도 차를 타고, 업무상 접대를 위해서도 차를 타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간단하게 한잔 하기 위해서도 차를 탄다. 그러니 서울의 밤 도로에는 차가 넘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서울의 교통사고 발생율은 매우 높다.

약 역시 서울 시민들이 매우 '애용'하는 품목이다. 운전기사들은 피곤을 풀기 위해 약국에 들러 피로회복 드링크를 사고, 직장인들은 소화제, 두통약 등을 사서 드링크제와 함께 마시고,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속이 쓰려서, 머리가 아퍼서 그리고 피임용품을 사기 위해 약국엘 들리니, 밤거리에서 약국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서울의 '밤 문화'는 너무 일반화되어 있고 그 종류 또한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아니, 서울만큼 '밤 문화'가 발달한 곳이 어디에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아침이면 모두들 정상적으로 출근하여 열심히 일을 하니, 서울의 '밤문화'는 사회학적 연구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49 x 39cm 2002년 ⓒ 김승연


영화나 연속극에서 남편과 아내가 포장마차를 끌고 가는 장면이 떠오르는 동네다. 화가는 서울의 불빛을 바라보며, 화려한 곳의 불빛 보다는 이렇게 덜 화려한 곳의 불빛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화려한 불빛은 풍자적으로 바라보았고, 덜 화려한 곳의 불빛에서는 쓸쓸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기에 불빛의 밝기가 잔잔하다. 왼쪽 서민 아파트 아래에 세워져있는 커다란 짐차를 통해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암시했고, 오른쪽에 보이는 난간을 가로등 불빛아래서 하얗게 빛나게 함으로써, 이 세상에는 '의지할 수 있는 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서민적 삶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은 아래의 작품에서 더욱 확실히 보여진다.


▲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30 x 40cm 1997년 ⓒ 김승연


피곤한 하루가 끝난 후 올라가야 하는 언덕길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쓸쓸하고 어둑한 언덕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군데군데 주차된 소형 자동차들 통해 이 언덕길에 사는 사람들이 서민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서민적 삶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화가는 언덕길 동네 창문에는 불이 다 꺼져있지만 아래 동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있게 묘사했다.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서민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서울에는 이런 언덕길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60-70년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골목 형태였고, 그래서 많은 중장년층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동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그리고 저녁밥을 먹고 나면 이런 골목에서 모여 놀았다. 남자 아이들은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하다 싸움을 해서 어른 싸움으로 확대시키기도 했고, 여자 아이들은 공기놀이와 줄넘기를 하다 사내 아이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울음을 터트리던 곳이 바로 이런 언덕길, 골목길이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아이들은 신문이나 종이 봉지를 깔고 미끄럼을 타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출퇴근하는 남편이 미끄러지지 않게 타고 남은 연탄을 덩어리채 길바닥에 던졌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정겨운 모습은 사라지고 이웃에 누가 사는지 조차 모르는 세상이 되었으니, 화가는 언덕길을 통해 서민들의 삶의 단면과 사라진 골목의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 김승연 메조틴트(동판화) 55×75cm 2004년 ⓒ 김승연


서울의 밤 하늘 아래에 밝게 켜진 불빛 속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공존한다. 그래서 화가는 불이 환하게 켜진 남산타워에서 서울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묻는다. 당신은 이 불빛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김승연은 그런 화가다. 있는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극사실적인 표현을 하면서도, 보는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작품을 만드는 화가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는 깊고, 작품을 바라다보면
'블랙홀'로 빠져들어 가는 듯 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화가 김승연의 작가적 능력이고, 그의 작품이 세계에서 인정 받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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