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이웃집 여자 2
WallytheCat
2018. 11. 21. 17:31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3/25 06:18 WallytheCat
어제와 오늘, 차마 구질구질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지도 않은 일상을 겪었다. 살다 보면 종종, 색깔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그 구질구질한 느낌은 비슷할, 그렇고 그런 일이라 치부하려 하지만, 이미 온통 머릿속에 꽉 들어찬 것들을 밀어내고 털어내는 데는 명상 내지 육신을 노곤하게 만드는 노동같은 게 필요하다 싶었다.
명상은 세상이 다 잠든, 혹은 잠든 척하는 밤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집앞의 마당을 좀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해보려고 꽃가위와 청소도구 따위를 들고 나섰다. 해가 저물 무렵, 땀을 흘리며 노동이란 걸 하니 역시나 머릿속이 좀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 때, 난데없이 어디선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듯한 사람의, 비음이 잔뜩 섞여 끝을 길게 늘여 빼는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하더니 내 곁으로 가까이 온다. 아뿔싸, 옆집 여자다.
이집트 여행은 잘 다녀왔느냐는 내 물음에, 나 같으면 한 마디로 '잘 다녀왔다'로 끝낼 일을, 세부 설명에 강한 여자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해서 카이로, 그리고 룩소에 가서 얼마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다. 지난 몇 년 간, 암에 걸려 휴가만 맞으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던 자기는 순수하게 여행을 했던 이번의 휴가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필요했던 일인지 모른다며, 묻지도 않은 병력까지 이야기에 보탠다. 그렇게 많이 아팠다는데야, 어찌 그녀의 이야기를 야멸차게 막을 수 있겠나. 여자는 어찌 그리 큰 일을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목소리 톤도 바꾸지 않고 술술 내뱉어 버릴 수 있는 것인지.
여기까지는 사실 별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다음의 더 충격적인 이야기에 비하면.
여자가 여행을 떠나있던 일주일 동안, 그러니까 내가 며칠 전 여자와 여자의 개들에 대해 내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수다를 떨고 있던 사이, 여자의 세 마리 개 중 어미개가, 열여섯 살 된 어미개가 죽었다는 거다, 물론 노환으로. 개를 돌봐주던 사람이 죽은 개를 곱게 천으로 싸서 이웃집 사람들과 함께 여자의 뒷마당 구석을 파서 묻었다고 한다. 나머지 개들은, 이해할 수 없던 그 어미개의 실종을 '울부짖음'으로 대신했던 거고.
여자는, 자기가 없는 동안 자기 개들이 많이 울부짖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사과까지 한다. 나는 순간, 아주 몹쓸 이웃이었던 양 민망함을 느낀다. 사실 몹쓸 이웃이었다. 그 개들이 목청 높여 울부짖을 때, '이 아랍엔 개장수도 없냐'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파서 죽은 게 아니고, 노환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나는 여자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이러면서 드라마의 반전이 이루어진다던가. 그러면서 은근슬쩍, 이웃집 여자와 나 사이에 놓인 벽 하나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으~, 이건 또 뭐여. 내가 전혀 바라는 바는 아닌 것 같은디.
게다가, 얘기를 나누는 중에 문득 바라보니 여자는 백포도주로 가득 채워진 포도주잔을 하나 들고 있다. 유리잔에 든 술이 차가운지 유리잔에는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혀 있다. 집 밖에서 그리 당당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여기 살며 처음 본다.
내가 아무리 선을 그으며 내 경계임을 소리없이 소리쳐도, 여자는 이미 내 옆에 그렇게 와 있었다. 그 다음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자 집에서건 내 집에서건 여자와 내가 각각 포도주잔을 하나씩 들고선 각자 떠들고 싶은 이야기를 떠들고 있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덕분에 말이다. 직장에서 벌어진 내 머릿속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다 털려나가고, 그 대신, 노환으로 세상을 하직한 옆집 어미개의 추모 만이 경건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냥 피식 웃는다. 마치 여자가 내게, 너 나만큼 살아봐라, 그러면 세상에 경계할 것도 의심할 것도, 또 그리 두려워할 것도 없게 될 것이라고 한 마디 내뱉은 것만 같아서.
명상은 세상이 다 잠든, 혹은 잠든 척하는 밤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집앞의 마당을 좀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해보려고 꽃가위와 청소도구 따위를 들고 나섰다. 해가 저물 무렵, 땀을 흘리며 노동이란 걸 하니 역시나 머릿속이 좀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 때, 난데없이 어디선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듯한 사람의, 비음이 잔뜩 섞여 끝을 길게 늘여 빼는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하더니 내 곁으로 가까이 온다. 아뿔싸, 옆집 여자다.
이집트 여행은 잘 다녀왔느냐는 내 물음에, 나 같으면 한 마디로 '잘 다녀왔다'로 끝낼 일을, 세부 설명에 강한 여자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해서 카이로, 그리고 룩소에 가서 얼마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다. 지난 몇 년 간, 암에 걸려 휴가만 맞으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던 자기는 순수하게 여행을 했던 이번의 휴가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필요했던 일인지 모른다며, 묻지도 않은 병력까지 이야기에 보탠다. 그렇게 많이 아팠다는데야, 어찌 그녀의 이야기를 야멸차게 막을 수 있겠나. 여자는 어찌 그리 큰 일을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목소리 톤도 바꾸지 않고 술술 내뱉어 버릴 수 있는 것인지.
여기까지는 사실 별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다음의 더 충격적인 이야기에 비하면.
여자가 여행을 떠나있던 일주일 동안, 그러니까 내가 며칠 전 여자와 여자의 개들에 대해 내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수다를 떨고 있던 사이, 여자의 세 마리 개 중 어미개가, 열여섯 살 된 어미개가 죽었다는 거다, 물론 노환으로. 개를 돌봐주던 사람이 죽은 개를 곱게 천으로 싸서 이웃집 사람들과 함께 여자의 뒷마당 구석을 파서 묻었다고 한다. 나머지 개들은, 이해할 수 없던 그 어미개의 실종을 '울부짖음'으로 대신했던 거고.
여자는, 자기가 없는 동안 자기 개들이 많이 울부짖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사과까지 한다. 나는 순간, 아주 몹쓸 이웃이었던 양 민망함을 느낀다. 사실 몹쓸 이웃이었다. 그 개들이 목청 높여 울부짖을 때, '이 아랍엔 개장수도 없냐'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파서 죽은 게 아니고, 노환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나는 여자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이러면서 드라마의 반전이 이루어진다던가. 그러면서 은근슬쩍, 이웃집 여자와 나 사이에 놓인 벽 하나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으~, 이건 또 뭐여. 내가 전혀 바라는 바는 아닌 것 같은디.
게다가, 얘기를 나누는 중에 문득 바라보니 여자는 백포도주로 가득 채워진 포도주잔을 하나 들고 있다. 유리잔에 든 술이 차가운지 유리잔에는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혀 있다. 집 밖에서 그리 당당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여기 살며 처음 본다.
내가 아무리 선을 그으며 내 경계임을 소리없이 소리쳐도, 여자는 이미 내 옆에 그렇게 와 있었다. 그 다음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자 집에서건 내 집에서건 여자와 내가 각각 포도주잔을 하나씩 들고선 각자 떠들고 싶은 이야기를 떠들고 있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덕분에 말이다. 직장에서 벌어진 내 머릿속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다 털려나가고, 그 대신, 노환으로 세상을 하직한 옆집 어미개의 추모 만이 경건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냥 피식 웃는다. 마치 여자가 내게, 너 나만큼 살아봐라, 그러면 세상에 경계할 것도 의심할 것도, 또 그리 두려워할 것도 없게 될 것이라고 한 마디 내뱉은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