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땡땡이 치다

WallytheCat 2018. 11. 22. 00:10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9/03/05 04:46 WallytheCat


평일 아침, 오랜만에 바깥 세상 구경을 한다. 병원에 간다고 하고, 아침에 학교 방향이 아니라 정반대 방향으로 운전해 떠나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 가야했던 건 사실이었다. 단지 그 다음에 일어날 사건, 병원서 친구를 만난 후 아점이든 점심이든 느긋하게 먹으며, 아예 회포까지 풀고 오후에 귀학교 하겠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빼먹은 것 뿐이다.

내 진료가 끝나고 친구의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햇빛 찬란한 창밖 좁은 골목길을 내다보자니, 내가 발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일까 잠시 궁금해진다. 길을 잃어 조금 헤매는 듯은 하지만, 어쨌거나 어디엔가 서 있는 중이렷다.  

오래 된 건물이건 새로 막 지어진 건물이건 풀석거리는 모래 먼지를 홈빡 뒤집어쓰니, 선택의 여지 없이 모두가 '흐린 빛' 한 가지 만을 내고 있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지면 모래 먼지를 모조리 쓸어내려 반짝반짝 본래의 건물 모습을 한번쯤은 되찾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사막의 봄날 아침, 이 무슨 무리한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 보니, 잔뜩 얼룩져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게 하지 않는 의자들이, 그 의자에 주저 앉아 삼십여 분도 넘게 전화로 수다를 떠는 스무 살 리셉셔니스트의 나른함과 게으름 가득한 얼굴 표정이, 한 때 누군가 열과 성을 다하여 만들었을 그러나 지금 당장 내다 버린다 해도 조금도 아쉬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다탁 위의 유리 공예 화분 한 점이, 이 년 전에도 분명 보았을 법한 낡아빠진 2006년도 의료 잡지 더미들이, 족히 십 년은 목욕 안 한 사막 귀신 머리 같은 바닥 깔개가, 한 눈에 든다. 그것이 현실이다. 한치의 여지도, 여과도 없이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내어지는 그런 것이.  

잠시 자리를 비운 학교는 몇 가지 작은 사건이 벌어져 삐그덕거리긴 하지만 며칠 지나 학생들과 대화로 중재해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거라 보인다. 꿈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이미 두 번째의 땡땡이를 꿈꾼다.




<Wednesday 3/4/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