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리네 솔숲
Peeping@theWorld/Days in Ohio 2009/09/14 02:13 WallytheCat
'여름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 이란 표현은 곧 '아랍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이란 의미와 동일하다. 이 때가 되면 그저 한 것도 없이 훌쩍 지나가 버린 듯한 여름 전체가 아쉬워진다. 쉬는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여름을 통째로 도둑 맞은 기분까지 든다.
이제는 이 초록빛을 한동안 볼 수 없겠구나. 창밖으로 쏟아지곤 하던 비는 어떻고? 여름 밤 내내 지잉징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도, 부엌 창앞을 종일 들락거리는 홍관조(cardinal)도, 콩새(finch)도, 벌새도 내년 여름에나 볼 수 있겠구나. 청승 떨듯, 두고 가는 별 것들이 헤어지기 전부터 미리 다 그리워진다.
이번 여름에는 특히나 그런 마음이 더 들었다. 아마도 아랍에서 너무 오래 살았던 모양이다. 보통 한 곳에 머물러 사오년쯤 되면 갑갑증이 일기 시작해 변화를 물색하곤 하는데, 아랍에서 팔년을 넘게 살았으니 한 곳에서 오래 살긴 오래 살았다.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을 산더미 같은 일, 학기 시작과 함께 시작될 라마단 기간, 여름내 잊고 지냈던 아랍풍 학교와 그 풍습... 왜 그것들은 여름내내 한치도 그립지 않았던 걸까. 당연한 우문 같지만 내 지금 삶에서 한 번쯤 되짚어 볼 문제인 듯도 싶다. 잠시 숙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떠날 때가 되었으니 주위 어른들께 인사를 해야한다. 늙으신 시아버님과 고양이 나이로 치자면 시아버님과 비슷한 연배가 될 왈리에게 들러 내년 여름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란다는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시아버님은 헤어지실 때마다 "내년 여름에 내가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다"시며 슬픈 표정을 과장해 보이신다. 예전에는 같이 슬퍼하며 눈물도 찍었지만, 이제는 그런 말씀에 안 속는다. 내년 여름이 되어 이 자리에 돌아오면, 왈리도 시아버님도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날, 섭씨 사십도 가까이 되는 한낮에 왈리가 사는 집 숲을 거닐었다. 그 숲 한쪽에 이런 솔숲이 있다. 시누이는,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입학할 즈음 베어내 학자금에 보탤 요량으로, 아이들이 어릴 때 이 소나무 수천 그루를 심었다 했다.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가야했을 때는 이미 소나무가 그리 인기있는 목재가 아닌 시절로 변해 버린 탓에 이 나무들을 베어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두 아이 중 하나는 학사, 석사, 박사 학위 받을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은 덕에 학비를 염려할 필요조차 없었으니, 이 숲 소나무들은 덩달아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나무들이 건강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솔잎들이 모두 떨어진 게 상태가 좀 나빠 보인다. 너무 자라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해 그런가. 내년에는 이 솔잎들도 다시 무성해지기를...
<Sunday 8/9/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