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첫비

WallytheCat 2018. 11. 22. 00:17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9/12/11 20:45 WallytheCat


2009년 12월 9일. 밤 사이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구멍 뚫린 이상한 디자인의 차고 지붕 아래 놓인 자동차의 몸통 전체가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 걸 보고 짐작한 일이다. 출근길 도로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보이는 것도 비 온 후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니, 그걸로 한 번 더 비가 왔음을 짐작한다. 모르긴 몰라도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린 비였을 텐데, 밤새 소리소문없이 내리고 가버리다니, 그저 안타깝고 아쉽다.  

장장 내리 열 시간 수업을 하고, 오밤중에 귀가를 하며 비장하게 마음을 먹는다, 수업도 없는 다음 날은 하루 집에서 죽치기로. 자명종 끄고 실컷 자고 일어날 것, 학교에서 걸려올 전화를 대비해 손전화기 꺼 버릴 것, 그리고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

다음 날 아침에도 창밖에 전 날 같은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 사이 비가 왔던 흔적만 또 한 번 훑는다. 전혀 이곳답지 않게 날도 제법 흐려 있다. 낮 동안 비가 좀 오려나. 일단은 그저 아침 커피를 오래오래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일이라면, 일삼아 그 일만 하기로 마음먹고 느릿느릿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 간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맛있는 손맛으로 커피 끓여주는 사람이 출근해버리고 없는 게 좀 아쉽다고 생각하며. 커피 기계에 다 준비해 놓았으니, 단추만 눌러 끓이라는 배려까지 만나는 행운의 아침일 줄이야...



그리곤 내내 창밖의 나무 그림자에만 시선을 좇다 하루해를 다 보냈다. 놀기로 한 날은 왜 그리 시간이 더 잘 가는지. 


<Thursday 12/10/2009>



첫비 내린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 지금... 창밖으로 간간히 비오는 게 보인다. 빗소리도 들린다. 간절한 염원이 드디어 이루어지는가 보다. 이만하면 이제 에어콘은 끄고, 창문만 열고 살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