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펜트하우스로 가는 길

WallytheCat 2018. 11. 24. 21:40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12/02/05 04:20 WallytheCat


스리랑카, 우나와투나 4: 펜트하우스로 가는 길
사고가 난 지점에서 한 시간쯤 멈추어 있었다. 그 이후, 한 시간을 더 달려 우나와투나에 도착했다. 내 일행의 짐을 옮겨주기 위해 나타난 네다섯 명의 장정 속에 그 간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을 취해 목소리가 익숙한 안톤 씨가 차창에 얼굴을 보이며 인사를 한다. 목소리를 통해 상상하던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왠지 그가 키도 덩치도 큰 은퇴한 갱단 두목쯤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졌으리라 상상했는데, 얼굴은 조막만한데다 호리호리한, 그리 크지 않은 모습이다. 여지껏 살며 갱단 두목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은퇴한 갱단 두목이 그런 외모를 가졌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진 것은 순전히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 아닌가 싶다.

그들 뿐 아니라 자동차 사고 소식을 듣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있는 모양으로 골목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렇게 해서 그 동네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모두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괜찮은지를 물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관심과 염려 덕에 좀 놀라고 감동했다. 세 사람의 짐이 가방 다섯 개인 걸 보고는, 무슨 짐이 그리 많은가 싶어, 그들도 놀란 눈치다. 혹시나 싶어 가방 두세 개에 먹을거리를 챙겨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해변 바로 옆 길가에 숙소가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차에서 내려 골목길을 좌로 우로 방향을 틀며 제법 많이 걸어 들어가더니, 급기야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큼 길이 좁아져 밖에서 보면 전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길 안으로 들어서는 거다. 그리고는 끝없어 보이는 계단으로 계속 데리고 올라갔다. 이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어, 숙소를 혼자 알아서 처리한 내 머릿속이 헤집어 놓은 듯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바닥부터 우리가 묵을 숙소까지 모두 아흔두 개의 계단이 있다는 거다. 건축가인 친구가 한 층의 계단이 대략 스무 개쯤 되니, 올라갈 길이 대략 오층의 높이쯤 되는 것이란 계산을 해준다.









<빼먹은 계단 사진도 있을지 모르지만, 위에 보이는 사진들이 골목부터 꼭대기층까지의 92개 계단들이다.>


계단 문제는 처음 한두 번만 심란했지, 곧 익숙해졌다. 짐도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올려다 주었으니 힘을 그리 쓴 일도 없다. 계단 주위에 잘 꾸며 놓은 정원을 둘러보며, 운동삼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도 있었다. 큰 맥주 열다섯 병을 시내에서 사서는 나누어 들고 올라갈 때 숨이 차기는 했지만, 그건 단 한 번 있던 일이었다.

말 그대로 펜트하우스인 숙소 맨 꼭대기층에 오르니, 경치는 우나와투나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더할 나위없이 장관이다. 이 계단 때문에 거동이 힘든 노약자나 어린이는 손님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아흔둘의 계단을 오른 후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우나와투나 전체 풍경을 발아래로 펼쳐 보이는 발코니가 먼저 반긴다.




이 집의 쥔장은 안톤 씨다. 안톤 씨의 말로는 이 집을 짓기 시작해서 삼 년 걸려 이천오 년에 끝냈다고 했던 것 같다. 이 집이 앉아있는 전체 그림을 그려 보자면, 화강암 바위산 거의 꼭대기쯤에 집 여러 채의 높이를 달리해 요새처럼 들어 앉혔다. 안톤 씨의 말로는 자기의 오랜 친구(작고하심)의 사위 되는 남자(여러 집 중 한 집에서 부부가 산다)가 이 집들을 지었다고 했다. 그는 건축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본시 이런저런 재주가 많았던 사람인데 안톤 씨가 이 집을 지으라고 맡긴 후 삼 년 간 집짓는 일에 관한 모든 것을 혼자 고민하며 지어냈다 했다. 안톤 씨는 그가 집을 짓던 삼 년 간, 벽 표면 재료를 근방에서 나는 산호로 해달라는 주문, 전등빛이 사람 눈에 직접 비쳐 부시게 하지 않도록 갓을 깊게 해 달라는 주문, 그리고 다 지은 건물의 화장실이 너무 협소하다는 등의 몇 가지 불평 외에는 전혀 간섭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다 맡겼다고 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었을 때, 여행을 같이 간 건축가인 내 친구는, 전문가인 본인의 눈으로 볼 때 상당히 세심하게 잘 지어진 집이고, 그렇게 건축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뚝딱뚝딱 지은 집이 아니라며, 집 지은 일에 관한한 뭔가 석연찮게 숨기는 게 있는 모양이라는 의심을 했다. 며칠 후 집을 지었다는 그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되어 집 지을 때 이야기를 조목조목 들어보고는, 그 사람이 정말로 집을 지은 당사자인 걸 믿게 되었다며 몹시 흥분을 한다. 학교 교육 없이 타고난 재능을 풀어가며 집을 튼튼하게 지어낸 진정한 장인과 먹물 먹은 '전문가'의 대화가 이루어져 의심과 오해를 풀게 되어 나도 기쁘다. 타고난 재주꾼으로부터 먹물도 한 수 배웠으리라.

팔 일 간 이 집에 묵으며, 시간 나는 대로 집의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집 지은 사람이 작업을 할 때 느꼈을 행복이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갈, 산호 등으로 장식한 어느 벽 하나 같은 그림이 없다. 안톤 씨도 아직까지 매번 볼 때마다 새로운 무늬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또 집 지은이가 각진 모서리를 선호하지 않아서, 문틀 외의 거의 모든 모퉁이나 모서리가 둥글다.

물론 여러 군데 문제점은 보인다. 방마다 방충망 없이 창문 위 벽에 들창을 예쁜 무늬로 뚫어 놓아 유리로 된 창문을 닫아도 그 위 들창으로 모기, 도마뱀 등이 실내로 자유로이 드나드니, 엄밀히 따지면 방안에서 잔다기 보다 밖과 연결된 공간에서 캠핑을 하는 모양새가 되는 거다. 엉성한 부엌도 문제가 많았지만, 자리잡고 살아갈 집이 아니니 굳이 트집잡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 꼭대기층이라 한낮이면 지붕이 열을 받아 집 전체가 무척 더워지는데, 집 어느 공간에도 냉방장치가 없다. 이 점은, 다양한 곳에서 이곳으로 와 잠시 묵는 사람들한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점이라 본다. 냉방비가 문제라면 숙박료에 냉방비를 감안해 지불하게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싶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방마다 방충망 설치는 해달라고, 떠나기 전 안톤 씨께 부탁을 했다.

큰 침실의 모습이다. 나무로 바닥을 깔고, 벽에는 자갈을 붙이고 흰색으로 칠해 마무리를 하였다. 자연목을 구불구불 생긴 형태 그대로 쓴 간결한 나무 가구들이 군데군데 놓였는데, 이 집안에 있는 모든 가구는 집지을 때 같이 만든 것들이란다. 따뜻한 나무 가구들이 운치 있고 정겹다. 






친구가 묵던 옆방은 침실이라기 보다 거실로 보인다. 계단을 수십 개 더 올라야 있는 목욕탕 달린 골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혼자 올라가 묵고 싶지 않다고 해서 거실에 침대를 옮겨와 이 방에서 지냈다. 





친구가 묵었던 거실에 달린 화장실이다. 샤워나 목욕은 할 수 없는 반쪽짜리 화장실인데, 세면대가 달린 벽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면 마치 바닷속 풍경 일부를 옮겨다 놓은 듯 흥미진진하다. 




이 집을 다 지었을 때 안톤 씨가 집 지은이에게 화장실(이걸 본시 목욕탕으로 지었던 모양)이 너무 작아 문제라고 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방법을 찾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다 지은 집 옆에 새로 목욕탕 건물을 지어서는 두 건물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나.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는 거대한 목욕탕이, 그 오른쪽에는 부엌이 있다. 자쿠지(jacuzzi)를 겸한 욕조인 모양인데, 이 거대한 욕조에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채워야 할까 싶어 단 한 번도 목욕을 하지는 않았다. 낮에 너무 더워지면 이 욕조 안에 들어가 편편한 돌 위에 빨래감을 올려 거의 매일 찬물로 빨래를 하는 걸로 더위를 식히곤 했는데, 빨래를 그렇게 하니 옛날 시골 외가에 가 냇가에서 빨래하던 여름날이 생각나, 재미있었다.



부엌이다. 전자 레인지나 토스터 같은 것도 없이 소박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빵을 석쇠에 굽고, 커피를 끓여,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아침식사 한 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 저녁으로 스파게티도 한 번 만들었는데 어찌나 부엌 안이 더워지던지, 휴가 와서 이 무슨 생고생이냐 싶어 그 다음부터는 점심이나 저녁 요리는 집에서 하지 않고, 싸가지고 간 음식 재료는 다 나눠주거나 남겨두고 왔다. 맥주도 열다섯 병을 사 들고 올라와서는 다 마시지 못하고 일곱 병은 냉장고에 남기고 왔다. 






이른 아침이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당을 쓸고, 정원 가꾸는 일을 몇 시간씩 하는 안톤 씨가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보았다기 보다 주로 호주식 영어로 말하는 그의 수다스런 목소리만 들릴 때가 많았다. 원래 네덜란드 사람인데 나이 열일곱 때 호주로 이민을 갔단다.

정원 구석구석마다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아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당 구석에 파란색을 칠한 작은 배 한 척이 놓여 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안톤 씨가 돌아가시면, 이 집을 친구 딸 내외에게 남기고, 묻힐 자리란다. 안톤 씨가 음주와 흡연을 하신다고는 하지만 아직 육십대 중반의 건강한 분이라 그리 금방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은데 벌써부터 죽음 후 일을 다 계획해 놓으셨나 보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삼십 년도 더 넘게 사실 것 같으니,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집 받으려고 기다리자면 무척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다. 






<1/20-1/28/2012, Unawatuna, Sri Lanka>



*펜트하우스(Penthouse on the Rocks) 숙박료: 꼭대기층 전체 일박에 미화 120달러
*사진은 클릭하면 좀 더 크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