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이라더니...
Peeping@theWorld/Days in Ohio 2006/06/27 21:09 WallytheCat
미국서 7월 4일은 독립 기념일이라 공휴일. 사람들은 공원이나 집 뒷마당에서 바베큐를 해 먹으며 놀다가 밤이 되면 폭죽을 터뜨리며 놀기도 하고, 큰 도시라면 시 주최로 불꽃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가뭄이 심해 건조해진 지역 등은 폭죽놀이를 금지하기도 하고, 그와 상관없이 화재의 위험 때문에, 지역에 따라 폭죽 자체가 법으로 금지된 데도 있더군요.
때는 작년 7월 4일, 산 좋고 물 맑은 미국 오하이오 주, 나즈막한 산 위에 있는 어느 시골 집에서 있던 이야기입니다. 그 때 마침 저희도 초대되어 그 집에 가서 햄버거니 소시지 등을 구워 먹으며 오후부터 놀았습니다. 저녁엔 주인 아저씨께서, 모두 모인 김에, 한 삼 년 마당을 정리하며 모아둔 나뭇가지 등을 태워 모닥불을 피우겠다고 해서 모두들 좋아하며 기대하고 있었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불 피우면 재미있어 하니까요.
드디어 저녁 때가 되어 어스름해지기 시작하자 주인 아저씨 팀(Tim)은 불을 피우기로 합니다. 손님들도 모두 따라 나섰습니다. 한 이틀 전 비도 오고 해서 산불 염려도 없고, 산에 있는 그 집을 짓고 사신 이래 사십 년 간 하신 일이라니 염려같은 건 하지 않았지요.
언덕을 조금 내려가 보니 모아 놓은 나뭇가지가 제법 많아 보였습니다.
팀 아저씨는 거기에 휘발유인지를 조금 끼얹더군요. 그리고 불을 당기니 붙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둘러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피우는 자그마하고 로맨틱한 모닥불을 기대했는데, 이게 웬걸, 불길이 저 하늘높이 솟아 타오르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큰 모닥불은 본 적이 없어서 저도 은근히 걱정은 했지만, 집 주인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싶어 멀찌감치 서서 구경만 했습니다.
멀리 서부 아리조나, 피닉스에서 휴가차 이곳으로 온 손님 가족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가뭄으로 큰 산불이 나 피해를 본 걸 뉴스에서 하도 본지라 몹시 놀랐던지, 그 집 아저씨, 모기 들어가기 좋을만 하게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를 못하더군요. 안절부절 못 하고 한참을 서성거렸던 건 당연한 일이구요. 그 동네 사는 시골 분들이, "여기선 늘 저렇게 하니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달래서 억지로 의자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덩치만 큰 겁쟁이 아저씨 같으니라구...
그러고 있는데 자갈길에 소음을 내며 웬 차가 이 집 산길을 돌아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안 하고 불을 냈더니 어떻게 알고 찾아 왔구나 싶어 걱정이 좀 되더군요. 다행히도 경찰차는 아니었습니다. 산 밖 저 멀리 고속도로를 지나다 산 불이 난 것 같아 불 끄는 걸 도와주려고 달려 왔다는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친절하기도 하지. 불길이 하도 높이 치솟아 길에서도 보인 모양입니다. 그 사람들한테도 "별 일 아니니 걱정말고 가던 길 가라"며 달래서 보내더군요.
아뭏든 저녁 6시도 안 되어 시작한 이 불 구경이, 물론 뜨거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야 했지요, 새벽 1시까지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이길래 저는 먼저 들어가서 잠을 청하기로 합니다. 불은 그 다음 날 오전까지도 자작자작 타고 있더군요.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요. 그 때까지도 산더미같은 잿더미가 뜨거워서 접근이 쉽지 않았습니다.
뭐든 불에 구워먹는 원시인의 습성이 그대로 남은 저는 그 잿더미를 그냥 두는 게 몹시 아까운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 감자랑 고구마를 사 오게 했지요. 그 집 냉동고에, 이웃 농장 아이들이 팔러 왔을 때 사 둔, 놓아 먹여 키운 닭도 큰 게 두 마리 있다고 했습니다. 그걸 좀 녹여 아쉬운 대로 양파, 파, 마늘 따위를 뱃속에 채워 넣어 알루미늄 호일로 단단하게 몇 겹 싸서 그 잿더미에 묻었습니다. 재가 뜨거우니 감자와 고구마는 삼십 분 내로 맛있게 익어 모두들 호호 불며 먹고, 닭은 한 시간 반 정도 되니 속까지 다 익더군요. 그 음식을 늦은 점심으로 배불리 먹으며 덕분에 전 천재적인 요리사란 소리도 태어나 처음으로 들어 봤습니다. 예전에 도자기 굽는 친구들이 꼭 닭을 그렇게 몇 마리 가마에 넣어 도자기랑 같이 구웠는데,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게 맛있다더라 어쩌구 자랑을 해대서 저도 꼭 한 번 그렇게 해 보고 싶던 차에 팀 아저씨 덕분에 늦게나마 소원풀이 한 셈이죠?
아뭏든 불 구경 한 번 잘 했습니다. 그 큰 불에 겨우 닭 두 마리, 감자랑 고구마 몇 개 구워 내다니... 아직도 그 불이 좀 아깝습니다. 생각 난 김에 오늘 저녁 불에다 뭘 좀 구워 먹어 볼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