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2: 레몬 산에 가자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6/07/04 06:15 WallytheCat
아무튼 그 당시 내 첫 타향살이를 그럭저럭 버티게 해준 건 투산시 가까이에 카타리나 산들이 있고,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레몬 산(Mt. Lemmon)이 있어서였다. 그 산은 9,000 피트 그러니까 2,743 미터 높이의 산이다.
이 산을 들여다 보면 참 흥미롭다. 산 초입에는 마치 전봇대를 꽂아 놓은 듯 수없이 많은 기둥선인장(Saguaro)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5월이면 (지금 기억에 그렇다) 그 꼭대기 마다마다에 흰꽃들이 환하게 핀다. 물론 다른 선인장들도 동시에 화려하기 짝이 없는 꽃들을 피운다.
운전해서 계속 산을 오르다 보면 식물의 종류가 달라져 가는 게 눈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오르는 길이야 골짜기 옆에 붙어 올라가니 무섭지 않지만, 나중에 내려갈 때(특히 밤에)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은 오른쪽이 툭 떨어진 낭떠러지 길이라 조마조마하다. 정상에 가까워지면, 마치 사막이 아니라는 듯, 선인장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침엽수들로 가득해져, 그 풍경이 초입과는 사뭇 다르다. 정상 골짜기에는 스키장과 더불어 숙박 시설들, 식당, 까페 등이 있다. 한 여름에 이 산에 가면 정말 시원하다. 겨울에 오르면, 남부 아리조나에서는 드문 눈 구경도 하고 스키도 탈 수 있다. 해질 때와 시간을 맞춰 산 중턱쯤에 있는 바위 무더기 위에 앉아 보는 사막의 지는 해는 매번 다른 모습의 장엄함을 보여주곤 했다.
나는 왜 사막에 살며 또 다른 사막을 그리워 하는가. 이게 몹쓸 정신병이 아니라면, 아마도 내 안에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의문에 대한 답이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걸까 기대도 좀 해 본다. 또 가고 싶어서...
기둥선인장(사구아로 혹은 사와로)은 아리조나 남부, 캘리포니아 일부, 멕시코 일부 정도에만 서식한다고 한다. 이 사진들의 분위기에서 제대로 읽혀질 시인 홍은택 선생의 시 한 편을 소개하기로 한다.
사막에, 패스워드처럼 떨어지는 빗방울 서넛
기둥선인장의 밑둥치가 후드득 잠을 깬다
긴장의 미세한 울림이 모래 덮인 기억의 지표면을 따라
나노 초 동안 팔방으로 반경 27.5m를 뻗어간다
펼쳐지는 둥글고 거대한 신경망, 원의 끝을 오므려
010001101 빗물로 스미는 초록의 메시지를 수신한다
빗물 한 방울만 놓쳐도 초록의 회로가 닫혀 폐허가 되는
사막에, 빗방울로 떨어지는 패스워드를 향해
기억의 소자(素子)들이 한껏 입 벌리고 회로 끝까지 달려가는
사막에, 네 눈물처럼 떨어지는 별똥별 서넛
내 몸 속의 신경회로가 후드득 잠을 깬다
손상된 피톨들이 절룩이며 막다른 골목까지 달려가는
매트릭스, 사랑이며 절망인 내 거대한 뿌리
<궁금한 사연 한 가지: 현대 자동차 이름이 왜 세도나(Sedona)니 투산(Tucson) 등의 아리조나 지명들인가>
1. 현대 자동차사 내에서 자동차 이름 붙이는 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거기 살았거나 가 봤다가 반해서.
2. 다음 날까지 해 가야하는 숙제라서, 짤릴까봐 아무거나 급하게 친구한테 물어서 받은 이름.
3. 소비자에게 설문 조사를 한 통계 결과다.
4.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