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먹는 것이 남는 것

WallytheCat 2018. 11. 24. 21:49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12/02/18 20:34 WallytheCat


스리랑카, 우나와투나 6: 먹는 것이 남는 것
내가 묵었던 숙소는 바닷가 마을 우나와투나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마을 낮은 곳에서 나는 거의 모든 소리가 전해져 올라왔다. 조용한 아침이면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해가 진 후부터는 식당이며 나이트 클럽에서 틀어대는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까지, 그 소리들은 다양했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잠깐씩 성탄절 캐롤이며 '엘리제를 위하여' 등의 멜로디가 "띠리리리" 들리다가 멀리 사라지곤 하는 게 아무래도 아이스크림 트럭 아닌가 짐작만 하곤 했다. 어느 날, 이미 며칠 째 귀에 익은 그 멜로디와 함께 빵을 가득 싣고 '뚝뚝'이 골목에 나타나 드디어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했다. 아이스크림 트럭도, 쓰레기 트럭도 아닌 빵 뚝뚝이다. 식빵 한 덩이에 50루피라고 해서 하나 샀다. 빵의 생산과 유통 과정의 위생 상태 같은 건 염두에 두지 말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먹어야 한다. 



일단 집 떠나 여행이란 걸 하게 되면,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는 그 날까지 잘 먹고 잘 자고, 다치거나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든다. 동행이 있다면, 나라도 아프지 말아야 아픈 동행을 돌볼 수 있다는 사명감까지 생기는 건 분명 쓸데없는 오지랖이긴 하지만.

우나와투나에 있는 팔 일 동안 잘 먹고 잘 지냈다. 아무데나 들어가도 음식점들 대부분이 대략 먹을 만하게는 해내는 듯 하다. 대다수가 바닷가에 면했거나 첫 번째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식당들이다. 십 년 전에 있던 식당이 그대로 건재한 곳도 몇 군데 있었으나, 대부분은 근래에 시멘트 벽돌로 뚝딱뚝딱 네 귀퉁이 맞추어 올린, 허름하여 마치 따개비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들어서서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른 듯 여유 공간이 없어 보이는 골목길에 기념품 가게, 장신구 가게, 구멍 가게 등과 뒤섞여 자리 잡은 식당들이다. 우나와투나가 십 년 전보다 나아진 점은, 어느 허름한 식당엘 가도 화장실이 깨끗해졌다는 점이다. 흐뭇하다.

우나와투나에서 끼니를 해결했던 식당들을 영문 알파벳 순서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1. 플라워 가든(Flower Garden Restaurant)
십 년 전에도 있던 집이다. 호텔업도 겸하는 플라워 가든 식당의 음식은 아마도 우나와투나에서는 손꼽는 수준의 음식 아닌가 싶다. 음식도 맛깔스럽고, 분위기도 괜찮다. 허름한 다른 음식점 보다야 가격면에서 1/3 정도 비싸긴 하지만, 계속 먹는 싼 음식에 질리면 가끔 한 번씩 들러 문명에 접근한 이 집의 맛으로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본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요리가 흔하지 않은 우나와투나에서 유일하게 호주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 중 닭고기나 해산물 요리가 지겨워져 스테이크 한 번 먹고 싶은 여행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일행 중 스테이크를 먹어 본 사람에 의하면 "맛있다"고 했다. 

맥주값은 다른 곳과 동일하다. 삼인조 마리아치 밴드가 식탁에 와 노래까지 한다. 평상시 이런 걸 즐겨하지 않는데 여행 중에 이런 경우가 생기면, 맥주 한 잔 마시고 같이 좋은 척 하는 수 밖에. 







2. 럭키 투나(Lucky Tuna Restaurant)
이 집 역시 십 년 전에도 있던, 바닷가 식당이다. 십 년 전 이곳에서 먹던 기억이 난다. 내 숙소 쥔장 안톤 씨에 의하면, 고용된 사람들이 운영하는 다른 집과 달리 식당 주인이 직접 나서서 음식의 질과 상태를 챙겨 내놓기 때문에 그 입소문으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단다. 항상 북적거리는 식당이다. 저녁 일곱 시쯤 되면 신선한 해산물을 내놓고, 손님들이 고른 것을 그 자리에서 바베큐 해준다. 다른 음식도 꽤 맛이 있다. 




3. 노틀러스 식당(Nautilus Restaurant)
늦은 오후에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닫아, 문 연 곳을 찾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집이다. 개업한지 얼마 안 된 식당인 듯 했다. 음식 맛은 특별하다 싶은 것 없이, 그런대로 먹을 만한 정도였다. 여러가지 카레를 맛볼 수 있게 내놓은 카레 점심은 평범했다. 






4. 핑크 엘리펀트 식당(Pink Elephant Restaurant)
우나와투나에 가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하는 식당이라 본다. 쉽게 짐작한 이도 있겠지만, 왜 집 이름이 핑크 코끼리냐고 굳이 묻는다면, 그 집 요리사의 성 정체성을 이름이다. 두 살 터울의, 형이 아우 같고, 아우가 형 같기만 한, 전혀 닮은 데라곤 없는 두 형제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아우 같은 형, '친타카' 씨가 이 집의 요리사다. 이런저런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미용 기술은 물론이고 실내 장식에도 재주가 있는 사람인데, 요리는 일류요리사 뺨친다. 그는 매일 저녁 참신하고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다. 턱 믿고 시키면 알아서 맛좋은 요리를 순서대로 척척 내어 놓는 솜씨 좋은 요리사다. 그를 보며, 세상에는 숨은 고수가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가 그 집에서 처음 맛본 것은 새우 카레였다. 갈색쌀 밥에 끼얹어 먹은 새우 카레의 맛은 훌륭했다. 며칠 동안  찾던 카레 맛을 드디어 그곳에서 만났다. 그 외 태워 볶은 양파를 얹은 밥, 통깨를 잔뜩 뿌려 내온 감자 조림, 베라쿠다 찜, 스리랑카에서 맛보기 쉽지 않은 근사한 샐러드, 바나나나무 잎에 얹어 내온 칼라마리(오징어) 튀김, 후식 등 사진으로 보는 지금도 군침이 돈다.

음식 가격은 그 근방의 평범한 맛을 내는 다른 식당과 비슷하다. 요리 하나에 650-850루피 정도 한다. 음식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음식은 간이 좀 세다 싶은 것이 있으니, 미리 소금을 좀 덜 써달라고 주문하면 좋다. 사람 좋은 친타카 씨가 요리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어 올리려는데, 감쪽같이 사라져 찾을 수가 없다. 











5. 씨푸드 식당(Seafood Restaurant)
이 집은 핑크 엘리펀트 식당과 골목길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집이다. 음식 맛으로 말하자면, 다른 음식점이 다 문 닫은 늦은 오후에 식사하러 갈 곳을 찾기 힘들 때 들어가는 곳 정도 된다. 그런 이유로 한적한 편이다. 호젓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차, 맥주, 음료수 한 잔 하고 싶을 때 아주 좋은 집이다. 특히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는 맛이 일품이며, 양도 다른 집보다 많다. 음료수 마시러 자주 들렀다가 이 집 개와 친해졌다.  




6. 사우스 실론 베지테리언 식당(South Ceylon Vegetarian Restaurant)
우나와투나에 처음 도착한 날, 이 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스리랑카인 부인과 영국인 남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겸 숙소다. 나중에 마을을 다 돌아다녀 보아도 커피 맛이 이 집 만한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채식 요리만 파는 곳인데, 아침 식사에 달걀과 우유 정도는 제공한다. 점심으로 한 번 야채 부리토를 시켰는데, 부리토를 그냥 내오는 것이 아니라 만든 후 오븐에 잠시 굽는 모양이다. 토티야가 바삭한 게 아주 맛이 있었다. 언젠가 집에서 한 번 그렇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7. 스파이스 봉 식당(Spice Bong Restaurant)
이 집은 피자를 그런대로 잘 만들며 종류도 제법 다양하다. 이 집에서 피자를 두어 번 먹었다.

한 번은 아침 식사를 하러 갔는데, 깨진 주전자에 커피를 내준다. 깨진 접시는 숱하게 많이 보았어도 주둥이가 깨진 주전자에 음료를 내어 받은 일은 처음인 것 같다. 조금 황당했지만, 그 정도야 뭐. 주둥이가 깨졌어도 커피 맛만 좋으면 아무 불평 안 했을텐데, 안타깝게도 커피는 아무 맛도 없이 탕약처럼 쓰기만 했다. 내 할머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내 할머님이 커피를 좋아하는 분이셨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평하셨을 거다. "이 눔의 커피가 에미 맛도, 애비 맛도 없네." 라고.



<1/20-1/28/2012  Unawatuna, Sri 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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