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28

해냈다

선거 다음날인 2023년 11월 8일 투표 결과가 나왔다. 이슈 1번(임신 중단)과 2번(기호용 대마) 모두 합법화로 결론짓는 것으로 말이다. 결과를 접한 후, 이겼다는 느낌보다는 해내서 다행이라는 느낌이 지배적인 것은 오하이오 주가 보수성이 강한 곳이라 투표 결과를 보면 늘 지도의 대부분이 붉은색으로 칠해지기 일쑤이기 때문일 거다. 붉은색은 시각적으로 번져 보이기 때문에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이는 힘이 있기도 하다. 이슈 1번의 경우 아슬아슬하게 해낸 것이 아닌, 그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56.6% 대 43.4%)이라서 더더욱 다행이다. 유권자들이 개인의 정치 성향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게 아니라 ‘임신 중단을 포함한, 출산에 관한 개인의 결정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에 찬반을 표했..

Days in Ohio 2023.11.12

가을 끝 어디

집 앞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미국주엽나무, honey locust tree)와 단풍나무 한 그루가 그들의 자잘한 잎을 어지럽게 떨구며 올가을이 대략 막을 내리나 싶다. 가을 내내 나뭇잎에 치이고 치이다 다시 떨어진 나뭇잎이 비에 젖어 땅에 착 붙어 카펫을 만들어 놓은 풍경을 보자니 심란 그 자체였다. 늘 차가 들락거리는 곳이라 며칠 견디지 못하고 치워야 했다, 남편이. 수고하셨소! ㅎㅎ

Days in Ohio 2023.11.04

투표

2023년 11월 7일 화요일은 미국 선거일이다. 주마다 필요한 몇 가지 이슈에 관한 투표를 하는 날이지만 오하이오 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두 가지 중 하나는 임신중절에 관한 찬반을, 또 하나는 대마에 관한 찬반을 묻는 것이다. 둘 다 모두 뜨거운 이슈다. 둘 다 합법화 되어 보호받지 못하면 불법으로 횡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대마에 관한 합법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2023년 오늘, 다시 임신중절의 불법 합법을 논해야 하는, 자꾸만 먼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 기가 막힌 현실에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겠나, 싸워야지. 나는 이슈 1과 이슈 2, 둘 다에 찬성을 표해 부재자 투표용지를 보냈다. 혹여나 우편으로 보내 중간에 사고라도 나 사라질 것을 우려해 투표장에까지 가 그곳에 마련된 함..

Days in Ohio 2023.11.04

환갑 잔치

지난 달인 시월초, 이메일로 생일잔치 초대장을 하나 받았다. 60번째 생일이니 이름하여 환갑 잔치인 것이다. 북적거리게 사람 많은 파티에 가는 걸 가능한 한 피하며 사는 편이지만 이 초대장에는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참석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일 년 전 갑작스럽게 말기 암이란 걸 알게 되어 투병을 시작한 모습을 본 후 10개월여 만의 연락이었으니 말이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닌지라 예의상 거리를 좀 두며 그분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기도나 해드리자는 마음이었으나 머릿속에서 늘 걱정은 떠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리며 다시 날이 추워지고 있던 지난 토요일 저녁이었다. 막연히 대략 사오십명쯤 참석하지 않을까 짐작하며 장소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다 모이고 나..

Days in Ohio 2023.11.04

가을걷이

가을이라고 남은 것은 앞뒤 마당에 쌓이고 또 쌓이는 나뭇잎이다. 이맘 때면, 땅을 파고 호두를 사방팔방에 심는 다람쥐와 청설모도, 나뭇잎 청소하는 사람도 바쁘다. 월요일 아침 시에서 트럭이 나와 나뭇잎 수거를 해가니, 남편은 일요일 거의 종일 나가 나뭇잎을 쓸고 거두어 종이봉투에 넣어 내놓는 일을 했다. 봉투라 부르기엔 크기가 좀 크니 부대나 자루라 부르는 게 맞겠다. 세어 보니 자루가 모두 스물한 개다. 여름이 길어 그런지 올 가을에는 유난히 나뭇잎이 많은 것 같다. 이번이 가장 많긴 하지만 이렇게 내어 놓은 게 벌써 세 번째다. 이제는 거의 끝물인 것 같으니, 자루 몇 개 분량만 남았을 듯하다. 다른 계절에는 자루에 내어 놓아야 시에서 가져간다. 그러나 워낙 양이 많은 가을에 내놓는 나뭇잎은 보도 가..

Days in Ohio 2023.10.18

스산하다

오하이오주는 비교적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전지구의 기후 위기 상황을 뉴스로 접하며, 뜨겁고도 길다고 느낀 여름이었다. 이제 여름 외 다른 계절이란 게 오기는 오는 걸까 하는 막연한 걱정과 공포가 있었다. 아직 여름 날씨임에도 뒷마당의 호두나무들은 구월초가 되자 예년과 마찬가지로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아직 계절이 바뀌긴 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 두어 주 주말, 남편이 종일 나가 호두잎과 시커먼 호두 열매를 주워 치워 깨끗이 청소를 했다. 그러나 단 하루만 깨끗해 보일 뿐 여전히 다시 잎으로 채워지는 중이다. 아마도 몇 주는 더 계속될 일일 것이다. 2023년 9월 23일 일요일 오후, 뒷마당에서 나뭇잎 치우던 남편이 놀란 얼굴을 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죽은 고양이 한 마..

Days in Ohio 2023.10.08

지하실 대공사

지난 칠월 외벽 공사 내내 날씨가 맑아 마음을 턱 놓고 있던 중 어느 날 밤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아직 물받이 설치까지는 진행이 안 된 상태였으므로 살짝 걱정이 되어 지하실에 내려가 봤더니, 세상에나, 지하실 한쪽벽에서 제법 많은 물이 새어 들고 있었다. 그 근처 바닥에 하수구가 있는 건 알고 있어 그 위에 덮인 카펫에 구멍을 내어 그리로 물을 빼냈다. 그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 또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그리고는 그다음 날 물받이 공사를 해 일을 일단락 지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늘 물이나 습도의 문제를 배제할 수 없는 곳이 지하실이므로, 지하실 카펫을 걷어내고 비닐 재질의 마루를 깔면 좋겠다는 강력한 유혹과 그 힘든 작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저울질하며 몇 주를 지내..

Days in Ohio 202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