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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대공사

지난 칠월 외벽 공사 내내 날씨가 맑아 마음을 턱 놓고 있던 중 어느 날 밤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아직 물받이 설치까지는 진행이 안 된 상태였으므로 살짝 걱정이 되어 지하실에 내려가 봤더니, 세상에나, 지하실 한쪽벽에서 제법 많은 물이 새어 들고 있었다. 그 근처 바닥에 하수구가 있는 건 알고 있어 그 위에 덮인 카펫에 구멍을 내어 그리로 물을 빼냈다. 그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어 또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그리고는 그다음 날 물받이 공사를 해 일을 일단락 지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늘 물이나 습도의 문제를 배제할 수 없는 곳이 지하실이므로, 지하실 카펫을 걷어내고 비닐 재질의 마루를 깔면 좋겠다는 강력한 유혹과 그 힘든 작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저울질하며 몇 주를 지내..

Days in Ohio 2023.10.03

Haven't Cut the Cable Yet?

한창 집 외장공사를 하던 중 공사 책임자인 F 씨가 질문이 있다며 나를 집밖으로 불러냈다. 뒷마당 벽 한 구석에 어지럽게 자리한 한 뭉치의 인터넷 케이블을 보여주며 어떤 것이 현재 사용 중인 것인지를 물었다. 사용 중인 것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잘라내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게다. 내가 보기에 다른 쪽 구석 벽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간 게 현재 사용 중인 것이니 그 뭉치는 다 잘라 없애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F 씨는 내게 여러 번 확인했고, 나는 단호하게 "걱정 말고 자르라"라고 말했다. 그가 케이블들을 다 잘라낸 후 집안으로 들어가 그래도 혹여나 싶어 인터넷을 확인하니, 인터넷 연결이 사라지고 없다. 그 어지럽게 얽혀있던 케이블 중 한 가닥이 현재 사용 중인 인터넷 선과도 연결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Days in Ohio 2023.08.19

한여름 대공사

낡아가는 집을 하나 갖고 있다는 건, 어느 아는 사람의 말대로 '돈 먹는 하마' 한 마리와 함께 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 맞다. 더구나 내가 배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경우에는 몇 년 간 계획하다 망설이다를 반복하다 결국에는 실행에 옮겨야 하는 시기를 맞이해야 한다. 새 페인트칠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 새 외장재로 단장을 해야 할 시기의 도래 같은 것 말이다. 나무로 외장마감이 되어있는 집이 수십 년 나이를 먹은 데다 손이 닿지 않는 이층 꼭대기에 딱따구리가 뚫어 놓은 두 개의 구멍은 작은 새들이 둥지를 틀기에 아주 적합했던 모양으로, 새끼새들이 부화해 지지배배 지저귀다 종국에는 나는 법까지를 배워 집을 나가는 일이, 지난 몇 년째 아마도 수십 번은 반복되었을 거다. 새들이 커가는 소리는 집안에서도..

Days in Ohio 2023.08.19

독립기념일 파티 #13

둘째 시누이 주최 독립기념일 파티는 올해로 13번째였나 보다. 패널로 인쇄한 단체사진 12장이 파티장 왼쪽 입구 후식이 놓인 탁자 위 벽에 고스란히 전시된 걸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매해 사진이 하나씩 늘어가니 내년에는 13장의 사진이 걸려 있을 거다. 세상에, 가기 싫다 싫다 하면서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해 빠진 걸 빼고, 나는 도합 열두 번이나 그 자리에 있었구나. 시누이가 그 모임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준비했을까를 뻔히 아니 차마 외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시누이가 또 내 남편을 얼마나 듬직하게 여기는 지를 아는지라 내가 나서서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자면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들여다 보여, 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

Days in Ohio 2023.07.04

금토일월화

다음 주 화요일이 독립기념일 공휴일이라 사이에 끼는 월요일까지 합해, 금요일인 오늘부터 닷새를 쉬게 되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몇 날 며칠 혼자서도 잘 노는 체질이니 집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둘째 시누이께서 연중행사로 벌이시는 그 '독립기념일' 파티가 바로 코앞인 내일로 다가와서다. 내게 밥과 김치를 파티에 내어 놓으라는 주문을 하셨다. 음식이 넘쳐 나는 그곳에 나의 소박한 밥과 김치가 꼭 필요하다기보다는, 혹여라도 내가 그 자리에 안 나타날까 봐 나름 머리를 써 내게 숙제를 준 거라는 혐의가 짙다. 늘 가기 싫은 그 파티에 갈 때면, '연세 드신 시누이가 이 연중행사를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으시랴' 싶어 훗날 후회하지 말고 꾹 참고 가자는 마음을 앞세운다. 오늘 김치를 담그며..

Days in Ohio 2023.07.01

늦봄 혹은 초여름 언저리, 붓꽃

붓꽃 구근을 심었던 게 한참 전이라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에도 없다. 해마다 꽃의 수가 줄더니, 올해는 손에 꼽을 만큼 몇 안 되는 꽃이 피었다. 흰색 꽃이 몇 피더니, 그 다음날 노란색 꽃 딱 하나, 또 그 다음날 옆으로 누운 채 보라색 꽃 하나가 피었다. 흰꽃은 청초해 보이고 노란 꽃은 든든해 보이지만 그중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훔치는 건 역시나 보라색 꽃이다. 붓꽃이 고운 꽃이긴 한데, 그 큰 꽃을 지탱하는 길고 가는 꽃대를 보자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마당의 꽃구경 덕에 그나마 마음 흔들리지 않고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으니, 늘 고마운 존재들이다. 작년 11월 18일 둘째 시누이댁에 갔다가 얻어 온 도기 항아리다. 내 기억으로 그 댁 벽난로 앞..

Days in Ohio 2023.05.25

돌담 쌓기, 세 번째

집 주위에 규모가 각각 다른 돌담이 모두 넷 있다. 집 앞쪽에 있는 것들은 작년에 다시 쌓는 작업을 마쳐 앞으로 당분간은 잊고 살아도 될 것 같다. 뒷마당 돌담의 상태가 내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그날 사실 밖에 나갔던 건 그 돌담을 어떻게 해보려던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무성하게 자란 정체 모를 노란 꽃 무더기를 제거하려고 나간 것이었다. 밤새 비가 온 후라 풀 뽑기 딱 좋은 날이었다. 잔잔한 크기의 노란 꽃은 세상 화려한 게 예쁘긴 했지만 주위 다른 식물을 점령할 위험도 있으니, 뽑는 게 맞다고 봤다. 늘 그렇듯이 풀이나 좀 뽑을 요량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은 가볍게 끝나지 않았다. 풀을 다 뽑자 드러난 돌담의 상태는 차마, 망설임 없이 휙 돌아서서 작업용 장갑을 벗어 두어 번 툴툴 털며 별일 아니라..

Days in Ohio 2023.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