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돌담 쌓기, 세 번째

WallytheCat 2023. 5. 22. 00:57

집 주위에 규모가 각각 다른 돌담이 모두 넷 있다. 집 앞쪽에 있는 것들은 작년에 다시 쌓는 작업을 마쳐 앞으로 당분간은 잊고 살아도 될 것 같다. 뒷마당 돌담의 상태가 내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그날 사실 밖에 나갔던 건 그 돌담을 어떻게 해보려던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무성하게 자란 정체 모를 노란 꽃 무더기를 제거하려고 나간 것이었다. 밤새 비가 온 후라 풀 뽑기 딱 좋은 날이었다. 잔잔한 크기의 노란 꽃은 세상 화려한 게 예쁘긴 했지만 주위 다른 식물을 점령할 위험도 있으니, 뽑는 게 맞다고 봤다. 늘 그렇듯이 풀이나 좀 뽑을 요량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은 가볍게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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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풀, Saturday 5/13/2023)

풀을 다 뽑자 드러난 돌담의 상태는 차마, 망설임 없이 휙 돌아서서 작업용 장갑을 벗어 두어 번 툴툴 털며 별일 아니라는 듯 집안으로 들어가 버릴 수는 없게 만드는 힘으로 나를 눌러 앉혔다. 긴 세월에 당할 자 없다더니, 나지막한 돌담은 오랜 세월 버려진 폐허 속 정원의 모습, 그것이었다. 옆집과 가깝게 맞닿은 곳으로 평시 가능한 한 발길을 피하던 공간이라 더 방치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장장 다섯 시간 반 돌담 쌓는 일을 또다시 하게 되었다.

(Before, Saturday 5/13/2023)

주저앉거나 쭈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은 채, 퍼즐을 맞추듯 이 돌 저 돌을 이 구석 저 구석에 맞추며 진행해야 하는 돌담 쌓는 일은 시간을 잊고 온전히 그 일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긴 하다. 일을 다 마친 후, 정말 다섯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난하게 이 짓을 하고 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또 그나마 다행이고 이상한 일은, 몸이 그다지 힘들지도 않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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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당 돌담 위 화단에 핀 불두화, Saturday 5/1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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