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Haven't Cut the Cable Yet?

WallytheCat 2023. 8. 19. 03:36

한창 집 외장공사를 하던 중 공사 책임자인 F 씨가 질문이 있다며 나를 집밖으로 불러냈다. 뒷마당 벽 한 구석에 어지럽게 자리한 한 뭉치의 인터넷 케이블을 보여주며 어떤 것이 현재 사용 중인 것인지를 물었다. 사용 중인 것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잘라내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게다. 내가 보기에 다른 쪽 구석 벽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간 게 현재 사용 중인 것이니 그 뭉치는 다 잘라 없애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F 씨는 내게 여러 번 확인했고, 나는 단호하게 "걱정 말고 자르라"라고 말했다. 그가 케이블들을 다 잘라낸 후 집안으로 들어가 그래도 혹여나 싶어 인터넷을 확인하니, 인터넷 연결이 사라지고 없다. 그 어지럽게 얽혀있던 케이블 중 한 가닥이 현재 사용 중인 인터넷 선과도 연결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룻밤 인터넷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음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이 없으니 저녁 시간도 엄청 길게 느껴졌다. 책도 좀 읽고, 같이 사는 사람과 대화도 했다. 그 상황이 여유롭기도 아니기도 했다는 게 보다 솔직한 설명일 수 있겠다.

손전화 날씨앱을 켜면 요즘 늘 등장하는, "케이블을 끊으시오(Cut the cable.)," "아직도 케이블을 안 끊으셨단 말이요?(Haven't cut the cable yet?)"라고 묻는 한 회사 광고가 생각났다. 나처럼 단순한 실수로 인터넷 케이블을 끊은 사람들도 있겠으나, 인터넷 회사를 바꿀 때마다 각 회사마다 케이블을 따로 땅에 묻고 집 가까이에 박스를 세워, 집 주위를 어지럽히는 게 싫어 케이블을 끊기로 마음먹고 케이블이 따로 필요 없는 인터넷 서비스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다.

(손전화앱의 Verizon사 광고, 7/2023)

예전처럼 인터넷 회사에 전화로 연락하고, 약속을 잡고, 몇날 며칠을 기다려 '케이블 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바로 다음 날 구매해 집 밖 케이블과 전혀 무관하게 집안에서, 작은 박스에 전원을 연결하고, 암호를 입력하니 거짓말 같이 인터넷 연결이 되었다. 실수로 케이블을 끊어 버린 이전 회사의 인터넷은 오랫동안 제법 비싼 요금을 내고 있기도 해서 망설임 없이 바로 취소를 했다. 문득 짐 캐리(Jim Carrey)가 주연이었던 오래전 영화 '케이블 가이(The Cable Guy, 1996)'가 생각난다.

(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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