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타오스, 그곳은 어디인가

WallytheCat 2018. 11. 21. 01:09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7/07/15 05:25 WallytheCat 




산타페에서 북쪽으로 두어 시간 남짓 운전해 가면 또 다른 뉴멕시코주 소도시 타오스(Taos)란 곳이 나온다. 뭐 제대로 길을 찾아 가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번에 뉴멕시코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이정표가 다른 주들에 비해서 약간, 아주 약간 이상하다는 거다. 확증은 없지만 뭔가 제대로 말해 주는 것 같지 않은 의심이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이정표를 읽으며 가다 보면 막상 그 목적지 근처에서는 흐지부지 이정표가 사라져 버려 영 혼란스러운 거다. 혹시 그럼으로써 한적한 뉴멕시코에 사람들을 눌러 앉히려는 인구 정책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하여간 길을 제대로 들면 두어 시간 걸리는데, 우리는 바로 요 지점에서 길을 잃은 걸 알아 차렸다. 한 30분 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야 하는데 왼쪽으로 달렸더니, 그 유명한 타오스 근방 스키장 동네가 나온다. 왔던 길로 다시 차를 돌려 가려는데, 외롭지만 반듯하게 서 있는 이정표와 함께 연두색 털이 부드러워 보이는 풀들이 사악사악, 바람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보인다. 길 잃은 김에 잠시 쉬며 풀 구경이나 하자고 앉았다.

이번엔 제대로 길을 찾아 들었다. 타오스는 사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읍내같은 모습. 기차처럼 기다란 주 도로 하나를 중심으로 이쪽 저쪽 너머로 마을이 퍼져나간 모습을 하고 있다. 산타페보다 훨씬 소규모 도시라 한적한 맛이 난다. 



타오스 역시 산타페를 포함한 다른 뉴멕시코 북부 지역처럼, 20세기 초 미국 현대미술의 기수가 되었던 예술가들을 그 넓은 품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품어 키웠던 예술의 도시다. 1929년 처음 타오스를 방문했던 일을 계기로 죠지아 오키프와 후일 그녀의 남편이 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 이후, 시간만 나면 수시로 뉴멕시코를 찾았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그들의 예술가 친구들이 그들과 자주 동행했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뉴멕시코 풍경이 그들의 단골 소재가 되어 많은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감상하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후일 그녀가 터를 잡고 살았던 집은, 사실 타오스는 아니고 타오스에서 조금 동쪽으로 가야 나타나는 아비케우(Abiquiu)에 있다.


일단 한적한 기분이 드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길 중간쯤에, 중동지역 옷이며 카페트 등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정신 쏙 빠지게 생긴 가게 하나가 나온다. 뭐가 있나 궁금해 들어갔더니 한 눈에 '나, 점쟁이' 라고 이마에 써 붙인 듯한 여자 하나가 긴 금발을 엉덩이까지 늘어뜨리고 서 있다. 타로 카드를 읽는단다. 때로 사람의 외모를 보기만 해도 뭔가 흥미로운 사연이 가득찬 듯해서 옆구리를 슬쩍 찌르면 그 사연을 줄줄 풀어낼 것 같은 때를 만난다. 그녀가 그래 보였다. 좋은 시절 다 보낸 후, 이제 그 자리에서 조금 비껴난 모습을 하고, 아주 빨간색 입술연지를 바르고 선 여자.

어디서 이런 걸 다 구해다 놓았느냐고 딱 한 마디 물었을 뿐인데, 예상대로 그녀의 인간 역정이 다 나온다. 원래 자기는 춤추는 게 직업이라고 했다. 오래 전 이집트 카이로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배꼽춤 추는 일을 했단다. 지금은 이런 가게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댄서로 중동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얘기를 듣다 보면 말의 앞뒤 아귀가 안 맞는 부분이 많아, 들으면 들을 수록 증폭된 궁금증이 들은 얘기보다 더 많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싹티'가 이름인 그녀의 경우가 딱 그랬다. 마치 십년지기라도 된다는 듯이 한 삼십여 분 그녀랑 수다를 떨었나 보다. 머리가 슬슬 복잡해지려는 차에 재미있었다 인사도 하고, 기념사진도 같이 찍고, 무희의 꿈이 다시 이루어지길 바라노라 덕담까지 한 마디 던지고 헤어져 나왔다. 그녀의 배꼽춤 구경을 할 수 없던 게 조금 아쉬웠지만.


타오스에도 어도비 건물들이 많다. 이곳도 역시나 상업화가 많이 되어서 큰 길가의 건물들은 대다수가 상점이나 갤러리들이다. 상업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만도 없다. 창작되어 세상에 나온 미술 작품들을 팔아 주겠다는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는 건 작가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에 편승해서 팔리는 작품만 만들어 내는 역기능에 대해선 비판을 좀 받아도 싸다 싶다. 




어도비 건물 내부에는 이런 식으로 벽과 벽이 만나는 귀퉁이에 벽난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반듯하게 똑 떨어지는 직선이 아닌 두리뭉실한 곡선으로 빚은 모습이 자못 동양적으로 다가오는 게, 푸근해서 좋다. 



이곳은 한쪽에는 갤러리, 다른 한쪽에는 카페를 운영하는 구조를 가진 아주 캐주얼한 공간이다. 경건하고 엄숙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 



길 건너 보이는 저 어도비 건물은 시각적으로 다소 산만한 풍경을 자아내긴 하지만 역시나 독특하다. 



산타페나 타오스나 여름에는 쨍하게 내리 쪼이는 직사광선이 아주 따갑다. 아무리 미술 작품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도 그 여름 땡볕을 오래 쐬면 더위 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건물들 앞에는 건물의 차양을 이렇게 길게 빼내어 그늘이 지게 해 두었다. 비나 눈 올 때 피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타오스 극히 일부 보도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바닥이 나무로 된 곳이 보이는데, 타오스에서 유일하게 남은 오래된 마루 보도라 했다. 오래된 거라면 18세기 말, 아니면 19세기...? 그것까진 알 수가 없다.


잠시 머물며 식사를 하고, 거리도 걸으며 넘쳐 나는 미술 작품들 구경을 하다 보니 타오스와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타오스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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