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7/07/12 15:17 WallytheCat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내가 산타페에 간 다음 날, 미국에 하나 뿐이라든가 하는 대주교와 한 무리의 신부들이 산타페에 있는 이 천주교회에서 무슨 회의를 했던 모양이다. 천주교회 앞에는 좀 외로워 보이는 시위대 몇 명이 대주교를 향해 적은 그들의 메시지를 앞에 두고 무심한 듯 표정없이 서 있고, 경찰들만 정신없이 바쁘게 휘젓고 다녔다.
게다가, 게다가... 한 십오 년 전에 다녀 갔던 이 산타페의 모습이 그 산타페의 모습이 아닌 거다. 어찌나 큰 관광지가 되어 버렸는지 복잡해져서 한적한 맛이라곤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다. 아, 간 곳없이 사라진 옛 모습이여. 그래서 그냥 마음을 턱 비우고 일박이일 동안 미술관, 박물관이나 돌며 눈요기나 하기로 한다.
산타페의 건축 양식은 독특하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도시내에 짓는 건축물은 모두 도시가 지정한 어도비(Adobe) 건축 코드에 따라야 한다. 어도비란 진흙과 건초, 혹은 자잘한 자갈(큰 돌은 벽돌을 갈라지게 함)이나 동물의 피 따위를 섞어 빚어 만든 벽돌을 건조시켜 건물을 짓는 양식을 말하는데, 그 유래는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아마도 침략기에, 아메리카로 건너온 것이라 한다.
진흙 벽돌 하나씩이 무척 크다. 큰 것은 가로 75cm, 세로 45cm, 두께 30cm 가량 된다고 하니 그 크기가 쉽게 짐작이 간다. 다 지어진 건물의 벽 두께는 30cm가 넘으니, 그 안에 들어가면 마치 동굴 안에 든 듯 청량감이 드는 건 물론이다. 건물의 주재료가 흙이다 보니 무게가 상당해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얘기 정도는 들었다.
진흙 벽돌을 쌓아 다 지은 집 외관에는 역시나 진흙으로 다시 두어 겹 발라 마감을 한다. 그렇게 하면 벽 두께도 더 두꺼워지거니와 벽돌과 벽돌 사이의 이음새도 매끄럽게 메워지니, 미관의 효과도 더해지리란 짐작이 든다.
한여름의 기온이 섭씨 45-50도를 넘나드는, 냉방 장치 없이는 견디기 쉽지 않은 여름을 가진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 등의 예전 미국 서부 지역에 가장 적합한 건축 양식 아니었을까 싶다. 예전에 아리조나 투싼이란 곳에 살 때 처음 이 어도비 집들을 둘러 보고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군침을 뚝뚝 흘리며 그런 집에 잠시라도 살아보고 싶어 했건만, 아쉽게도 그 꿈을 이루진 못했다.
천장이 높다란 어도비 집 실내는 여름 한낮이 되어도 그리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벽이 두터우니 낮 시간 내내 예열이 된 벽이 밤이 되면 온기를 전해 주므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사막의 한겨울 밤에도 많은 연료없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을 거다. 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 건축 양식인가.
게다가 건축물을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디 한군데 모난 곳이 없이 은근한 곡선미를 자랑한다. 또 이 서부 사람들은 멕시코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그 동굴같이 푸근하고 정감가는 어도비 건물에 붉은 고추며, 마늘 따위를 엮어 매달아 장식을 하기도 하는데, 이 풍경 또한 묘하게 내 향수를 자극한다.
산타페 내에 새로 지어진 어도비 건축물은 상당수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가짜 어도비가 많다. 시멘트 벽돌이나 목재 등을 주재료로 쓰고(구하기, 짓기가 수월하므로), 외장에만 회를 겹으로 발라 페인트를 칠해 놓으면 겉으로야 어도비 건물처럼 보이는 데 지장을 주진 않으므로.
뉴욕같은 미국 동부와는 완연히 다른 뉴멕시코의 독특하기 짝이 없는 하늘과 바람과 공기, 그리고 붉은 바위와 흙에 반해 버린 화가 죠지아 오키프의 전설적인 이야기야 모두 다 아는 것일테니 되풀이해서 무엇하랴. 그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대사를 똑같이 읊조린다. '온통 초록만 있는 동부의 풍경은 단조롭다'고도 했다던가...
웬 꼬질꼬질한 개 한 마리가 인적이 뜸한 그늘에서 늘어져라 잠이 들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한쪽 눈만 실눈으로 아주 게으르게 떴다 다시 감을 뿐, 그 외에는 미동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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