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애증의 교차: 암만에서 버스타기

WallytheCat 2018. 11. 21. 01:04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7/05/15 04:14 WallytheCat





암만에서 제라쉬까지
사실 처음부터 제라쉬까지 갈 계획은 없었다. 비행기 시간까지 아직 하루 하고도 몇 시간이 더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한 일정이었다. 이번에는 시간도 넉넉하겠다, 버스라는 걸 한 번 타보자, 하고 압달리(Abdali) 버스터미날에 갔다. 별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버스터미널에는 표파는 곳도, 버스 시간표라는 것도, 안내소도 없다. 있는데 못찾은 거라면, 아마 누군가 볼 새라 어딘가에 꽁꽁 숨겨 두었던 모양이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 제라쉬행 버스를 찾아 올라 탔다. 버스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운행되는 게 아니라, 아무 때나 버스에 사람이 다 차면 떠난다고 여행책자에 쓰여 있더니만 정말 그랬다. 그 융통성이 자못 파격적이다. 미니버스도 아닌 대형버스에 우리가 첫 손님이다.

버스에 앉아 50분쯤 기다렸나 보다. 기다리는 동안 낭랑한 목소리로 구걸을 하는 여자도 다녀가고, 쟁반에 아랍커피와 단 것을 받쳐와 팔려는 '홍익회' 직원인 듯한 남자도 다녀가고, 창 밖을 오가는 숱한 사람들 구경도 했다. 언제 버스가 떠날 줄을 모르니 자리를 뜰 수도 없다. 뭐, 특별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드디어 버스가 떠날 때가 되니 버스비를 걷는다. 한 사람 요금이 0.5디나르란다. '애들은 할인 안 되나요?' 하고 묻다가 '이렇게 싼데 괜히 물어서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는데 동의, 군말없이 3디나르의 요금을 지불했다. 종일 있어도 떠날 것 같지 않던 버스는, 두 기사가 동전 뒤집기인가를 해서 누가 운전을 할 것인가를 정한 다음, 나름 경쾌한 출발을 한다. 이긴 사람이 운전을 하는 건지, 진 사람이 하는 건지, 그 속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버스 기사는 무척 친절하다. 목적지까지 한 시간 이십여 분 걸렸나 보다. 제라쉬 버스 정류장에 내려 고대 제라쉬 입구까지 걷던지, 택시를 타던지는 여행객이 알아서 할 일인데, 내리지 말라고 하더니 그 입구까지 데려다 주시는 거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말이 안 통하긴 마찬가지인 듯한 영국인 여행객 하나도 우리 눈치를 보며 앉아 있다 따라 내린다, 커다란 군용 배낭 같은 걸 질질 끌면서. 우리가 다른 데로 가면 어쩌려고 따라 내린담. 
제라쉬에서 다시 암만으로
아침 버스기사로부터 암만행 버스가 5시까지 있다는 정보를 얻어 들었기에, 4시 조금 후 고대 제라쉬를 나서기로 한다. 마침 입구에 택시 한 대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제라쉬 버스 정류장까지는 짧은 거리니 6명이 대충 끼어타고 데려다 주면 어떻겠냐고 물으니 그러마고 한다. 우리를 도와 주려고 나온 사람들이 일제히 '택시비는 1디나르만 내라'고 담장 안에서 소리까지 쳐 준다. 친절하기도 하지. 조금 감동받은 우리 일행은 2디나르를 줘야지, 라고 마음 먹는다.

잠깐 가는 사이에 택시 기사가 하는 말이, 암만행 버스는 5시가 아니고 3시면 끊어져서, 지금 거길 가 봤자 버스가 없는데 뭣하러 가느냐는 거다. 아니 무슨 버스가 그렇게 일찍부터 끊어지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여기 사는 사람인데 그것도 모르겠냐며, 분명한 사실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 아저씨, 선하디 선하게 생긴 데다, 아침에 버스가 운행되는 꼴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우리는 어떻게든 암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사한테 택시 한 대를 더 불러 암만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떠나기 전에 물을 좀 사야하니, 아무 가게 앞에라도 택시를 세워 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는 망설이다 제라쉬 버스 정류장에 있는 구멍가게에 차를 세운다. 난 사실 만사가 귀찮아 아무렇게라도 암만에만 가면 되겠지 싶어, 얼기설기 얽은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쉬었다. 일어나려고도 했는데, 셔터문 내리려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자기는 괜찮으니 계속 앉아 쉬라고 손짓을 하시는 바람에 예의상 일어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흠, 너무 친절해. 

<가게 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이 앉은뱅이 의자를 밖에 두고 퇴근하신 듯...>


물을 사서 나온 일행의 말인즉슨, 가게 쥔장한테 물으니 암만행 막차가 5시에 있다고 한단다. 이 또 무슨 혼란스러운 정보인가. 이 정도 되면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조금 있으려니 구멍가게 젊은이와 택시 기사가 언쟁하는 게 보인다.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짐작이 가는 내용 아닌가.

구멍가게 쥔장: "아저씨,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세상 그렇게 살지 마쇼, 어쩌구..."
택시 기사: "너야 말로 왜 남의 일에 참견을 하는 거냐? 내가 없다고 하면 없는 거지, 워째 내 일당 벌이를 방해는 하는 거야? 저쩌구..." 



에구, 황당하다. 택시 기사의 친구 택시가 와서 살피다 사태를 파악하고는 곧 떠나 버린다. 너무나 선하게 생겨서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고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택시 기사에게 1디나르만 건네 주면서, 당신 택시는 안 탈테니 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 전혀 동요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우리가 버스를 놓칠 거란 계산이 있던지 거기서 그렇게 기다리고 서 있다, 그 선한 얼굴을 하고서.

<눈매가 선해 거짓말이라곤 할 수 없을 것 같이 생긴 사람, 아직도 그 자리에 기대를 갖고 서 있다.>


큰 버스 한 대가 서지도 않고 지나려는 걸, 구멍가게 쥔장 이하 사내들 몇이 큰 소리를 질러 세운다. 이 눔의 버스 정류장 역시도 안내소는 커녕, 버스표를 파는 곳도, 버스가 일정하게 정차했다 떠나는 일도 없다. 감당이 쉽지 않은 융통성이다. 저만치 가다가 선 버스에 대고, 암만행이 맞냐고, 구멍가게 쥔장이 소리쳐 물으니 맞단다.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서둘러 인사를 한 후, 겨우 그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에 오른 일행은 이 버스 기사의 상황이 또 한 눈에 파악된다. 큰 버스 안에는 승객이 별로 없다. 딱 하나,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은 아리따운 아가씨와 그는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던 거다. 사람을 더 태우면 그 일에 방해를 받을테니 그냥 지나치고 싶었겠지. 그 핑크빛 담소에 방해꾼이 된 우리는 버스기사와 아가씨 근처 앞좌석에 줄줄이 앉았다. 열 받은 기사, 줄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어찌나 버스를 난폭하게 몰던지 아침에는 1시간 20분 걸리던 거리를 40여분 만에 도착한다.

어지럽다. 단 며칠간 방문한 나라에 대해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판단은 섣부른 짓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자꾸 옆구리를 찌른다면, 친절과 사기가 반반이다, 라고 해야 할까. 우스운 것이, 나쁜 짓을 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옆에서 그걸 듣고 도와주려는 정의의 사도가 바로 등장한다는 거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물론 정의의 사도라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잇속과 관련이 되는 일이면 조금도 주저없이 바로 사기꾼이 될 것이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우리의 '암만서 버스타고 나들이 하기'는, 중간의 여러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실현이 된 셈이다. 별일도 아닌 걸 하면서, 이렇게 큰 성취감을 얻어 보기는 또 처음이다. 뿌듯하다.

요르단이여, 부디 진보 있으라!

새끼 사기꾼의 일침
고대 제라쉬 내에서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파는 예닐곱살 먹어 보이는, 꼬질꼬질한 소년이 하나 있었다. 소년은 '필릴리 필릴리~' 피리를 불어 보이기도 하며 호객을 했다. 피리는 네 개에 1디나르. 아무 생각없이 피리 네 개를 사서 집으로까지 가져갔던 일행 가족이 나중에 하는 말. '집에 와서 피리를 닦아 불어보니, 소리가 안 나더라. 들여다 봤더니 대나무 마디에 구멍을 뚫지 않았더라. 피리 네 개가 모두 그렇더라. 깨질까봐 짐가방에 넣지도 않고 손에 들고 왔는데...'

이 얘기를 들으며 정말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씁쓸하긴 하지만, 물질문명의 물을 좀 먹었다고 똑똑한 체 하던 우리에게 여지없이 마지막 펀치를 날린 소년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그리도 경계의 끈을 늦추고 살더란 말이냐, 하는 소년의 쨍쨍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흠, 그러니까 우리는 요르단의 꼬마하고도 적수가 안 된단 말이렷다.

졌다!

(*요르단에 대한 고정 관념을 심어주려고 적은 글도 아니요, 요르단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적은 글은 더더욱 아님을 밝힙니다. 단지 며칠 머무는 동안 저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이러했다라는 기록일 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