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요르단 여행 5: 와디럼, 다시 밟고 싶은 땅

WallytheCat 2018. 11. 21. 01:03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7/05/04 06:28 WallytheCat


와디럼(Wadi Rum), 이곳은 페트라에서 남쪽을 향해 차로 1시간 반 정도 가야하는 사막이다. 요르단에서 꼭 한군데만 봐야 한다면 페트라를 꼽는다. 봐야할 곳을 한군데 더 꼽으라 한다면, 와디럼에 가야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사막에 살면서 또 다른 사막에 간 나는, 와디럼에 가 보고서야 사막에도 그 풍경에 급수가 있구나, 격이 다르구나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사는 아랍 에미리트에는 바로 돈으로 전환되는 석유와 천연 개스 등이 있긴 하지만, 석유가 나지 않는 사막 나라 요르단은 이런 절경을 가졌으니 어찌 보면 공평한 것 같기도 하다. 글쎄, 요르단 사람들에게 물으면 석유를 갖는 것이 더 좋겠다고 단박에 항의를 해 댈지도 모르겠으나,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우리 일행은 하루 중 오후를 와디럼에 가 보기로 했다. 페트라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교통편, 입장료 등까지를 포함해 100JD에 흥정을 보았다. 우리를 태운 미니밴이 와디럼 마을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사륜구동 자동차로 갈아 탔다.



바꿔 탄 차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외관은 별로 낡아 보이지 않았는데, 안을 들여다 보니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사막에서 몰고 다녔던 차인가가 절로 짐작이 간다.


이 차의 주인은 베두인인 모하메드 아저씨. 아랍에서는 만나는 사람 중 상당수가 모하메드란 이름을 가졌다. 아마 길가다 큰 소리로 모하메드를 외치면 반 수도 넘게 돌아보지 않을까 싶다.

이 차를 처음 타자마자, 하도 자기 자랑을 하는 지라, 우리 일행은 지레 겁을 집어 먹고, 이 사람이 우리에게 벌이려는 음모는 무엇을까, 원하는 게 뭘까를 놓고 다소 심란하게 고민까지 했었다. 허나, 시간이 조금 지나다 보니, 이 아저씨,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 음모가 있긴 있었다. 우리까지도 와디럼을 사랑하게 만들려는 그 지독한 열정을 음모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베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와디럼에서의 사파리 운전은 십 년째라는데, 자신의 고향인 와디럼을 보여 주는 일에 어찌나 열심인지 그 프로정신에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그의 열정적인 설명 덕에 와디럼에 관해 많이 듣고 배웠다.

너무나 멋진 풍경을 가진 사막이긴 하지만, 이 아저씨가 아니고, 삶에 찌들고 지친 듯한 표정에, 큰 팁이나 요구하던 안내인과 함께 한 시간이었더라면, 그 멋진 풍경의 기억도 반감되었을 게 뻔하다. 그런 의미로 모하메드 아저씨의 열정과 고향 사랑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존 인물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의 흔적은 곳곳에 붙여진 이름들로 사람들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영국의 군인이자 외교관이기도 했던 그는 1917년에 와디럼에 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와디럼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그의 책 제목, 'The Seven Pillars of Wisdom'(지혜의 일곱 기둥, 1927년)에 따라 이 일곱 개로 이루어진 큰 바위의 이름이 붙여져 불려지고 있다. 


<Seven Pillars of Wisdom, Wadi Rum>

다른 곳에 비해 그다지 훌륭한 풍경을 가진 건 아니지만, 역시나 로렌스의 이름을 붙여 '로렌스의 샘'이라 불리우는 이곳은 바위산으로부터 흐르는 물을 파이프를 통해 큰 저장고에 받아 두었다가 사용한다. 사진에 대각선으로 놓여 산 허리까지 이어지는 수도관이 그 물길이다.


<Lawrence's Spring, Wadi Rum>

이 나라에는 2,000년된 것들이 흔하게 널렸다. 와디럼 사막 한가운데 보이는 이 바위에 새겨진 글도, 기원전 2세기 쯤, 사냥꾼이나 유목민이 새겨 놓은 것으로 추정된단다



'로렌스의 샘'과 고대에 새겨졌다는 글자를 보기 위해 잠시 멈춰 선 사파리 픽업 트럭들이다. 오후 햇볕이 제법 따가웠는데, 지붕도 없는 트럭에 앉아 가려면 좀 힘들겠다 싶다. 그에 비하니 뚜껑 달린 모하메드의 낡은 차는 호화로운 축에 속한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챘다.


<오른쪽의 흰 차에 모하메드 아저씨가 기대 선 모습이 보인다>




<Rock Bridge, Wadi Rum,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다리 위에 서서 내려다 본 와디럼 풍경>



<Rock Bridge, Wadi Rum, 바위 다리 위를 향해 걷는 사람들>


아래, 바위에 새겨진 글도 2,000년쯤 된 것이라 한다. 낙타를 타고 앉은 사람의 모습이 확실히 보이는 것이, 보이는 그대로 유목민의 여정이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래 사막 사진들을 보고 있으려니 와디럼에 대한 그리움이 샘솟는다. 내 이 다음에 다시 요르단을 찾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와디럼에 가기 위함일 것이다. 그곳에 가 커다란 바위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곳에 세운 텐트에서 며칠 묵고 싶다. 낮에는 지치도록 사막을 걷고, 밤에는 또 지치도록, 머리 위에 쏟아지는 별을 세어 보리라. 



지금까지 붉은 모래를 몇 군데 보아오긴 했지만 이렇게 붉디 붉은 모래를 보기는 또 처음이다. 모래가 뭐랄까, 입자가 굵고 영롱하다. 영롱한 것이 마치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하다. 보석이 별 것이겠는가. 돌이 귀하고 아름다우면 보석인 게지.


로렌스도 밟고 지났을 이 모래땅은 바람이라는 지우개로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또 지워내, 새 날에는 새 모래 언덕을 만들어 새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만 같다. 만감을 가진 자, 세상에 지친 자, 내 위를 용기내어 뚜벅뚜벅 걸어 보라, 큰 바람 한자락으로 모두 씻어 주리라, 하면서...



와디럼에서 페트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노을이다. 산 위라 그런지 구름이 잔뜩 낀 것이, 웬지 미적지근해 보인다. 이 다음에 와디럼의 사막에 갈 수 있다면, 그 붉고 광활한 사막에 자리잡고 앉아,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모두 보리라는 욕심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