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보이지 않는 길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7/06/21 12:01 WallytheCat
대략 2주의 계획으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서부의 여기 저기 몇 군데. 오라는 데 없어도 갈 데는 많다던가. 길 가다 해지고 허기지면 멈춰 아무 데서나 일박하고 배 채운 후 다시 길을 떠나는 게 나와 남편의 길 다니는 방식. 무계획이 계획이다. 어느 날 어느 길을 가다 멈추었는지, 달린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정도나 적어 볼 예정. 사진기에 연결하는 케이블을 안 가지고 떠나서 사진은 올릴 수가 없어 조금 아쉽지만...
Day 1, 6/20/2007
아침에 오하이오 콜럼부스를 떠나 인디에나주, 일리노이주를 거쳐 미조리주 롤라(Rolla)에서 일박.
마일리지: 526.7마일 (843km, 9시간 20분)
미국 중서부의 시작이라 할 만한 오하이오부터 지금까지의 장소들은 모두 평평하기만 해서 지루한 운전길이다. 도로변에 보이는 건 주로 아직 무릎 높이까지 자라지도 않은 옥수수밭, 콩밭, 가축 농장들 정도. 비 내린지가 좀 된 모양인지 풀들이 좀 건조해 보인다.
Day 2, 6/21/2007
I-40번 도로로 이어지는 미조리주, 오클라호마주를 지나 텍사스주 아마릴로(Amarillo) 근방에서 일박.
마일리지: 631.2마일 (1,010km, 10시간 17분)
오클라호마 하면 항상 나쁜 기상의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바람, 잠깐의 폭우 외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클라호마가 끝나갈 무렵부터 텍사스 북쪽 팬핸들(Panhandle) 지역까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고산지대쯤에서나 보는 초원지대, 구릉이 끝없다. 길 앞쪽에서는 일몰이, 머리 위에는 손톱보다 좀 큰 달이 떠 있는 걸 보느라 너무 늦게까지 길 위에 있었다, 식사하는 것도 잊고.
모텔 운은... 지지리도 없다. 어제 묵은 곳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퀴퀴한 건 여전하다. 모텔 담당 보건위생 검사원들은 다 소풍 갔나. 터번 쓴 남자가 쥔장같은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내일은 좀 나은 데가 찾아지려나.
Day 3, 6/22/2007
남은 텍사스 마저 지나고 드디어 뉴멕시코주 센타페(Santa Fe)에서 일박.
마일리지: 281마일 (450km, 4시간 48분)
누가 그은 주 경계선인지 모르지만 정말 잘 그었다. 텍사스를 지나 뉴멕시코에 이르자 풍경은 완연히 달라진다. 노랗고 빨간 꽃이 잔뜩 피어있는 선인장, 용설란 따위의 다육식물이 누렇게 마른 풀들과 어우러져 있다. 습도 한 자리수를 유지하는 공기를 들이마시자 폐를 포함한 기관지가 감탄의 소리를 내 보낸다, 고맙다고. 뉴멕시코의 하늘이 다른 곳과 어떻게 다른지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오후에 센타페에 도착. 모텔 운은... 아주 좋았다. 카페트 없이 스페인풍의 타일로 장식된 방은, 깨끗하기만 한 게 아니라 환상이다. 어떤 할머니가 길가에 있는 자기 방과 바꿔 달라고 하신단다. 에구, 모텔 운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마음에 좀 걸렸지만 눈 딱감고 거절했다.
Day 4, 6/23/2007
센타페를 떠나 타오스(Taos)로 갔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와 센타페를 지나쳐 다시 I-40번 도로에 든다. 알바커키(Albuquerque)를 지나 뉴멕시코주 그랜츠(Grants)에서 일박.
마일리지: 388.6마일 (622km, 7시간 53분)
아침에 일어나 모텔서 주는 식사를 하러 갔더니, 직원이 하는 말이, 그 할머니의 요구로 밤새 경비원을 세워 뒀단다. 대단한 할머니다. 절대 얼굴 마주치지 말아야지. 주말이 된 센타페는 너무 복작거린다. 아침에 뜨기로 한다.
타오스로 가는 길은, 넋놓고 가다가 길을 잃었다. 덕분에 또다른 뉴멕시코를 구경하긴 했다. 타오스는 센타페보다 작은 타운인데 길을 따라 갤러리를 뒤지는 재미가 나쁘지 않다.
뉴멕시코에도 원주민보호구역이 많이 있다. I-40번 도로변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대규모의 카지노 지역들을 볼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된다. 영적인 조상들과는 대조가 되게도, 이제 그들은 도박장 운영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한쪽 끝에서 또 다른 쪽 끝으로 내쳐 달리는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마음 따위는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도 모르겠다.
강적 만나다:
오늘 여정을 마감하기 한 시간쯤 전, 한 주유소에서 만난 가족. 내내 차 안에서 구기고 있던 팔다리를 펴는 동작을 하고 있으려니, 여자 하나가 옆에 섰다가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한 거냐고 말을 건다. 내 딴엔 대단한 장거리라 여기며 수요일부터 오하이오에서 떠나 예까지 왔다고 대답하며, 예의상 나도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죠지아주와 경계에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를(오하이오보다 훨씬 먼 거리) 어제, 그러니까 하루 반 전에 떠나 예까지 왔다는 거다. 남편, 남동생 그리고 그녀 셋이서 잠도 안 자고, 멈추지도 않고, 밥도 식당에 앉아 먹은 적 없이 교대로 운전을 하며 내리 달려 왔다는 거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했더니 아리조나주 그랜드 캐년이란다. 오늘밤도 멈춰 쉬지 않으면 내내 끼고 있는 콘텍트 렌즈가 어떻게 되어 자기가 실명을 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농담을 했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이라더니... 완전 강적이다. 나는 꼬리를 스윽 내리며, 여행 잘 마치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Day 5, 6/24/2007
뉴멕시코주 그랜츠(Grants)를 떠나 85마일 더 서쪽으로 가면 아리조나주에 이른다. 다시 45마일 더 가면 'Petrified Forest Nat'l Park.' 남북으로 20여 마일에 걸친 제법 큰 공원으로, 땅에 널린 많은 화석화된 나무들 따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수백, 아니 수천만 년이라는 세월의 더께가 상상할 필요도 없이 그저 쉽게 눈에 보인다. 한 때 숲이었던 곳이 바다가 되었다가 다지 육지, 또 다시 그 과정의 반복이...
그곳을 둘러보고 다시 I-40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길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택하기로 했다. 180번, 61번, 60번(Concho, Show Low, Globe, Superior를 거쳐) 도로는 Bear Mountain(해발 6,000ft?), Salt River Canyon 등을 거친다. 이 산길은 절경이지만 험한 길이라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저녁 6시 반쯤부터 기울기 시작하는 해는 시시각각 그 표정을 변화시키며 진정한 노을이란 이런 거다를 보여준다. 뉴멕시코에는 그곳만이 가지는 독특한 낮하늘의 표정과 바람을 지녔지만, 저녁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아리조나의 한 시간 반 동안 갖가지 색깔로 드라마처럼 이어지는 웅장하고 장엄한 노을과 붉은 땅의 색은 감히 흉내낼 수 없다. 이 노을을 예찬하며 넋을 놓고 보다 피닉스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잠시 잊었다. 늦게 도착한 결과는... 욕 마아니 먹었다. 그 정도가 노을보기와 맞바꾸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일리지: 450여마일 (750km)
Day 6-9, 6/24/2007-6/28/2007
아리조나 피닉스에 묵음.
Day 9, 6/28/2007
마일리지: 168.40마일 (269km)
저녁에 피닉스에서 투싼 공항으로 내려가 뉴욕서 온 가족 픽업, 같이 노갈레스로 내려감.
한밤중에 이구라님 댁에 도착. 새벽까지 이야기 보따리.
모두 어제 만난 이웃 친구들처럼 왕수다. 아이들까지 덩달아 새벽까지 그러고 놈.
Day 10, 6/29/2007
오전에 담장 하나를 남북으로 두고 멕시코와 미국이 공존하는 소도시 노갈레스 둘러 봄.
국경을 넘어 멕시코쪽 노갈레스에도 가 봄.
오후에는 노갈레스에서 차로 20여 분 북으로 가면 있는 투박(Tubac)에 가 갤러리, 상점들을 둘러 봄.
저녁에 이구라님 댁으로 돌아와 손님들이 부실한 마실 것에 대해 불평을 토로함.
이구라님과 싸모님, 손님들의 주문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가 사 오심.
주문서 목록: 보드카, 토닉 워터, 크랜베리 쥬스, 코로나 맥주, 하이네캔 맥주, 10달러 이상짜리 적포도주 한 병. 조금 있다 한 보따리 사 돌아오셨음. 포도주는... $11.99 주셨다 함.
만찬을 차려 배 두드리며 저녁 먹음.
물론 다시 새벽까지 이야기 보따리 다시 펼쳐짐.
Day 11, 6/30/2007
노갈레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툼스톤(Tombstone)에 감.
저녁에는 차돌 뭐라 부르는 고기 구워 식사. 오늘 저녁엔 이구라님께서 귀가길에 크게 쓰심. 한 병에 $14.99 짜리를 사 오셨으니. 아무래도 이 댁 가계부 빵구날 거 같아 조금 찔림.
물론 또 다시 천일야화 아닌 오일야화가 이어짐.
Day 12, 7/1/2007
투싼에 있는 사비노 캐년(Sabino Canyon)과 레몬산(Mt. Lemmon)에 감.
레몬산은 몇년 전 있던 큰 산불로 모양새가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 사이 많이 회복이 된 모습이라 그나마 다행.
저녁 메뉴: 튀긴 닭과 어제 남은 김치 찌개.
오늘밤도 예외없이 이구라님의 끝없는 구라 펼쳐짐.
Day 13, 7/2/2007
마일리지: 202.3마일 (324km, 3시간 15분)
한 식당서 거의 두시간 반 동안 길고 긴 아점을 먹으며 아쉽게 헤어져 피닉스로 다시 올라옴.
감사하단 인사드리려 전화드리니 안 받으시는 게 아무래도 온 가족이 손님 접대 과로 후유증을 앓고 계시는 건 아닌지... 4박 5일 간의 벙개라니, 유사이래 가장 긴 벙개 아닐까 싶음.
모두 반가웠구요, 멍멍 소녀 쏘피를 포함한 이구라님 가족 모두께 진심으로 감사드림다!
Day 14, 7/3/2007
마일리지: 375.5마일 (601km, 7시간 34분)
드디어 아침 일찍 피닉스를 떠나 세도나(Sedona)에 잠시 머물다.
플렉스테프(Flagstaff)에서 엔진 오일 교체 후 다시 북으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지나 유타(Utah)주에 도착.
멕시칸 햇(Mexican Hat)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가진 마을을 지나 유타주의 블러프(Bluff)란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해 일박. 하도 첩첩산중이라 전화는 안 터지는데, 인터넷은 된다.
Day 15, 7/4/2007
마일리지: 452.4마일 (724km, 9시간)
유타주 동남쪽 구석에 위치한 블러프(Bluff)를 떠나 콜로라도주로 향함. 160번 도로를 따라 코르테즈(Cortez, CO)를 지나, 145번 도로를 따르면 돌로레스(Dolores), 리코(Rico), 플레이서빌(Placerville), 리지웨이(Ridgway)에 이른다. 거기서 550번, 50번 도로를 따라 북으로 가면 I-70번 교차로에 이른다. 거기서부터 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 리조트 지역들을 모두 지나며 로키산맥의 절경을 보여주지만 고속도로라 할지라도 아찔하게 무서운 길의 연속이다. 한밤에 길을 더듬어 실버톤(Silverthorne, CO)이라는 곳에 멈춰 일박.
Day 16, 7/5/2007
마일리지: 417.4마일 (668km, 8시간 15분)
실버톤(Silverthorne)에서 로키산 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l Park)은 그리 멀지 않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650m 가 넘는다니, 그 길은 말 그대로 아슬아슬하다. 산 꼭대기에는 여기저기 만년설이 많이 남아 있다. 대충 구경을 마치고, 덴버(Denver)시에서 다시 I-70에 들어 콜로라도주를 다 지나, 캔사스주에까지 왔다. 캔사스주 경계부터는 정말 표나게 풍경이 달라진다. 평평 그 자체다. 그래도 그 평평함에 풍요를 더해 주는 건 다 익어 황금빛을 발하며 출렁이는 밀밭. 밀밭이 끝이 없다. 캔사스...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 생각이 난다.
'평원의 오아시스(An Oasis on the Plains)'라 자칭하는 콜비(Colby, KS)에서 일박.
Day 17, 7/6/2007
마일리지: 707.9마일 (1,133km, 11시간 9분)
캔사스를 마저 지나 일리노이주에 이름. 말로야 간단하지만 끝없어 보이는 길을 장시간 운전해야하니 지리, 지리하다. 내일 집에서 뭔가를 배달받아야 할 일이 있는데, 친척 모두 결혼식에 가야한단다. 밤새라도 달려 집에 도착하려고 했지만, 몸이 쉬자고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아야 하다니... 모텔서 세 시간만 눈부치고 3시 반에 떠나기로 하고, 일리노이주 에핑햄(Effingham, IL)에서 일박.
Day 18, 7/7/2007
마일리지: 320.6마일 (513km, 5시간 10분)
새벽 3시 반에 출발해서 일리노이주를 마저 달리고, 인디에나주를 지나 드뎌 집에 도착.
오전에 배달한다는 사람들은 오후나 되어서야 옴.
이번 여행 마일리지 합계: 4,998마일 + 500여 마일 (7,997km + 800km)
Day 1, 6/20/2007
아침에 오하이오 콜럼부스를 떠나 인디에나주, 일리노이주를 거쳐 미조리주 롤라(Rolla)에서 일박.
마일리지: 526.7마일 (843km, 9시간 20분)
미국 중서부의 시작이라 할 만한 오하이오부터 지금까지의 장소들은 모두 평평하기만 해서 지루한 운전길이다. 도로변에 보이는 건 주로 아직 무릎 높이까지 자라지도 않은 옥수수밭, 콩밭, 가축 농장들 정도. 비 내린지가 좀 된 모양인지 풀들이 좀 건조해 보인다.
Day 2, 6/21/2007
I-40번 도로로 이어지는 미조리주, 오클라호마주를 지나 텍사스주 아마릴로(Amarillo) 근방에서 일박.
마일리지: 631.2마일 (1,010km, 10시간 17분)
오클라호마 하면 항상 나쁜 기상의 기억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바람, 잠깐의 폭우 외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클라호마가 끝나갈 무렵부터 텍사스 북쪽 팬핸들(Panhandle) 지역까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고산지대쯤에서나 보는 초원지대, 구릉이 끝없다. 길 앞쪽에서는 일몰이, 머리 위에는 손톱보다 좀 큰 달이 떠 있는 걸 보느라 너무 늦게까지 길 위에 있었다, 식사하는 것도 잊고.
모텔 운은... 지지리도 없다. 어제 묵은 곳보다는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퀴퀴한 건 여전하다. 모텔 담당 보건위생 검사원들은 다 소풍 갔나. 터번 쓴 남자가 쥔장같은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내일은 좀 나은 데가 찾아지려나.
Day 3, 6/22/2007
남은 텍사스 마저 지나고 드디어 뉴멕시코주 센타페(Santa Fe)에서 일박.
마일리지: 281마일 (450km, 4시간 48분)
누가 그은 주 경계선인지 모르지만 정말 잘 그었다. 텍사스를 지나 뉴멕시코에 이르자 풍경은 완연히 달라진다. 노랗고 빨간 꽃이 잔뜩 피어있는 선인장, 용설란 따위의 다육식물이 누렇게 마른 풀들과 어우러져 있다. 습도 한 자리수를 유지하는 공기를 들이마시자 폐를 포함한 기관지가 감탄의 소리를 내 보낸다, 고맙다고. 뉴멕시코의 하늘이 다른 곳과 어떻게 다른지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오후에 센타페에 도착. 모텔 운은... 아주 좋았다. 카페트 없이 스페인풍의 타일로 장식된 방은, 깨끗하기만 한 게 아니라 환상이다. 어떤 할머니가 길가에 있는 자기 방과 바꿔 달라고 하신단다. 에구, 모텔 운이 자꾸 발목을 잡는다. 마음에 좀 걸렸지만 눈 딱감고 거절했다.
Day 4, 6/23/2007
센타페를 떠나 타오스(Taos)로 갔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와 센타페를 지나쳐 다시 I-40번 도로에 든다. 알바커키(Albuquerque)를 지나 뉴멕시코주 그랜츠(Grants)에서 일박.
마일리지: 388.6마일 (622km, 7시간 53분)
아침에 일어나 모텔서 주는 식사를 하러 갔더니, 직원이 하는 말이, 그 할머니의 요구로 밤새 경비원을 세워 뒀단다. 대단한 할머니다. 절대 얼굴 마주치지 말아야지. 주말이 된 센타페는 너무 복작거린다. 아침에 뜨기로 한다.
타오스로 가는 길은, 넋놓고 가다가 길을 잃었다. 덕분에 또다른 뉴멕시코를 구경하긴 했다. 타오스는 센타페보다 작은 타운인데 길을 따라 갤러리를 뒤지는 재미가 나쁘지 않다.
뉴멕시코에도 원주민보호구역이 많이 있다. I-40번 도로변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대규모의 카지노 지역들을 볼 때마다 복잡한 심경이 된다. 영적인 조상들과는 대조가 되게도, 이제 그들은 도박장 운영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한쪽 끝에서 또 다른 쪽 끝으로 내쳐 달리는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마음 따위는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도 모르겠다.
강적 만나다:
오늘 여정을 마감하기 한 시간쯤 전, 한 주유소에서 만난 가족. 내내 차 안에서 구기고 있던 팔다리를 펴는 동작을 하고 있으려니, 여자 하나가 옆에 섰다가 어디서부터 여행을 시작한 거냐고 말을 건다. 내 딴엔 대단한 장거리라 여기며 수요일부터 오하이오에서 떠나 예까지 왔다고 대답하며, 예의상 나도 같은 질문을 그녀에게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죠지아주와 경계에 있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를(오하이오보다 훨씬 먼 거리) 어제, 그러니까 하루 반 전에 떠나 예까지 왔다는 거다. 남편, 남동생 그리고 그녀 셋이서 잠도 안 자고, 멈추지도 않고, 밥도 식당에 앉아 먹은 적 없이 교대로 운전을 하며 내리 달려 왔다는 거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했더니 아리조나주 그랜드 캐년이란다. 오늘밤도 멈춰 쉬지 않으면 내내 끼고 있는 콘텍트 렌즈가 어떻게 되어 자기가 실명을 할지도 모를 일이라며 농담을 했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이라더니... 완전 강적이다. 나는 꼬리를 스윽 내리며, 여행 잘 마치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Day 5, 6/24/2007
뉴멕시코주 그랜츠(Grants)를 떠나 85마일 더 서쪽으로 가면 아리조나주에 이른다. 다시 45마일 더 가면 'Petrified Forest Nat'l Park.' 남북으로 20여 마일에 걸친 제법 큰 공원으로, 땅에 널린 많은 화석화된 나무들 따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수백, 아니 수천만 년이라는 세월의 더께가 상상할 필요도 없이 그저 쉽게 눈에 보인다. 한 때 숲이었던 곳이 바다가 되었다가 다지 육지, 또 다시 그 과정의 반복이...
그곳을 둘러보고 다시 I-40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길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택하기로 했다. 180번, 61번, 60번(Concho, Show Low, Globe, Superior를 거쳐) 도로는 Bear Mountain(해발 6,000ft?), Salt River Canyon 등을 거친다. 이 산길은 절경이지만 험한 길이라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저녁 6시 반쯤부터 기울기 시작하는 해는 시시각각 그 표정을 변화시키며 진정한 노을이란 이런 거다를 보여준다. 뉴멕시코에는 그곳만이 가지는 독특한 낮하늘의 표정과 바람을 지녔지만, 저녁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아리조나의 한 시간 반 동안 갖가지 색깔로 드라마처럼 이어지는 웅장하고 장엄한 노을과 붉은 땅의 색은 감히 흉내낼 수 없다. 이 노을을 예찬하며 넋을 놓고 보다 피닉스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잠시 잊었다. 늦게 도착한 결과는... 욕 마아니 먹었다. 그 정도가 노을보기와 맞바꾸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일리지: 450여마일 (750km)
Day 6-9, 6/24/2007-6/28/2007
아리조나 피닉스에 묵음.
Day 9, 6/28/2007
마일리지: 168.40마일 (269km)
저녁에 피닉스에서 투싼 공항으로 내려가 뉴욕서 온 가족 픽업, 같이 노갈레스로 내려감.
한밤중에 이구라님 댁에 도착. 새벽까지 이야기 보따리.
모두 어제 만난 이웃 친구들처럼 왕수다. 아이들까지 덩달아 새벽까지 그러고 놈.
Day 10, 6/29/2007
오전에 담장 하나를 남북으로 두고 멕시코와 미국이 공존하는 소도시 노갈레스 둘러 봄.
국경을 넘어 멕시코쪽 노갈레스에도 가 봄.
오후에는 노갈레스에서 차로 20여 분 북으로 가면 있는 투박(Tubac)에 가 갤러리, 상점들을 둘러 봄.
저녁에 이구라님 댁으로 돌아와 손님들이 부실한 마실 것에 대해 불평을 토로함.
이구라님과 싸모님, 손님들의 주문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가 사 오심.
주문서 목록: 보드카, 토닉 워터, 크랜베리 쥬스, 코로나 맥주, 하이네캔 맥주, 10달러 이상짜리 적포도주 한 병. 조금 있다 한 보따리 사 돌아오셨음. 포도주는... $11.99 주셨다 함.
만찬을 차려 배 두드리며 저녁 먹음.
물론 다시 새벽까지 이야기 보따리 다시 펼쳐짐.
Day 11, 6/30/2007
노갈레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툼스톤(Tombstone)에 감.
저녁에는 차돌 뭐라 부르는 고기 구워 식사. 오늘 저녁엔 이구라님께서 귀가길에 크게 쓰심. 한 병에 $14.99 짜리를 사 오셨으니. 아무래도 이 댁 가계부 빵구날 거 같아 조금 찔림.
물론 또 다시 천일야화 아닌 오일야화가 이어짐.
Day 12, 7/1/2007
투싼에 있는 사비노 캐년(Sabino Canyon)과 레몬산(Mt. Lemmon)에 감.
레몬산은 몇년 전 있던 큰 산불로 모양새가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 사이 많이 회복이 된 모습이라 그나마 다행.
저녁 메뉴: 튀긴 닭과 어제 남은 김치 찌개.
오늘밤도 예외없이 이구라님의 끝없는 구라 펼쳐짐.
Day 13, 7/2/2007
마일리지: 202.3마일 (324km, 3시간 15분)
한 식당서 거의 두시간 반 동안 길고 긴 아점을 먹으며 아쉽게 헤어져 피닉스로 다시 올라옴.
감사하단 인사드리려 전화드리니 안 받으시는 게 아무래도 온 가족이 손님 접대 과로 후유증을 앓고 계시는 건 아닌지... 4박 5일 간의 벙개라니, 유사이래 가장 긴 벙개 아닐까 싶음.
모두 반가웠구요, 멍멍 소녀 쏘피를 포함한 이구라님 가족 모두께 진심으로 감사드림다!
Day 14, 7/3/2007
마일리지: 375.5마일 (601km, 7시간 34분)
드디어 아침 일찍 피닉스를 떠나 세도나(Sedona)에 잠시 머물다.
플렉스테프(Flagstaff)에서 엔진 오일 교체 후 다시 북으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지나 유타(Utah)주에 도착.
멕시칸 햇(Mexican Hat)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가진 마을을 지나 유타주의 블러프(Bluff)란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해 일박. 하도 첩첩산중이라 전화는 안 터지는데, 인터넷은 된다.
Day 15, 7/4/2007
마일리지: 452.4마일 (724km, 9시간)
유타주 동남쪽 구석에 위치한 블러프(Bluff)를 떠나 콜로라도주로 향함. 160번 도로를 따라 코르테즈(Cortez, CO)를 지나, 145번 도로를 따르면 돌로레스(Dolores), 리코(Rico), 플레이서빌(Placerville), 리지웨이(Ridgway)에 이른다. 거기서 550번, 50번 도로를 따라 북으로 가면 I-70번 교차로에 이른다. 거기서부터 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 리조트 지역들을 모두 지나며 로키산맥의 절경을 보여주지만 고속도로라 할지라도 아찔하게 무서운 길의 연속이다. 한밤에 길을 더듬어 실버톤(Silverthorne, CO)이라는 곳에 멈춰 일박.
Day 16, 7/5/2007
마일리지: 417.4마일 (668km, 8시간 15분)
실버톤(Silverthorne)에서 로키산 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l Park)은 그리 멀지 않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650m 가 넘는다니, 그 길은 말 그대로 아슬아슬하다. 산 꼭대기에는 여기저기 만년설이 많이 남아 있다. 대충 구경을 마치고, 덴버(Denver)시에서 다시 I-70에 들어 콜로라도주를 다 지나, 캔사스주에까지 왔다. 캔사스주 경계부터는 정말 표나게 풍경이 달라진다. 평평 그 자체다. 그래도 그 평평함에 풍요를 더해 주는 건 다 익어 황금빛을 발하며 출렁이는 밀밭. 밀밭이 끝이 없다. 캔사스...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 생각이 난다.
'평원의 오아시스(An Oasis on the Plains)'라 자칭하는 콜비(Colby, KS)에서 일박.
Day 17, 7/6/2007
마일리지: 707.9마일 (1,133km, 11시간 9분)
캔사스를 마저 지나 일리노이주에 이름. 말로야 간단하지만 끝없어 보이는 길을 장시간 운전해야하니 지리, 지리하다. 내일 집에서 뭔가를 배달받아야 할 일이 있는데, 친척 모두 결혼식에 가야한단다. 밤새라도 달려 집에 도착하려고 했지만, 몸이 쉬자고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아야 하다니... 모텔서 세 시간만 눈부치고 3시 반에 떠나기로 하고, 일리노이주 에핑햄(Effingham, IL)에서 일박.
Day 18, 7/7/2007
마일리지: 320.6마일 (513km, 5시간 10분)
새벽 3시 반에 출발해서 일리노이주를 마저 달리고, 인디에나주를 지나 드뎌 집에 도착.
오전에 배달한다는 사람들은 오후나 되어서야 옴.
이번 여행 마일리지 합계: 4,998마일 + 500여 마일 (7,997km + 8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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