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출장 요리

WallytheCat 2018. 11. 24. 20:49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11/05/23 03:52 WallytheCat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몇 시간이고 느긋하게 앉아,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지난 연말 즈음부터 꽤 자주 주말에 모여 앉아 그랬던 것 같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여덟에서 열 명 정도가 모였다. 몇 번 그렇게 모이다가는 고정 멤버라도 되는 양, 모이자고 누군가 옆구리를 찌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날 혹은 그 다음날 저녁으로 약속을 정했다. 그러면 거절하는 법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정한 시간에, 독립운동가들 모이듯, 소리소문도 내지 않고 속속 모여 들었다. 한국식 밥과 반찬 몇 가지에 스테이크, 양갈비, 큰 새우, 연어 같은 것들이 주 메뉴가 되는 날이 많지만, 급하게 당일 저녁으로 약속을 잡은 날은 파키스탄 친구가 식당에서 사오는 파키스탄 음식에 포도주나 맥주를 조금 곁들인 적도 있었다.  

모이는 사람들의 반쯤은 내가 일하는 학교 사람들인데, 본래부터 이들과 이렇듯 단합이 잘 되어 화기애애하지는 않았다. 같이 일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일도, 뒤에서 서로 흉보는 일도 허다했었다. 이렇듯 사이좋고 단란해진 동기는 '리틀 무바라크'의 하야를 위한 모의가 이루어질 즈음부터, 화합과 단합의 필요를 스스로 느끼게 되면서부터였다. 결국 리틀 무바라크가 동료들의 화합을 이루어 낸 공이 크다. 본인은 그걸 알려나.

매번 내 집에서 대부분의 음식을 준비하고 먹었던 것을 보답하는 의미에서 호주인 동료의 이탈리아인 남편이 요리를 해주고 싶다며 날을 잡았다. 이탈리아인이 해 준다는 이태리 요리를 거절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면 안 되지.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의 집은 좁아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불편하니 요리를 해 가져와 내 집에서 먹자고 했다. 집주인으로서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뭣해서 간단한 샐러드와 과일만 몇 가지 준비해 두었다. 일곱 시에 온다던 요리사 부부는 여덟 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준비를 다 끝내고 저녁을 먹은 건 아홉 시도 훨씬 넘어서였다. '이렇게 오래 굶겼다 먹이면 뭘 먹여도 맛있다 하지 않을까.' 속으로 나는 이렇게 궁시렁거렸다.      

파스타는 내 집에서 끓여내긴 했지만, 그들이 오후 내내 했다는 요리 보따리를 푸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요리는 신선한 베이즐을 소스의 재료로 쓴다는 페스토, 구운 빵에 생마늘을 박박 긁어 바른 마늘빵, 구워 절인 호박요리, 다진 낙지요리, 농어구이, 살라미, 그 외 종류가 다른 포도주들, 유리병에 든 코카콜라 여섯 병, 독일 맥주 여러 병, 후식용 이태리 케잌, 쵸콜릿 등...

예정된 시간보다 식사가 두어 시간 늦기는 했지만, 내가 파스타를 끓이며 땀을 좀 흘리긴 했지만, 내 집 토스터기가 느려 터졌다며 불평을 듣긴 했지만,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부부의 싸움 중간에 끼어 '이걸 말려야 하나, 붙여야 하나'를 두고 불편한 순간을 겪기도 했지만, 떡하니 한 상 맛깔나게 차려 놓은 식탁을 보고는 모든 불평과 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는데 어쩌랴. 아직 기운이 넘쳐 싸우는 나이 차 열살 나는 부부는 또 어쩌랴, 귀엽게 봐주어야지. 그나저나 둘 중 하나라도 얼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텐데...  


<Friday 5/6/2011, 달랑 한 장 찍은 사진이, 몹시 시장했던 듯 좀 떨렸다.>



아, 이 날 저녁, 지난 팔 년을 무탈하게 써오던 플라스틱 의자 하나가 결국 이태리 요리의 올리브기름과 생마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앉았던 사람 안 상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햇볕에 하얗게 닳고 삭은 플라스틱 의자 하나를 재활용 회사에 보내는 것으로 사막의 봄은 마감되었다. 공식적인 여름은 그 날 이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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