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여름 피크닉 단상

WallytheCat 2018. 11. 25. 00:53

Peeping@theWorld/Days in Ohio 2015/07/18 06:20 WallytheCat


시부모님 살아계실 때, 매해 여름방학이 되어 오하이오 시댁에 도착하면 그 며칠 후 온 가족과 친지들을 초대해 시댁 뒷마당에서 피크닉을 하곤 했다. 다복하여 형제자매들이 많았던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의 양가 형제자매 분들, 그 분들 자녀(남편의 사촌들) 모두의 이름자와 얼굴을 기억해 내는 건 내게 늘 너무나 큰 숙제였다. 대화를 나눠야 할 때면 그저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게 두루뭉술 웃으며 넘어갈 밖에.

매해 모이는 사람들의 수는 달랐지만,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오하이오에 사는 친척들은 가까이 살아도 서로 얼굴 한 번 안 보고 산다던데, 나는 왜 매해 꼬박꼬박 그 많은 친척들을 상봉해야 하는지에 관해 늘 불만이기도 했다. 시어머님이 살아계실 때는 피크닉의 규모가 컸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시아버님이 혼자 되시자 규모도 축소되고 행사도 간헐적인 것이 되었다. 어느 해 시아버님이, 마당 너른 둘째 시누이 집에서 피크닉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마지못해 그 행사를 준비하던 시누이의 긴장감이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던 게 기억난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큰 행사를 집에서 하지 않겠다며 하던 다짐까지도.

그러더니 웬걸, 그 여름 피크닉은 계속 둘째 시누이 집에서 열리고, 그저 막연한 여름 어느 날의 피크닉이 아니라 독립기념일에 벌어지는 공식행사처럼 되었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가 싶은데, 그 규모는 점점 커져서 참가 인원이 150명도 넘는다.

첫 해 긴장으로 덜덜 떨던 둘째 시누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연중 행사의 주최자로서 일년 내내 계획하고, 조직하고, 행동하는, 변모하여 당당한 둘째 시누이만 남았다. 그 행사에 모든 열정과, 그 열정이 넘치고 흘러 집착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까지 쏟아붓는 이유 몇 가지는 짐작이 된다. 오래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 두고 결정한 은퇴 덕에 남아 도는 시간, 한적하고 너른 시골집이 일년에 한 번씩 단장을 마치고 북적거리는 것에 대한 설레임, 또 그 준비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잔잔하기만 한 일상에 흥분을 가미해 주는 점 등. 행사를 위해 쓰는 비용과 노력이 만만치 않을텐데, 그런 것에 대한 불평이나 언급은 전혀 없다. 비용이나 노력 따위보다 둘째 시누이에게 주는 정신적 보상이 훨씬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크닉 다음 날이면 둘째 시누이는 다음 해 피크닉 계획을 시작한다.

그 덕에, 나를 포함한 둘째 시누이의 만만한 똘마니들은 행사 며칠 전부터 그 집으로 가 엄청난 양의 노동을 한다. 모두 힘들어 하면서도 그 중 어느 누구도 감히, 그 행사 규모를 축소시켜 가까운 가족들끼리만 모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지 못한다.

요리 몇 가지는 주문해 배달을 받고, 참가자들이 후식이나 샐러드 등의 음식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는 주로 청경채, 부추, 여린 배추, 양파, 파, 고수 등으로 겉절이를 넉넉하게 해 내놓는다. 오후 네 시에 피크닉이 시작되어 식사를 마칠 즈음인 다섯 시에 물풍선 싸움이 진행된다. 물풍선 싸움이 끝나고 정리를 한 후 모두 '엘비스'라 부르는 엘비스 노래 모창 가수를 기다린다. 그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면,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쯤의 엘비스 공연이 시작된다. 엘비스와 십대 시절을 함께 했던 둘째 시누이에게, 그 또래들에게 엘비스는 여전히 특별한 의미다. 그런 이유로 엘비스는 고정 출연자다. 엘비스 외, 올해는 배꼽춤(belly dance) 댄서가 초대되었다. 작년에는 캐리커처 화가(caricaturist)가, 재작년에는 마술사겸 저글러(juggler)가 초대되어 오기도 했다. 모든 행사를 대충 마치고 깊은 밤이 되면, 이 시골 동네 시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는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의 불꽃놀이가 끝나면, 마당에 불을 피우고 밤새 얘기하며 놀던가, 집안 구석 어디, 혹은 미리 자리잡고 쳐 둔 마당 위 텐트에서 눈을 붙이던가 한다. 다음 날 아침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당 청소에 동참한다. 왁자지껄 모여 부엌에 준비해 놓은 아침 식사까지 마치면 일박이일의 파티는 비로소 끝이 난다.

이 행사를 위해 이른 봄부터 둘째 시누이가 내게 은밀히 접촉해 몇 번씩 부탁하는 특별임무가 하나 있다. 단체 사진을 찍는 일이 그것이다. 내가 전문 사진사도 아니니, 매해 그러마고 대답하는 일이 사실 부담스럽다. 허나 그 날 찍은 사진을 일년 내 보고 또 보며 즐거워할 것을 뻔히 아니, 늘 거절도 못하고 그러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단체 사진 몇 장만 달랑 찍어줄 수는 없다. 행사 내내 돌아다니며 다큐멘터리식으로 장면들을 다 담는 일도 그 은밀한 부탁에 포함됨을 어찌 모르겠나. 단체 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지난 몇 년 간 익숙해졌는지, 올해는 모두 자발적으로 사진기 앞에 모여 주는 신통한 일이 생겼다.

시누이는 내가 선별해 구워 준 575장의 사진과 두 개의 비디오를 내년 그 날이 올 때까지 보고 또 볼 것임을 잘 안다. 허구한 날 엘비스와 찍은 사람들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릴 것도. 또 분명 그 모든 사진을 인화해 사진첩을 만들어 내년 행사 당일 돌려 보게 할 것도. 그래서 나와 남편이 찍은 1,000장쯤 되는 사진을 다 줄 수가 없다. 1,000장 모두가 인화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Saturday, 7/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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