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지금은 라마단 중

WallytheCat 2018. 11. 21. 12:46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7/09/18 22:30 WallytheCat


배고픈 사람과 방금 식사를 마쳐 배부른 사람 둘이, 탁자 가운데 놓인 사과 한 알을 놓고 승부를 겨룬다면야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이기기 쉽지 않을 거다. 제대로 된 비유가 아닐 수 있지만, 요즈음 내가 놓인 환경이 그 비슷한 모양새 같아 해 보는 말이다.

지난 주 목요일, 그러니까 9월 13일부터 올해의 라마단이 막을 열었다. 여기 살며 매해 피부로 느낀 것 외에 라마단에 대해 깊이있게 제대로 알아본 적은 없다. 그저 주위에서 얻어들은 정보 정도다. 매해 한 달 정도 계속되는 라마단은, 매해 이 주 정도씩 그 일정이 당겨진다는 것, 새벽에 해가 뜸과 동시에 시작되는 금식은 해가 지는 시각쯤에 해제된다는 걸 모스크에서 스피커로 알려 준다는 것. 금식 기간 동안에는, 어린이, 병약자, 임산부 등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공공 장소에서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다. 일몰과 함께 그 날의 금식이 해제되면 무슬림들은 12-15분 간 이프타(Iftar)를 든다. '이프타'란 금식 후 속을 달래기 위해 물, 우유, 야자 열매 등으로 가볍게 먹는 아침 식사, 그러니까 그 날의 첫 식사를 이름이다.

이 금식을 잘 지키고 절제한 한 달 후의 결과는 심신의 건강과 영혼의 맑음으로 이어지지만,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라마단 기간 동안 밤 시간의 과식으로 인한 부작용 내지 후유증도 상당수 발생한다 들었다. 금식이 쉽지 않다는 건 모두 아는 일. 이 기간 동안 제대로 된 금식을 시행하지 않으면, 없는 병도 생길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여하튼 라마단을 준비하는 건 무슬림 뿐만 아니라 이곳의 주민, 관찰자의 입장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함에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생각해 보라. 일단 낮에 별 생각없이 외출을 했다 하면, 음식은 커녕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이 종일 계속되는 건데, 그 일이 이런 사막의 기후에서는 탈수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불필요한 외출은 삼가는 게 차라리 낫다.

지난 주, 라마단이 시작된지 이틀째 되는 날 오후였다. 집에서 차로 잠깐 거리에 있는 동네 마켓에 갔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공교롭게도 금요일 오후 1시 50분. 대대적인 장을 보러 간 것도 아니고, 몇가지 사소한 물건을 사러 갔다가, 마켓 바로 옆에 있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치고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허기진 무슬림 남자들로 장사진을 이룬 장면과 맞닥뜨린 거다. 짐작은 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 날은 금식 두 번째 날. 금식 시작 후 처음 이틀이나 사흘까지가 가장 어렵다는데, 그 두 번째 날이었던 거다. 금요일 기도를 마치고 나온 배고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집으로 가 잠을 자는 일 보다야, 금식이 해제된 저녁 시간에 맛있게 먹을 걸 상상하며 음식 재료를 사는 일이 최고의 환상일 수 있지 않겠는가. 행렬 속에는 여자 하나 없다. 무슬림 남자들의 허기져 퀭한 수십 쌍의 눈들이 일제히 마켓 문쪽에 선 이쪽으로 향한다. '그쯤이야...' 하고 호기로이 무시해 버리기엔 부담스런 갯수의 눈동자들이다.

저 배고픈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막 점심을 마쳐 배고픈 거랑 거리가 먼 내가, 설거지용 세제 같은 걸 달랑 들고 한 시간쯤 그 줄에 서서 기다릴 인내도, 배짱도 없어,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탁자 위에 놓인 사과 한 알은 배고픈 자의 몫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시선, 배가 고파 퀭한 큰 무리의 시선 같은 건 강렬한 법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늘 아침에 내가 한 일은 배고픈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제법 비밀스런 일이라고나 할까. 배고파 사나워진 운전자들로 가득한 공사 중인 도로를 요리조리 헤치고 왕복 두 시간 운전을 해 친구네 가서 아점을 들고 왔다. 너무나 맛있었다는 말은, 아직 오늘의 이프타를 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로, 꺼내지도 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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