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그 날, 해를 경배하다

WallytheCat 2018. 11. 21. 17:30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3/17 04:54 WallytheCat 




물기 먹은 흔적이라곤, 반질거리는 윤기라곤 보이지 않는 왜소하게 배배 마른, 성냥 단번에 쓰윽 그어 불 붙이면 망설임 한 점 없이 그대로 활활 타들어갈 것 같은, 모래 위 가시 잔뜩 돋힌 잡목 가지 사이로 붉은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어쩌면, 일년이면 겨울에 단 몇 번, 빗방울이 제 몸 위에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면, 차고 부드러운 빗물의 감촉을 느긋하게 즐길 줄 알기 보다, 먼저 그 낯선 것의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움추려 공포에 떨며 요란스럽게 분석을 하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가슴을 진정지키곤, 그 귀하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들이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척박함을 탓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산다. 극소량의 양분과 물기가 주어지면 조금 자라다, 그도 없으면 이슬을 먹고 살다, 그도저도 없는, 만물을 지글지글 끓여 대는 땡볕의 계절 여름이면, 죽은 듯이 미동도 않고 뿌리를 조금 더 깊이 모래 속에 처박은 채 공기 중의 습도를 받아들이며 견디어낼 것이다. 그걸 생존이라 부른다던가.

어느 날, 이 지역 모두가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지면, 그들은 흔적도 없이 땅 속 모래와 함께 뒤집혀져 생애를 마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왜 여기서 사느냐고? 어느 날 우연히 그들의 씨가 여기에 뿌려져서, 여기서 났으니 그냥 여기 산다, 죽을 때까지. 그건 숙명이라 부른다더라. 



낮은 언덕으로부터 조금 높은 언덕으로 오르다 보니, 마치 해가 지는 게 아니라 붉은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며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다. 



매일 뜨고 매일 지는 게 해다. 일상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리 제법 어여쁘게 단장하고 지는 해는 예서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개는 온종일 모래 먼지를 홈빡 뒤집어쓰고 있다가 세수도 않고 잠자리에 드는 꼴을 하며 꼴깍, 어떤 때는 지는지도 모르게 슬그머니 숨었다 꼬리를 감추곤 하는 데 말이다. 


"오늘 해는 경이롭다, 그치?"
"응, 그래도 입은 다물고 봐라, 먼지 드갈라."


<3/13/2008, Um Al Quwain, 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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