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스친 인연이 남기고 간 숙제

WallytheCat 2018. 11. 21. 17:17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3/08 06:32 WallytheCat


지난 한 주는 영국서 파견(?)된 패션 디자인 교수와 함께 일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패션 워크샵을 하게 되었다. 패션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내가 어쩌다 패션 워크샵에까지 엮이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원. 온다는 패션 디자인 교수가 일본계 영국 거주자라, 같은 아시아에서 온 한국인인 나와 통하는 데가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였는지, 혹은 그 외 다른 깊은 속이 있던 건지는, 나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

무슨 수업이든 대개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 되던 실기 수업이 단 일주일 만에 행해져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수십 명을 모두 한꺼번에 한 실기실 안에 몰아 넣어 진행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그저 귀 따가운 소음으로 들리는 여러 다른 종류의 음악들, 온데 널린 재료들과 그 다양한 냄새. 그 무질서와 혼란이라니... 종일 그러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뻗어 버리곤 했다.

패션 교수인 그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일주일에 대한 내 역할의 윤곽이 저절로 내 눈앞에 펼쳐 그려지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녀에 대한 느낌은 단단한 슬픔 속에 갖힌 누에고치 같다는 것으로 남아 있지만... 암튼, 서로 첫눈에 반해 죽이 척척 맞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녀에게는 나라는 부류의 사람의 눈에 뭔가 독특하게 보이는 점 몇 가지가 있었다.

그녀는 우선, 땀을 심하게 흘렸다. 처음엔 추운 나라에서 와서 이곳 날씨가 더워 그런가보다 했는데, 계속 지켜 보려니 꼭 그런 것 같진 않고, 그저 평생의 체질이 그런 듯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수분 보충을 위해 끊임없이 물을 마셨다. 얼마나 불편할까 싶다.

끼니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내 자신의 끼니는 물론 남의 끼니까지 챙기고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내게, '먹는 건 얼마든지 건너 뛰어도 되지만, 당장 담배만은 한 대 피워야겠다'며 천천히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보며, 저 너무나 왜소해서 바람 불면 훅 꺼질 것 같은 몸피가 담배 연기와 니코틴의 공격에 얼마나 더 오래 버티어 줄까 싶어 은근히 걱정까지 된다.

게다가 그녀가 가진 한 가지 큰 장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방향 감각이 완전 '제로'인 거였다. 본인 스스로 공포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아무 곳에나 절대 혼자 쏘다니는 일 따위는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처음 대하는 건물 안에서는 누구나 조금씩 헤매기는 한다지만, 그녀는 바로 몇 미터 앞에서 왼쪽으로 가라는 내 10초 전의 안내도 무시하고, 그저 대책없이 계속 똑바로 가고 있는 식이었다. 그걸 뒤에서 지켜보던 나로서는 도저히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혼자 학교 안을 종일 헤매고 다니느라 수업 진행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에 비해 작게 느껴지는 존재를 대하게 되면, 그것이 물질적인 몸피가 되었든 정신의 크기가 되었든, 보호해줘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하는 법인 모양이다. 물론 정신이나 의식보다도 약육강식의 본능이 앞서 꿀꺽 잡아 먹어 버리는 일도 종종 벌어지곤 하지만 말이다. 옆에 서면 나 자신이 거인처럼 느껴지는 처지에, 어찌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이 앞서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걸 해내야 하는 일주일짜리 수업은 수업대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걸 떠나 학교서는 물 건너 멀리서 낯선 곳에 출장 온 그녀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기도 했으니, 결국은 학교서 해야 할 손님 챙기는 일까지가 내 몫이 되어 수업 시간 외에도 그녀를 돌봐 주어야 했다. 어제 저녁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고, 쇼핑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일주일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녀가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내가 그녀를 위해 학교의 임무까지 떠맡은 것에 대해서 크게 불평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오늘 오후면 떠나야 하는 그녀의 일정 덕에 채점까지도 고스란히 내 일로 돌아온 게 문제라면 문제다. 수십 명의 성적표에 일일이 적어야 하는 패션에 관한 코멘트 일까지 마치려면 아마도 오늘 밤은 꼬박 새워야 할 듯 싶다. 이런 경우에 처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젠장!' 이러며, 불분명한 대상이라도 향해 속으로 욕이라도 할까.

사실 상황들이 몰리고 뒤섞이며 새로이 전개되고 드러난 또 다른 하나의 상황일 뿐인 것이니 화를 낼 일은 아닌 모양이다, 화가 나지는 않는 걸 보니. 단지, 학교의 미숙한 체계에 대한 내 인내의 한계가 가까운 모퉁이를 돌면 기다리고 서있는 건 아닐까 싶어, 그것이 다소 염려스러울 뿐이다.


'Days in UA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도 일탈을 꿈꿨더냐  (0) 2018.11.21
그 분이 오셨다  (0) 2018.11.21
갈매기 한 마리  (0) 2018.11.21
Happy Holidays!  (0) 2018.11.21
근황  (0) 2018.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