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갈매기 한 마리

WallytheCat 2018. 11. 21. 17:16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3/04 02:50 WallytheCat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니 또 하나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짙은 안개다. 그 탓에 아직 어둠이 가시질 않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가까이 우뚝 선 나무 한 그루만이 도드라져 보일 뿐 그 외 풍경은 모두 사라졌다.

시간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다시 커튼을 닫아 버리고 계속 잠이라도 청해야 할 것 같은 어두움이다. 그 어두움에 묵직한 안개의 무게까지 더해져, '아침 잠, 결코 떨칠 수 없을 걸'이란 표지판이라도 읽는 듯 하다. '떨칠 수 없어도 떨쳐야 하느리라' 스스로를 타이르며 하루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는다.

두어 시간 후 집을 나서자, 축축하고 무겁게 지면을 향해 주저 앉아 영영 떠날 것 같지 않던 안개는, 새로 아침을 맞는 다른 나라를 향해 서둘러 떠나야 했던 모양이다. 마치 아지랭이처럼 안개의 끝, 안개의 긴 꼬리만 떠나기 싫은 그림자처럼 남겨두고 있다. 쫓겨난 안개의 뒤를 이어, 여전히 어제와 같이 눈부신 햇살, 제법 청량한 공기만 남아 또 다시 아침을 재촉한다.

캠퍼스에 도착하자 또 여전히 어제처럼 흰 갈매기 깃털들이 수도 없이 아스팔트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다. 사람들이 사라진 시간이면, 얼마나 많은 수의 갈매기들이 여기 모이는 것일까. 겨울이면 이곳에선 어김없이 이런 풍경이 벌어진다. 먹이도 없어 보이는 이곳에 모두 모여 그들은 대체 무얼하는 것일까. 그 깊은 갈매기의 꿈이며 뜻을 얕은 속 가진 내가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들도 어쩜, 그들 생존의 터전인 바다로부터 멀어져, 자의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먹이 사냥 짓을 이렇게라도 잠시 쉬고 싶었던 걸지 모르겠다.

어제 아침엔, 누군가 오리털 이불이라도 뜯어 헤쳐 놓은 듯 깃털의 잔해로 어지러운 아스팔트 주차장 한복판에, 마치 그 깃털이 갈매기의 것이란 걸 증거라도 하듯, 대책없이 불안한 눈동자를 한 갈매기 한 마리가 털썩 주저 앉아 있었다. 날개든, 다리든, 혹 마음이든 최소 어디 한 군데 이상쯤 고장나 보이는 갈매기였다.

그 시간 이후, 그 고장난 갈매기 한 마리는 어찌 되었을까. 죽었을까. 결국 죽고야 만 걸까. 그리고 그 죽은 새를 누군가 치워 없애 버린 걸까. 그도 아니면 기어이 부상을 딛고 일어나, 갈 곳을, 가야할 곳을 향해 훌쩍 날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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