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이웃집 여자 1

WallytheCat 2018. 11. 21. 17:30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3/22 05:20 WallytheCat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게까지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건만, 옆집 개들의 끝없는 삼중창에는 아무리 소리에 무딘 인간이라도 당할 재간이 없어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고 만다.

여자는 어째, 무슨 이유로 그 좁은 집에서 하마만한 개를 세 마리나 키우는 걸까. 여자가 지난 가을 학기부터 옆집으로 이사를 들자 처음 든 생각이 그거였다. 마주칠 때마다 자꾸 자기네 집에서 뭐라도 같이 마시자는데, 단 한 번도 그러마고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마시자는 게 술인지 청량 음료인지도 알 수 없거니와, 개 세 마리가 휘젓고 다닌 그 집안의 위생 상태를 점검한 후 뒷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6년 간 데리고 있으면서 '훈련 시킬 시간이 없어서 개들이 저렇다'는, 지나가는 개들도 대굴대굴 구르며 웃을, 변명도 받아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라면 이유였다. 또 게다가 정을 주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한 솥 밥, 한 병에 담긴 음료 조차도 같이 마시지 않는다는, 나 조선인 나름의 원칙을 어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자는 요리란 걸 자주 한다. 대개는 기름에 튀긴 것 아니면 뭔가 소금 간이 잔뜩 된 고기와 양파가 들어간 음식을 냄비에 조리다가는 불에 올려 놓은 걸 깜박 잊고 태워먹는지 영락없이 화재 경보가 울리곤 해서 그 비극적인 요리 소식을 짐작하게 되곤 하지만... 어쨌거나 나보다는 요리를 자주 시도한다는 사실은 높이 사주고 싶다, 결과보다야 시도가 갸륵한 거 아닌가 싶어서.

여자는 저녁이면 촛불을 켜고 개들과 함께 현관 앞에 내어놓은 의자에 앉아 있곤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엔 혼자 개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웃집 배려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은 것 같은 그 장면을, 되도록이면 무심한 척 슬쩍 피해가곤 하는데, 그 날 저녁엔 잠시 방심한 사이에 공습을 당했다. 아무 생각없이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나오는 나를 본 여자는 가시 달린 부겐빌리아 가지 사이로 위험하게 얼굴을 내밀며 과장된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거다. 아뿔싸, 걸렸다.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귀가하는 나를 불러세워 자신의 삶에 대해 두서없이 30여 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 말이 30여 분이지, 여자의 전 생애 중 절반의 줄거리는 들은 것 같다. 외로운 자신을 좀 챙겨달라는 결론으로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으며 여자는 너스레를 떨었다.

"난 혼자 개들을 벗삼아 산다우."
"혼자셨어요? 왜 저는 결혼한 커플이 산다고 생각했을까요? 오해해서 미안하군요."
"주위에 괜찮은 남자들은 모두 결혼한 것 같고... 좋은 남자 혼자 사는 사람 없나 좀 찾아 보시우, 하하."
"저희집 다른쪽 옆집 남자가 싱가폴서 온 총각인데... (20년 정도의 나이차가 극복된다면 시도해 보실래요?)"

여자는 말끝의 내 표정을 눈치채고 같이 낄낄거린다. 그 날의 대화 이후, 개 세 마리 사는 그 집안에 내가 들어가느니, 차라리 내 집에 여자를 하루 초대하는 게 낫겠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뭔 정리씩이나) 하고 있었다. 그 강요된 대화 이후, 아직 한 솥 밥 같은 건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정이 좀 든 게 틀림없다.

여자는 불어대는 봄바람 앞에서는 자식 같은 개들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못했는지, 그 며칠 후 덩치가 산 만한 개 세 마리를 남겨 두고 봄방학을 맞아 이집트로 떠나 버렸다. 어미 잃은 개들은 때로 짖다 짖다 외로움에 지쳐 가요디(Coyote)처럼 길게 목청을 뽑아 울부짖기까지 한다.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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