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이삿짐 떠나던 날

WallytheCat 2018. 11. 24. 23:11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12/07/20 05:49 WallytheCat

아침 열 시에 온다던 이삿짐 회사 직원들은 열한 시 반이 되어도 오질 않는다.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일쯤에야 워낙 익숙한 지라 흥분하지 않고 전화를 한다. 오던 중 도로에서 사고가 나 지연되고 있으나 금방 도착할 거란다. 금방이란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이란 것도 잘 안다. 결국 열두 시 반이나 되어 네 명의 직원들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시작하겠다며, 가져온 점심을 먹기 시작한다. 거기다 대고 점심을 먹지 말고 일 먼저 하라고 하겠나.

결국 오후 한 시나 되어 시작된 포장은 밤 열 시가 넘어 끝이 났다. 나중에 듣고 보니, 워낙에는 다른 팀이 오기로 했는데, 중간에 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가 나 자기네 팀으로 바꾸어 오게 된 거란다. 자기네는 새벽 여섯 시 반에 시작한 다른 집의 포장을 끝내고 퇴근을 하려다가 내 집에 오게 된 거라나. 이미 한바탕 힘든 일을 마친 이 사람들이 무슨 힘이 남아 돌아 두 번째 집 일을 신명나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그저 몹시 피곤한 상태였던 거다. 그리 피곤하니 얘기를 해도 귀담아 들을 수가 있겠나. 나중에 보니, 안 가져갈 것이라 일러 둔 것까지  죄다 싸 버렸다.



피곤한 몸으로 두 건을 뛰려니 힘도 든데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니 몹시 시장했던 모양이다. 뭘 좀 먹었으면 좋겠다며 가까운 마트에라도 다녀오겠단다. 집을 한 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가 없는 지라 내 집에 있는 음식을 있는대로 꺼내 주었더니,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다시 일을 한다.


매번 하는 얘기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루에 두 건을 뛰며 새벽 여섯 시 반부터 밤 열 시까지 거의 열여섯 시간 이삿짐 포장 작업을 해야하는 이들도 참으로 고달프겠다 싶다. 미리 상자를 달라고 해서 몇 주 전부터 책이며, 작업 공구 등은 스물한 개의 상자로, 옷은 모두 미리 적당한 크기의 플라스틱 봉지에 내가 미리 싸두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다음 날 하루 더 와서 일을 해야 할 뻔 했다. 그 날 전체 상황은 내가 그 회사에 화를 내야 할 일은 맞다. 그러나 화를 낸다고 달라질 일도, 개선될 상황도 아닌 걸 잘 아는지라 차라리 그저 눈앞의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는 게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생산적이겠다 싶었다.


이 나라에서 비교적 영어도 잘 하고, 친절하기도 한데다, 싹싹하게 일도 잘하는 필리핀 일꾼들이 다 사라지고 없으면 누가 궂은 일을 도맡아 하려나. 안 쓰는 물건들이며 옷들도 쓰라고 따로 챙겨 주고, 어디가서 넷이서 제대로 된 필리핀식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넉넉한 팁을 챙겨 보냈다. 그들을 다 보내고 나서 열 시 반에 라면을 끓여 겨우 요기를 했다. 힘들었던 하루였으나... 그래도 어쨌거나 내가 원하던 대로 이삿짐은 떠나야 할 길을 떠났다.


<Monday 7/16/2012, American Univerysity of Sharjah, 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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