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이집트 단상: 사람, 사람들

WallytheCat 2018. 11. 20. 21:27





이집트. 수천 년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오래 묵은 유적이 널리고 널린 땅. 오래 전 나 역시도 나일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았던 기억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더듬고 싶기까지 한, 사막 위에 풍요를 자랑하는 기적같은 강을 끼고 서 있는 나라.

그런 나라에 삼 년여 전 처음 갔었다. 그 여행을 마치고 나서 '내 이 생에 이집트에 다시 발을 들이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했었다. 좋은 기억은 더욱 미화되어 남기도 하고 나빴던 기억은 또 조금 희석되고 용서되어 괜찮았던 것으로 변화되는 내 편리한 기억 장치때문에, 아니 한국서 온 친구들이 이집트에 같이 가고 싶어했던 이유로, 그리움과 떨치고픈 기억이 마구 뒤섞여 엉킨 그 곳에 다시 가게 되었다. 지난 일월, 내 생애 두 번째로 이집트에 다녀왔을 때 이집트에 관한 기행문을 소상하게 쓰고 싶었다. 모든 움직임을 여행 가이드에 의해 통제받았던 첫 번째 여행과는 달리 두 번째에는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조금이나마 자유를 택했던 여행이었으므로. 

이집트 여행기 쓰는 일에 발목을 잡은 건, 손가락을 움직여 글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귀찮음도 조금 작용했지만 그보다는 거의 악몽과도 같이 여행객들을 따라 다니는 사람, 사람들에 대한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특정한 직업없이 길에서 관광객들을 따라 다니며 말을 걸어 대꾸를 하면 팁을 요구하는 사람들, 고대 신전 구석구석마다 불쑥불쑥 나타나 손을 벌리는 사원지기들, 화장실 앞마다 위생 상태가 상당히 의심스러워 보이는 손으로 두루말이 휴지를 30cm쯤 떼어 주며 돈을 내라는 화장실지기들, 지금 다시 기억을 해 보니 이들 대부분이 사지육신 멀쩡한 장정들이다.

팁이란 게 무엇인가. 어떤 서비스를 받았을 때 약간 쥐어주는 감사의 표시 아닌가 말이다.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커녕 그냥 손만 내미는 건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여행 기간 내내 하루 평균 수십 번씩 겪어야 한다면 이건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팁 뿐인가. 생수라도 한 병 살라치면 그 물값이 관광객이란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서 천정부지로 뛴다. 이집트 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도 정확한 생수 한 병의 가격은 결국 모르고 말았다. 1.5리터짜리 생수 한 병 값이 1.5 이집트 파운트에서 8 파운트까지 다양하니 말이다.

이집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그 찬란한 고대 문명을 지녔던 나라가  지금은 어찌 이렇게까지 되었단 말인가. 현대 이집트인들은 어쩌면 그 때 그 고대 이집트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종의 사람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찬란한 고대 문명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자손들에게 공허한 자부심은 남겨 줄지언정 자립심은 남겨주지 않는 경우도 있구나. 노력하지 않고 조상의 문명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여행한 지 한 달 하고도 반이 훌쩍 넘은 오늘 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집트를 생각한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와 놀라운 예술성에, 몇날 며칠을 보고 또 보아도 우, 아, 감탄의 소리를 자아내게 하는 고대 신전들과 조각상들. 문제는 괴로울 정도로 따라 다니며 정당한 이유없이, 시도때도 없이 손을 벌리는 수없이 많은 이집트인들에 대한 기억이 그 감탄을 형편없이 갉아 먹는다는 거다. 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에 대한 푸닥거리라도 하지 않고선 이집트에 대한 좋은 기억까지도 변질될 것 같은 노파심에, 이 밤에 나는 이집트에 대해 조금 투덜거려 보기로 한다. 


말끔하게 새로 지어 단장한 룩소 공항. 그 공항에 도착하면 이런 남자들이 줄지어 서 있다. 택시 손님을 낚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코 앞에 보이는 택시까지 가방을 들어다 주고 손을 벌리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선 1파운드 주었다가 가지 않고 서 있어 5파운드를 주어야 했다.


거리에 수없이 많은 마차꾼들. 룩소 강변을 5파운드 받으며 데려다 주는데, 걷지 말고 타고 가라며 끈질기게 따라 다니며 산책을 방해한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길에서 손을 벌리는 아이들. 한 아이에게 뭔가를 주었다가 수십 명이 한꺼번에 달려 들면 무서울 정도의 상황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구걸을 하라며 우리 일행 쪽으로 아이의 등을 떠미는 장면도 보았다. 



룩소 서안 선착장에 대기 중인 호객꾼들. 대개는 한나절 혹은 하루 걸리는 서안 여정 택시비를 흥정한다. 처음에는 한 사람 당 미화 50-60불을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몇 명이 되든 한 택시에 50-60 이집트 파운드(미화 10불)로까지 내려간다. 이런 흥정에는 약간의 배짱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집트 신전 곳곳에 배치된 신전 지킴이들. 이 사람들도 특별한 걸 보여주겠다며 으슥한 곳에 데려가서는 손을 벌린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따라갔다가 손을 벌리길래 악수를 하자는 줄 알고 손을 잡고 흔들어 주었다나 어쨌다나...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여간 이런 사람이 뭘 보여주겠다고 따라 오라면 절대 따라가지 말 것.





다양한 신전들 곳곳에 콕콕 숨어 지키는 지킴이들이다. 긴 옷을 입고 스윽 이쪽으로 걸어오면 좀 긴장이 된다. 



여자 화장실 앞에도 반드시 서서 돈을 요구하는 남자들이 있다. 해도해도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다.

새로 깨끗이 지은 룩소 공항 화장실 안 벽에 붙은 반갑다 못해 감동의 눈물이 나게 만든 간판이다. 오죽하면 '이 공항에서는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고 들어와 볼 일을 보도록 하시라'는 이런 간판을 공항측에서 붙였을까. '이 나라 여행하며 실컷 당했지? 이제 떠날 때가 되었으니 한 번은 봐 주마' 하는 것도 같다. 병 실컷 주고 떠나는 마당에 약 한 번 주는 위로의 처사란 말인가. 


이렇게 하면 조금 덜 시달리고 이집트 여행을 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몇 가지 적어 본다:

1. 가방을 절대 남에게 들리지(빼앗기지) 않게 하고 내가 든다.
2. 너무 요란한 복장은 하지 않는다. (자석처럼 따라 다닐 것이므로)
3. 불필요한 팁을 요구하면 싹 무시한다.
4.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열이면 열 따라오므로)
5. 길에서 말 붙이는 사람에게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6. 화장실 앞에서 주는 화장지를 받지 않으면 팁 주지 않아도 된다.
7. 웬만한 군것질 거리는 챙겨 간다. (외국인들에게 바가지가 심하므로)
8. 절대 돈을 보이지 않는다.
9. 여행 떠나기 전에 인터넷, 론니 플래닛 등의 가이드 북을 통해 적절한 물가, 요금을 알아 둔다.
10. 이집트에는 잔돈이 별로 없다. 가능하면 1파운드짜리 잔돈을 구해 꼭 줘야할 때 팁으로 준다.

이집트는 관광에 수입을 많이 의지하므로, 이런 귀찮은 일 외에는 치안이 나쁘지는 않다. 곳곳에 관광 경찰이 배치되어 있어 생각보다 안전하다. 우스운 건 가끔씩 경찰, 군인, 경비원이 팁이나 펜을 요구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