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 @the World

요르단 여행 2: 페트라 가는 길

WallytheCat 2018. 11. 20. 21:52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7/04/26 03:54 WallytheCat

 

새벽 2시 반, 암만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비자를 사고(돈 내면 여권에 도장 꽝 찍어줌), 여권 심사대를 거쳐 짐을 찾았다. 공항 안내대에는 컴퓨터 모니터 한 대만 비행기 출도착을 알리는 일정만 깜박거리고 있을 뿐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안내책자라도 있을까 싶어 근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소득은 없었다. 책자는 커녕 종이장 한 장이 없다.

조금 황당해 하며 곧장 페트라로 가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왔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 데다 날씨도 상당히 쌀쌀했다. 외국인이라곤 우리만 달랑 남았는데, 그곳에 대기 중인 택시 운전사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비싼 택시 외에는 다른 방법을 일러 주지 않았다. 공항에서 2시간 40여 분 소요되는 페트라까지의 택시비는, 정부 고시가가 64JD(택시 2대, 128JD)인데 단 한푼도 깎아줄 수 없다는 태도다.

아침까지 기다려도 암만 공항에서 페트라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단다. 한밤에 남의 나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정말 그런 버스가 없다면 이건 시정되어야 할 일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요르단에 오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페트라에 가기 위해서다. 공항에 이 나라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페트라행 대중 교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건, 너 좋아 왔으니 물가 비싼 이 나라에서 고생이나 실컷 하다 가라, 이거 아닌가. 아무래도 첫 단추가 잘 꿰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불길하게 든다.

일행 중 한 분이 저만치서 물밑 작업으로 알아낸 정보가 있었으니, 택시를 타고 암만 시내에 있는 알 와다(Al Wahda)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택시 2대, 31JD) 버스를 타고 페트라로 내려가면 된다는 거다. 사실 암만 공항은 암만 시내로부터 35km 남쪽에 위치하니, 택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건 거리상 거꾸로 가는 셈이 되는 거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니, 해야지 어쩌겠나.

택시로 20-30분 달려 그곳에 도착하고서야 그 거짓말의 실체를 눈치챘다. 그 버스정류장은 캄캄한데다 사람 하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버스는 그러니까 6시 반이나 7시가 되어야 운행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어찌나 덜덜 떨리게 추운지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택시 운전사는, 일말의 양심은 남았는지 그 버스정류장 어두운 구석에서 대기하며 손님을 받는 불법 밴에 다가가, 소통이 잘 안 되는 우리를 위해 흥정을 해 주었다. 40JD에 흥정이 된 밴에 짐을 싣고 올라탔다.

이미 시간은 새벽 4시를 넘기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는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짐작도 못하게 낡아 보였다. 그에 걸맞게, 짐작조차 못할 역한 냄새에 숨을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떠날 준비를 마친 낡아빠진 밴은 어둠을 헤치며 덜덜, 씽씽 달리기 시작한다. 황색선같은 건 무시하고 산지 오래라는 듯 심한 갈지자를 그리며 달린다. 뭔가에 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째 운전을 저렇게 밖에 못한담. 아슬아슬하게 그걸 보고 있느니 차라리 잠이나 자 두자 싶어 눈을 감았다.

세 시간이 넘게 달리는 동안 둘이 어찌나 담배를 피워대던지… 비몽사몽 잠이 든 내가 한두 번은 담뱃불을 꺼달라고 부탁했던 것도 같은데, 들은 척도 안 하고 아예 싹 무시한다. 처음엔 ‘손님에 대한 매너’ 운운하던 우리 일행은 시간이 갈수록 목소리를 죽인다. 이제 이 상황이 단순히 매너나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생명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위협적 상황일 수도 있다는 판단의 시작과 함께, 깨갱 하며 꼬리를 내릴 밖에 별다른 방법도 없어 보였다.  

두 남자가 끊임없이 피워대는 지독한 담배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아 내내 창문을 열어 놓고 덜덜 떨었다. 지나는 불빛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두 남자의 모습도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것이, 그냥 아무 말 않고 참고 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도 같았다.

사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 잠을 자느라 창 밖을 내다 본 기억도 별로 없다. 나중에 들은 즉슨, 두 가족의 안위를 책임져야했던 두 어른 남자들은 한 숨도 자지 않고, 불침번을 섰다는 것. 자동차는 내내 오른쪽 갓길 아니면, 중앙선을 넘어 왼쪽 갓길로 달려 왔던 거란다. 어둠이 사위어 가며 안개낀 아침이 어스름 밝아올 때 본 보조 남자의 얼굴 한복판에는 깊은 칼자국 흉터가 길게 선명했다나 어쨌다나. 자동차가 갈지자로 달리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보다는 혹여 그 험악해 보이는 두 남자가 강도로 돌변해, 자고 있는 우리 일행 모두를 어디론가 납치라도 해 일을 벌일까봐 그들로부터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팔자좋게, 숨쉬는 공기만 염려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내리 잠만 잔거네. 아무튼 잘 잠 다 자고 눈을 떠 보니 차가 무슨 산 위 언덕 한복판, 길도 아닌 곳에 서 있다. 차는 유턴을 해서 다시 길로 접어든다. 분명 ‘페트라’라고 영문과 아랍어로 쓰인 이정표가 보이는 데도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린다. 뭔가 이상하다 느낀 내가 그제서야 소리 한 번 질러 보았다. 이제 잠도 좀 잔 후라 정신도 나고, 날도 다 밝아지고, 주위에 행인들도 보이니 안심하고 말이다. “이 보쇼, 페트라는 이쪽이 아니잖수~?” 그 말을 소리로 만들어 밖으로 내고 나니, 그 소리의 여운이 마치 고우영이 그린 만화 삼국지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쫄자의 비겁한 대사 같다.

몇 번이나 이정표를 지나치며 그런 짓을 한다. 도무지 무슨 심산이란 말인가. 그 깊은 뜻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강도라면 강도라고 솔직하게 말이라도 하지 그러냐, 에고, 답답하다.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페트라에 진입한 듯도 싶다. 저만치 오른쪽에 파출소가 보인다. 거기서 멈춰서서 길을 물어보자고 권유도 해 보았다. 물론 못알아 들은 건지, 못들은 체 하는 건지, 싹 무시하고 그냥 지나친다.

아침 7시 반쯤 되어 어제 전화로 예약했던 ‘페트라 파노라마 호텔’에 도착했다. 말이 도착이지, 그것도 우리 일행 여섯이 모두 그 호텔 간판을 보고 멈추라고 소리를 쳐서야 겨우 멈춘 거다. 가방을 내리고, 흥정된 요금을 지불하면서 비로소 그들의 모습을 처음 제대로 보았다. 둘다 어찌 그리 험하게 살아온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도 대낮에 그들을 보았다면 절대 흥정이 아니라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을 거다.

나중에 호텔 로비에 일행이 모두 모여 그들의 정체에 관해 내린 잠정적 결론은 이렇다. 지금 전쟁 중인 이라크에서 몰래 국경을 넘어 이곳 요르단에 돈푼이라도 벌어볼까 하고 낡아빠진 밴을 몰고 온 사내들이다. 그들은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문맹이어서 이정표를 읽을 수 없었던 거다. 자꾸 길을 잘못 드는 이상한 행동들이 더해져 우리로부터 나쁜 마음을 품은 자로 더 오해를 받았다. 그 운전사가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들은 불법 체류자에, 무면허 운전자에, 글도 못 읽으면서, 페트라 가는 길은 더더욱 모르면서, 불법 영업 행위를 하고 있었던 거다. 한밤중에 그런 차를 얼떨결에 집어 탄 우리는 또 뭔가. 그런 사람들한테 길을 물어 보자며 파출소로 가자고 했으니... 너 같으면 가겠냐? 

그들이 나쁜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건 천만 다행이다. 57JD를 아끼기 위해 아낌없이 우리의 목숨을 걸었더란 말이지, 하는 회한이 든다. 납치, 강도가 아니더라도 마주오는 차와 부딪혀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도 출처: http://www.lib.utexas.edu/maps/middle_east_and_asia/jordan_pol_200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