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아침의 평화, 깨지다

WallytheCat 2018. 11. 21. 01:03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7/05/06 23:15 WallytheCat


버터를 살 때 끼워 받은 크림치즈가 생각보다 맛이 있어, 빵 한 쪽을 더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앉아 있던 평화로운 아침. 휴대전화가 울린다.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는다. 우르두(Urdu)어를 모국어로 쓰는 남자의 목소리가 저편에 있다. "앗살람 알라이쿰" 하며 아랍어로 짧게 인사까지 챙긴 남자는, 그 이후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빠르게 뱉아 낸다. 잘못 건 전화라고 하고 끊었다. 남자는 다시 전화를 해서 비슷한 말을 되풀이 한다. 두 번째 전화에서는 '100디렘' '우체국' 뭐 이런 몇 마디를 건졌지만 여전히 나랑은 상관없는 말을 하는 것 같아 끊었다.

드디어 세 번째 전화. 뭔가 다급한 것 같기도 해, 모르는 말은 되묻기도 하며 내용을 요약해 보니, 우체국에 가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100디렘을 충전했는데(여기선 대부분 전화카드를 사서 미리 충전시키는 방법을 쓴다), 하고 보니 자신의 전화가 아닌, 끝자리가 하나 다른 내 전화번호에 충전이 되었다며, 자기한테 100디렘을 당장 돌려 달라는 거다, 그것도 너무나 당당하게.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더니... 내가 세상물정을 잘 몰라, 아니 모르는 척 좀 어리버리하게 산다는 소문이 이 놈한테까지 들어갔나 보다. 전화국이 아닌 우체국에서 그런 서비스를 한다는 소리도 처음 듣거니와 우체국에서 잘못된 걸 왜 나한테 전화를 해서 돈을 달라는 건지 원. 더 이상 대꾸도 하기 싫어, 우체국에서 잘못한 거면 우체국에 가서 처리해 달라고 해라, 나는 당신과 얽힐 이유가 없으니 다시는 내게 전화하지 말라며 끊었다.

요즘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국제전화 사기(scam)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한 동안 내 전화에도 계속 이라크에서 전화가 걸려오곤 했었다. 보통은 신호가 한두 번 오다 받으려 하면 끊어진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되면 궁금해진 사람이 그쪽으로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상대가 전화를 받는 순간 엄청난 과금이 된다는 것.

아무튼 우체국에 전화를 해, 우체국에서도 전화요금 충전을 시켜주느냐고 물으니, 다는 아니고 몇몇 우체국에서 그런 서비스를 하긴 한다는 거다. 내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니, 그 사람 뭔가 이상하다며 대꾸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종류의, 아주 순진한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터넷 속임수 내지 사기는 나이제리아 사람들이 전문이라고 들었는데, 우르두어를 말하는 사람에게까지 그 노하우가 전수된 모양이다. 이 사건의 수법은 대충 이런 거 아닐까 싶다.

  1. 우체국 직원이 실수를 했다고 믿도록 한 자리 다른 전화번호에 100디렘 정도 충전이 되도록 한다. (실제로 내 전화에 충전이 되어 있었다.) 
  2. 충전된 전화 번호에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고, 현금을 자기한테 돌려 달라고 한다.
  3. 순진한 사람이 현금을 지불하고 난 후, 자기는 우체국에 가 원금까지 돌려 받는다. 일이 성사되면 200디렘의 공돈이 들어 오는 일이다.

남자는 그 뒤에도 대여섯 번 전화를 더 하더니 포기했는지 더 이상 전화가 없다. 내일도 전화하면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해 봐야겠다.

이미 식욕은 물건너 갔다. 내일도 아침은 밝아 올 것이니, 내일 다시 먹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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