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8/06/21 09:03 WallytheCat
휴가철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라는데, 날이 쌀쌀해진 가을은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의 발길이 뜸하고 조용해서 유유자적 걸어다니기에 아주 좋았다. 파도와 함께 잔뜩 밀려온 해초가 해변을 따라 줄을 이었다. 갈매기들이 해초 속에서 먹을 만한 걸 찾고 있는 모양이다. 저것들이 다 사람이 먹을 만한 미역이며 다시마는 아닐까 싶어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버쓸톤 부두(Busselton Jetty)의 모습이다. 나중에 돌아다니며 우연히 보니, 이 근처에서 파는 제법 아티스틱한 부두 풍경 사진 각도가 대충 이렇더라.
부두 초입(사진 오른쪽)에 건물이 하나 서 있고, 그 건물 앞에 부두에 관한 짧은 소개를 덧대어 놓은 출입문이 있다. 거기에 소개된 내용을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목재로 된 부두로는 남반구에서 가장 긴 1,841m인 버쓸톤 부두(Busselton Jetty)는 1865년 건축을 시작해서 1962년까지 보수 내지 증축 공사를 지속해 오다, 1972년 부두로서의 역할을 마감하게 되었다. 1978년 싸이클론 알비(Alby)에 의해 부두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 파손되었고, 그로 인해 해안에서부터 전망대 근처까지의 산책로 역시도 소실되었다. 모금, 기부, 정부 산하 보조, 소액의 입장료 등이 현 부두의 유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성탄절을 제외하고는 매일 부두 자료관, 열차, 해저 관측소를 포함하는 부두 체험이 가능하다.
현지 가이드가 입장권을 끊어 와서는 아무래도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부니, 멀리까지 가지는 말고 가장 가까운 전망대까지만 걸어갔다 오라며, 아주 조심하라며 당부 내지 경고의 말을 거듭 전한다. 나무 구조물인 부두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나는 몇 걸음을 아슬아슬하게 떼다 말고 어지럽고 무서워 바로 걷기를 포기하기로 한다. 때로 대범한 척 하기도 하지만, 정작 심각하게 공포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오니 곧바로 작은 목숨 사리는 모습이라니.
나는 그냥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이나 하며 일행을 기다리기로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부두 산책로 입장료와 함께 기념품 등도 판매하는 상점이 하나 있다. 인도양을 바라보며 창가에 무리지어 둘러 앉아서는, 가득 들어찬 가을 햇살로 일광욕을 즐기는 유리잔들이며 윈드 차임이 어찌나 영롱한지, 뭘 하나 사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 부두에 관한 역사 등을 소개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상점 안쪽 공간에 마련된 버쓸톤 부두 박물관이다.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 부두의 파손이 어린 아이의 불장난으로 시작된 화재가 번져 부두 거의 전체를 잃게 된 것이라 했다. 흠... 어떤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평생 그 사실을, 가슴에 아프게 묻고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에 보이는 나무 기둥이 바로, 처음 지어져 사용되던 부두의 일부라고 한다.
박물관 벽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겁 많은 나 같은 사람이 부두 사진을 실내에서 찍기엔 아주 적당하다. 사람들은 용감하기도 하다. 멀리는 아니지만 그 심한 바람, 한쪽으로만 세워진 난간을 의지해 부두를 걸어갈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거의 2km가 다 되는 이 목재 부두를 두고 아직도 심한 논란이 멈추고 있지 않는다 했다. 호주 정부에서는 심하게 몰아치는 바람, 파도가 거친 이곳의 안전성을 이유로 부두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한단다. 그러나 주(州) 혹은 자치 정부에서야 이 소도시의 역사적 상징물인 부두를 잃고 싶지 않은 심정이니, 현지 시민들과 함께 부두 유지를 위한 지지를 호소하고 유도하는 분위기인 거고.
안전성이냐, 아니면 관광객 유치 내지는 역사의 상징성이냐! 마치 떡 하나씩을 양 손에 쥐고 어느 떡을 지나가는 개한테 던져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습 같다. 나 같으면, '현존하는 부두는 풍경의 일부로서 그대로 남겨 두고, 부두에서의 산책은 허용하지 않는다'가 양측을 만족시키는 최선의 방법 아닐까 싶다만은.
이곳 역시 수백 년은 살았을 법한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듬직하게 버티고 앉아 지나는 사람들의 포근한 쉼터가 되고 있다. 두 나무는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위안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던 걸까. 바닷바람 맞으며 거칠 것 없이 한껏 팔을 뻗고 자란 두 그루 나무가 당당해서 아름답다.
<5/23/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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