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밥 한 끼

WallytheCat 2018. 11. 22. 00:24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11/03/03 03:37 WallytheCat



오랜 세월 조선 땅 아닌 밖에서 살았어도, 어쩔 수 없이 나는 분명 조선인임을 스스로 드러내고야 마는 때가 있다. 끼니 때가 되어 사람을 만나면 "너, 밥 먹었냐?"며 그 사람의 끼니를 걱정하는 일, 또 가끔씩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불러다 밥을 해 먹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드는 때가 그런 때이다. 세상, 세상사와 부대끼며 살다보면 좋은 사람들과 밥 한 끼 먹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 단지 조선인이라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라서가 그 이유 아닐까.  

고물고물 작은 토끼 같은 새끼들과 여우 같은 마누라를 고국에 두고 기러기 아빠로 혼자 이곳에 살며 일하는 동료도 마음에 걸리니 불러 밥 한 끼 먹여야겠다 싶고, 그 간 논문을 쓰며 받는 온갖 불안과 초조를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시켜 불안증을 같이 겪게 하던 동료가 칠팔 년만에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아 돌아왔으니 그도 불러다 축하한다며 밥 한 끼 먹여야 할 것 같고, 리틀 무바라크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의 상사를 두고 아부다비에서 핍박을 있는대로 받으며 일하는 한 동료의 남편도 오라해서 밥 한 끼 같이 해야 할 것 같고, 그런 주위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나도 불 쏘인 음식을 나누면 훨씬 위로가 될 것도 같았다.

그런 저런, 우리 모두 살아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생생한 사건들을 이유로 여럿이 모여 뒷마당에서 밥 한 끼를 함께 했다. 밥 한 끼에 몹시 비장한 의미를 부여하며 생색깨나 내는 것 같긴 하지만, 요즘 내 작은 울타리 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각하여 걱정이 되니 좀 비장할 만도 하다.  

새우며 스테이크며 바닷가재를 다 구워낸 바베큐 그릴에 종국에는 마당에 까는 나무로 된 깔개를 잘라다 좀 태웠다. 그러니까 주위를 둘러보다 만만한 가구가 눈에 뜨여 불 때는 재미를 본 것이다. 베트남에서 온 가구는 소나무쯤 되는지 타닥타닥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잘도 타들어 갔다.


<Thursday 2/17/2011>

'Days in UA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장된 트럭  (0) 2018.11.24
십 년만의 인연, 커피 가게  (0) 2018.11.22
리틀 무바라크  (0) 2018.11.22
Hatta Mountains  (0) 2018.11.22
주방 혁명  (0) 2018.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