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in Ohio 2017/04/02 07:23 WallytheCat
잔뜩 흐린 토요일 오후, 식탁에 앉아 뭔가에 열중해 한참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내 오른쪽 시야의 끝 즈음에 육중하고 시커먼 뭔가가 다가오는 듯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내가 앉은 곳 창문을 향해 큰 것이 다가온다. 일이 초간, 나는 본능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며 다가오는 커다란 물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무진 애를 썼다.
처음 언뜻 느끼기에 곰인 것 같았다. 그것이 점점 다가오자 곰은 아닌 것 같았고, 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 것 같았다. 사슴인가 생각하는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얼굴을 창문에 밀착시키며 머리를 상하로 두어 번 움직이는 동작을 취하며 귀부터 코끝까지, 정말이지 무척이나 기다란 머리 전체를 내게 훑듯이 보이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생각을 바꿔, 아, 이건 사슴이 아니라 당나귀로구나, 했다.
그와 나의 실제 거리는 삼 미터 남짓, 그와 나를 가르는 경계는 중간에 놓인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창문에 드리운 반투명 커튼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거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을 갔을 거였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식탁에 놓인 손전화를 집어 들어, 자세를 낮춰 창가로 다가가 사진을 몇 찍었다. 그는 나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였다.
잠시 유리창에 반사된 풍경과 자신의 모습을 살피던 그는 뒤돌아서서 나무의 냄새를 맡더니, 뒷목이 가려운 듯 뒷발로 뒷목을 유연하면서도 방정맞게 두어 번 탈탈 털더니, 유유히 사라진다.
<Saturday 4/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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