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알코올 구입기

WallytheCat 2020. 3. 9. 06:20

2020년 2월 29일 토요일, 늦은 오후, 장이나 볼까 하고 늘 가는 대형 마트 C로 향했다. 주차장부터 북적이더니,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로 꽉 찬 게 보인다. 토요일이라도 이 정도로 북적이는 건 처음이라, 잠시 내가 모르는 명절이 오나 보다 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아,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걱정에 비상용품을 사 두려는 거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일터에서 쓰는 두 종류의 알코올이 필요한데 좀 사둬야겠다 하는 생각을 그제서야 한 건 정말로 현실에서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나 하는 생각이란 두 번째 깨달음을 얻는 건, 그로부터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트에는 이미 마스크는커녕, 손 세정제며 소독에 쓰이는 알코올이 포함된 제품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 날 이후 며칠 간 세 군데쯤 이 곳 저 곳을 들렀지만 알코올이나 손 세정제 따위가 놓였던 선반들은 하나같이 텅 비어 있었다. 


하루 저녁, 마음 먹고 아마존을 뒤졌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알코올을 판다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세상에 가격이... 금값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3월 7일 오전, 32온스 2개들이 알코올을 37불에 결재했다. 게다가 물건 배달 예정일은 3월말이나 4월초란다. 그 날 저녁, 다시 퇴근 후 집에 앉아 아마존을 뒤지기 시작하자, 난데없이 소독용 알코올이 식료품 배달 서비스 아이템에 뜨는 거다. 한 번도 1-2시간 내 배달하는 서비스를 써본 적이 없지만, 물건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주문 가능한 최대치(70% 32온스 7병, 99.9% 16온스 7병)를 바구니에 담아 결재했다. 배달 시간은 다음 날 아침 7-9시로 정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에 알코올이 기적처럼, 두 개의 갈색 봉투에 담겨, 집앞 문앞에 배달 되어 있었다. 알콜 몇 병이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구나, 싶었다. 이 정도면 당분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두 병에 37불짜리 알콜 주문은 물론 취소했다. 


오하이오에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의 뉴스를 시시각각 접하는 사람들의 불안 심리는 여느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 힘들고 우울하다 했더니, 경험자로서 얘기하건데, 처음엔 힘들지만 한 달쯤 겪으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고 했다.    

'Days in Oh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칩거 40일째-20200425  (0) 2020.04.27
칩거 보름째   (0) 2020.04.01
애기를 애기라 부를 수 없어   (0) 2019.10.08
머리 하는 날   (0) 2019.10.06
산이   (0) 2019.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