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칩거 보름째

WallytheCat 2020. 4. 1. 14:29

지난 3월 17일 화요일부터,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칩거에 들기로 했다. 일단은 자발적으로 보름쯤 클리닉 문을 닫기로 한 거다. 예약을 취소하자 대부분은 이해를 해주었으나, 서넛은 전화 혹은 이메일로 장황하게 불평을 했다. 나는 그에 대해 나의 의견을 보태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는 곧 보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인사말로 대신했다. 3월 22일이 되니 주지사의 칩거 행정 명령이 떨어져, 일단 4월 3일까지, 대부분의 비지니스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아직 오하이오 주는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주지사는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 보다는 조금 더 지혜로운 듯했다. 


제대로 된 휴가란 걸 가져본 지가 하도 오래 되기도 해, 늘 한 보름만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푹 썩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 놓여 강제로 휴가를 얻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누가 이런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나. 나 뿐만 아니라, 지구 위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콕 박혀 지내야 하는 이 상황이 참으로 기이하다 싶다. 언니는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거라는 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오늘이 2020년 3월 31일 화요일이니, 칩거한지 꼭 보름째 되는 날이다. 보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 며칠은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걱정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되든 집안에 있는 동안은 느긋하게 지내리라 마음을 고쳐 먹었다. 집안을 둘러 보니, 그 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도 많았다. 거실 커튼도 떼어 내 다른 것으로 바꾸어 걸고, 냉장고 정리도 했다. 냉장고와 냉동고에 있는 음식 만으로도 한두 달쯤은 거뜬히 살아 내지 않을까 싶다. 16부짜리 한국 드라마 보기도 하나 끝냈다. 밀린 숙제와 공부도 좀 했다. 늘 시험을 대비해 급하게 했던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보니, 여유도 있고 재미도 있다. 


칩거 처음 며칠은, 혹여나 4월에 클리닉을 다시 열면 써야 할지도 모르니, 필터 교체용 면 마스크를 만들어 놓자 싶어, 다소 의욕적으로 마스크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일단 집안 이곳 저곳을 뒤져 면으로 된 천을 찾아 냈다. 손수건, 면 바지, 침대 시트 따위가 나왔다.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 비디오 몇 개를 보며 공부를 했다. 가위로 슥슥 잘라 재봉틀로 바느질 해 만들어 보니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허나, 며칠이 지나자 처음과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곳에서는 도무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쓸 생각조차 안 하는데, 혼자 쓰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부정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비로소 오늘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미국 정부가, N95 등의 의료용은 아직도 부족하니, 일반인들은 스카프 같은 것으로라도 입과 코를 막아도 좋단다. 이미 깊숙이 전염될 대로 되어 확진자 188,578명, 사망자 3,890명이 된 이제서야 그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무지하고 몽매하고 무책임하도다. 


2020년 3월 31일 화요일 오후, 넷째 시누이가 안부 전화를 했다. 시누이는 아직도 여전히 매일 병원 사무실에 나가 근무를 한단다. 사람과 많이 접촉은 없는 데다, 마스크는 의료진들도 모자라니, 마스크를 쓸 생각은 아예 안 한단다. 착하기도 하시지. 주문한 필터는 아직 도착을 안 했지만, 내가 만든 마스크를 좀 갖다 줄테니, 하루에 몇 개씩 갈아 쓰고 빨아서 재사용하라고 알려 주었다. 시누이에게 나눠 줄 마스크를 챙기고 나니, 혹여 주위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에게도 내가 만든 마스크가 유용하게 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온라인으로 천을 주문했다. 주문한 천은 4월 중순에나 도착한단다.  


오하이오 주의 모든 학교가 5월 1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행정 명령이 다시 떨어졌으니, 나 역시 4월 한달도 아마 집안에서 지낼 듯 싶다.

'Days in Oh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면 마스크 제작 변천사  (0) 2020.04.27
칩거 40일째-20200425  (0) 2020.04.27
알코올 구입기  (0) 2020.03.09
애기를 애기라 부를 수 없어   (0) 2019.10.08
머리 하는 날   (0) 201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