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칩거 40일째-20200425

WallytheCat 2020. 4. 27. 02:56

오하이오의 봄은 잦은 비로 시작한다. 혹여 지붕이라도 날아가면 어쩌나 싶을 정도의 심한 바람이 부는 날도 잦다. 바람 없이 잔잔한 날 추적추적, 투덕투덕 내리는 빗소리를 집안에서 듣는 날이면 칩거 중이라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어 편안하다. 


지난 사십여 일, 자동차를 타고 외출을 했던 게 두어 번 되나 보다. 어느 일요일 저녁, 집을 나가 딱 세 군데 들렀다 귀가했다. 먼저, 오랫동안 비워 둔 클리닉이 멀쩡한지 돌아보고, 우체국에 가 내가 만든 마스크를 다섯 곳에 부친 후, 마트에 들러 연어 회를 좀 사 왔던 게 그 첫 번째 외출이었다. 클리닉은 마치 바로 전날 일했던 것 같은, 바로 다음 날 다시 일을 하러 갈 것 같은 너무도 익숙한 모습인 게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져 다른 차원의 공간인 것만 같았다. 주어진 이 상황과 느낌이 참으로 이상해서 눈물이 날 것도 같은데, 또 오히려 담담했다. 오랫동안 쓰이지 않을 플러그 몇 개를 뽑은 것 외에 특별히 손 볼 것은 없었다. 집에서 쓸 요량으로 손 세정제 한 병을 챙겨 나왔을 뿐이다. 언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일상을 반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클리닉 문 단속을 하고 나와, 우체국에서의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미리 준비한 봉투를 우체국 우체통에 떨어뜨렸다.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두 가지 일을 마친 후, 한 아시안 마트에 들르니 무엇보다 그곳 직원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안심이 된다. 왜 아직도 다른 많은 곳들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한 건지 도대체 답답하다.   


면 마스크를 더 만들어, 우체국에 가지 않고 집에서 우표를 붙여 보냈던 봉투 여섯 개가 모두 닷새 만에 되돌아왔다. 무게가 13g 이상인 우편물은 우체국으로 가 직접 부쳐야 한다는 딱지를 붙인 채다. 결국 같은 시에 있는 주소지 세 곳에 운전해 배달을 하느라 불필요한 외출을 한 셈이다. 나머지 세 곳은 다른 주의 먼 곳들이라 아직 부치지 못하고 있다. 다들 어련히 알아서 마스크 구해서 잘살고 있으련만, 나의 오지랖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식구 수대로 마스크를 챙겨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언제 날 잡아 우체국에 나가 부쳐야 할 것 같다. 


올 사월은 비교적 쌀쌀한 날들이 많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봄은 왔다. 집 주위에는 스스로 시절을 알아채고 핀 연보라색, 진보라색, 노란색 꽃들로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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