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열일곱 살 우정에 내기를 걸다

WallytheCat 2018. 11. 21. 17:58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5/09 20:35 WallytheCat


오마르와 무아드란 두 남학생이 있다. 둘은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닌다. 오마르는 이제 만 열일곱 살,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고, 무아드는 오마르보다 한두 살이 위다. 오마르는 무아드의 뒤를 졸졸 따르며 형으로 모시며 그의 모든 걸 닮아보려 애쓰는 중으로 보인다.

노상 붙어 다니며 공부도 같이 하고, 함께 과제도 코피 나게 열심히 한다면야 내가 구박하고 눈치 줄 이유야 없다. 문제는 허구헌 날 둘이 같이 결석을 하고, 학교에 오는 날조차도 둘이 같이 땡땡이 치고 노느라 공부를 하는 꼴도 과제를 제 때에 다 마쳐 제출하는 꼴도 별로 못 봤다는 거다. 둘다 미적 감각 내지 끼가 있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지 타고난 감각과 사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그들 학교 생활의 비애가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무아드는 이번 학기말 과제는 정말 열심히 해보려고 마음 먹은 듯이 어느 날부터 태도를 일변해 결석도 제법 줄이고, 과제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월요일 오후, 그런 무아드가 날 찾아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다름이 아니고 자기 친구 오마르가 결석도 많은데다 지난번 포트폴리오 과제를 제출하지 않아 학기말 점수가 형편 없이 나올 것 같아 염려가 되어 왔단다.

"너는 아주 나아져서 이제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치만 오마르한테는 이제 나도 좀 지쳐가는 중이긴 하다."

"제가 어떻게 해서라도 오마르가 수요일 아침까지 포트폴리오 과제를 제출하게 할테니, 가져 오면 점수를 주셔서 빵꾸는 안 나게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친구 걱정을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남의 걱정 마시고, 너나 잘 하시라" 하고 말지만, 게으름으로 성적이 바닥을 기는 두 소년의 우정이라 불리우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내기를 한 번 걸어보기로 한다.



"너, 각서라는 말 들어봤니. 각서란 말이 살벌하면, 계약서라 해도 좋고. 이 종이에 네 손으로 직접 '오마르가 수요일 아침까지 포트폴리오 과제를 제출하게 하겠다'고 적자. 만일 오마르가 수요일에도 과제를 안 가져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글쎄요..."

"이런 계약서에는 쌍방의 요구를 충족하는 조건이 필요한 거 아니겠니. 만일 오마르가 과제를 안 가져오면, 네 성적까지도 없는 걸로 하자. 그러면 너와 나, 서로에 공평한 조건 같지 않니?"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사실 난 오마르가 과제를 제출할 거란 데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곤 슬쩍 없던 일로 하려는 심산으로 잠시 잊어버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 둘이 약속한 과제를 들고 내게 다시 나타났다. 물론 약속대로 수요일 아침 아홉 시 정각은 아니고 오후이긴 했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사실 조금 놀랐다. 들여다 보니, 무아드의 포트폴리오와 거의 닮은 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무아드가 도와준 흔적이 역력했지만, 난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한다. 그리고는 가져왔다는 사실에 모든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와, 거의 기적 같다, 그치? 오마르 네가 친구 무아드한테 큰 빚 하나 졌네. 무아드는 이제 철이 나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작정한 것 같으니, 오마르 너도 형 같고 아버지 같은 무아드를 따라 다니며 열심히 하도록 해라."

두 아이들은 늦게 낸 과제를 받아 주어서 고맙다며, 환하게 웃으며 방을 나간다. 열일곱이라... 잠시 내 열일곱 시절을 뒤돌아 본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거기 내 앞에 변치 않고 서 있는, 얼굴 하얀 친구 하나 보인다.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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