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오늘의 운세, 길을 심하게 잃을 것이여

WallytheCat 2018. 11. 21. 17:52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4/21 04:06 WallytheCat


두바이에 있는 '타스킬(Taskeel)'이란 미술관에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그곳에서 하는 전시회가 며칠 후면 마감이 된다기에 나선 길이었다. 초대장에는 뜻밖에도 초대장과 같은 크기의 지도까지 따로 한 장 들어있었다. 친절하기도 하다. 지도를 보니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찾기에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이 나라에는 정확하고 상세한 지도가 참으로 귀하다. 물론 촌각을 다투며 새 건물이 올라가고, 어제 없던 길이 오늘 새로 생기는 일이 비일비재한지라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나라 전체를 한 장의 종이에 인쇄해 지명이며 도로를 제대로 표시해 놓은, '지도'라 불리우는 물건을 구경해 본 적이 여태 한번도 없다. 새로 나온 머세디스 벤츠 차 안에 붙박이로 달려 나오는 네비게이터 역시도 길 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그 하이테크놀로지조차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  

미술관에서 보내 준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근방을 헤맨지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네모 반듯한 선으로 깔끔하고 예쁘게 그려진 그 지도가 실은 아주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길이란 걸, 그걸 그린 그래픽 디자이너 개인의 시각적 미감 만을 충족시켰을 뿐인 순전히 엉터리 지도란 걸 깨달으며, 또 한번 속았구나 싶었다.

깨달음과 동시에 난데없이 꿈속 같이 아름다운, 환영이다 싶은 숲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오아시스가 아닌 다음에야 사막 한가운데 이런 숲길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모래 위에 이런 숲길을 조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비용, 시간, 노력이 소모되는 일이란 걸 뉜들 모르겠는가.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예사로운 곳은 아니란 짐작이 바로 든다



<두바이 통치자 궁전으로 드는 숲길>


찾아 헤매던 미술관이, 처음에는 두바이 로열 패밀리 여성들을 위해 세워진 미술대학이었다고 들었다. 가족 중 필요한 열몇 명 모두가 그 사년제 대학을 졸업하자, 제 임무를 마친 대학 건물과 내부 시설은 미술관 내지 회원제 미술 작업실로 그 용도를 변경하게 된 거라고도 들었다. 세상에, 로열 패밀리가 되면 얼마나 편리한가! 가고자 하는 학교가 없으면, 그 자리에 뚝딱 지으면 되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환상적인 숲길이 등장하자 당연히 그 학교, 아니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라 믿고 자동차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수 킬로미터쯤 되었던 것 같다. 숲길이 끝나고 문이 하나 나타났다. 군인으로 보이는 두 청년이 문앞을 지키고 서 있다. 차가 접근하는 것을 보더니, 느슨하게 어깨에 맨 총을 반듯하게 고쳐 잡으며 시선을 이쪽으로 향한다. 약간의 긴장이 느껴지는 게, 분위기가 삼엄하다.

차창을 열고 목을 삐죽 내민 내가, "이곳이 타스킬이요?"라고 큰소리로 묻자 군인 하나가 다가온다. 아니라고 했다. 난데없이 쏘는 총에라도 맞으면 황당한 일 아닐까 싶어서, 되도록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다시 묻는다. "지도 상으로 보면 분명 이곳인 것 같은데, 그럼 여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요?" "두바이 통치자이신 막툼의 궁전이요." 그 사람의 대답이다. 제대로 된 이정표가 없어 모르고 들어왔으니 이해하라며, 미술관 가는 길을 다시 물어 되돌아 나왔다. 



"근데 저 인간, 창문 열고 길을 물은 건 난데, 매번 남자인 당신만 보며 대답을 하네. 묻는 여자 입장에서 기분 나쁘다." 총 쥔 사내가 저만치 뒤로 사라지자, 애꿎은 남편한테 투덜거린다. 사실 이곳에 살다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남자가 여자 옆에 있으면 굳이 여자에게 말을 걸거나 답하지 않는다. 결국은, 남녀가 유별하다는 입장 내지는 차별인 거다. 알면서도 겪을 때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요즈음 들어 샤자 통치자를 멀리서 보기도 하고, 바로 옆에 앉아 미팅도 하는 등 팔자에 없는 왕족과의 만남을 몇 번 겪더니만, 아직도 그 왕족 파장이 내 주위에 남아 있었던지, 두바이에 나가 길을 헤매도 두바이 통치자 집을 찾아가게 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군인이 길 안내를 해 주었어도, 그 미술관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갸도 잘 모른 게지. 그 근방 또 다른 궁전 한군데를 더 들러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문지기 아저씨와 잠시 담소를 나눈 뒤, 조금 더 찾아 헤맨 후에나 찾을 수 있었다. 찾고 나서는 어찌나 허무하던지, 잠깐 둘러보고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서둘러 나왔다.

내게 이 나라의 볼만한 지도 하나만 다고, 제발! 


<또 다른 궁전. 문지기 양반께서 궁전의 쥔장 이름을 일러 줬건만 잊어버렸다> 



<4/8/2008, Dubai, 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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