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4/19 22:55 WallytheCat
<4/11/2008>
여유롭게 장을 본 후 애용하는, 집으로 돌아오는 뒷길이 있다. 가까운 길 놔두고 한참이나 돌아가는 이 길로 다니는 이유는 역시나 한적함에 있기도 하지만, 길가에 줄지어 있는 낙타 농장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천천히 움직이는 낙타 무리를 보게 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길 위에서는 길을 잃어 헤매는 낙타 몇 마리 만나는 일쯤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어느 날, 그 언저리에서 낙타가 아닌 염소 한 무리를 만났다. 한 스무 마리쯤 될까. 알록달록 갖가지 다른 색 옷을 입은, 크기도 아주 작은 염소 스무 마리쯤이다. 염소를 모는 목동은 물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목동도 없이 스무 마리쯤의 염소들은 어디론가 외출을 했다가 길을 잃지도 않고, 자동차들이 달리는 사차선 도로까지 유유히 건너서는 집으로 들어간다. 자동차들이 서 있어도 겁을 내거나 서둘러 뛰지 않는다. 누구 하나 두 줄로 걷기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선두가 몇 발짝 앞서 길을 안내하고, 나머지 무리들이 한 줄을 지어 그 뒤를 따르고, 맨 마지막 염소 역시 무리보다 몇 발짝 떨어져 걸으며 무리를 챙기는 눈치다.
이 나라 어느 공공 장소에서도 볼 수 없는, 적어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완벽한 질서다. 그걸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염소 무리에게서 보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사람에게서는 보기 드문 이런 질서가 아랍 염소 무리의 유전인자에는 도장 찍혀 있더란 말인가.
염소들은, 주인이며 목동들이 모스크에 가 신을 경배하는 금요일 아침이 외출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인 것까지 알고 있던 모양이다. 염소들의 자유 외출 시간? 그 자유는, 단 하나의 낙오자도, 사고자도 없이 돌아왔을 때에만 그 다음 주 외출을 통해 허락된다? 이건 뭐 순전히 내 식의 엉터리 상상일 뿐이다. 흑염소 외에는, 사람에 의해 사육되어지는 염소의 용도를 잘 알지 못하는 무지한 나로서는 이 아랍의 염소 목장의 위계나 질서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미스테리다.
어쨌거나 염소 무리의 선두는 대단한 리더십을 가진 염소임에 틀림없다. 다가가 칭찬이라도 한 마디 할라치면 아마도 그는,"뭐 이 정도 가지고..." 하며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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