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in Ohio 2009/07/14 12:36 WallytheCat
예년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불이라 안심이 된다. 불을 무척이나 크게 피웠던 어느 해인가는 저 아래 길을 지나던 운전자가 산불이 난 줄 알고 올라와서는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저 모아둔 잡목 태우는 일이니 걱정마시고 갈 길 가시라"고 해서 보냈었다.
구경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어디 불구경만한 것이 있겠는가. 늦은 점심을 길게 늘려 들다 보니 점심겸 저녁 식사가 된 셈이라, 잠시 쉬다가 소화도 시킬 겸 불구경을 하러 어스름한 해를 마주보며 언덕을 내려간다. 철 모르고 겁도 없는 개들이 주인의 손에 이끌려 불구경을 하러 좋아라 꼬리를 흔들며 내려가는 걸 보며, 누군가 개들에게 그런다. "니들 잘못하면 오늘 핫도그가 되는 운명에 처할지도 모르니 조심혀라 잉."
달이 밝게 뜬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지도 않고, 바람도 없는 데다, 전 날 내린 비 덕에 장작 태우기에 딱 좋은 촉촉한 여름 밤이다. 불은 밤새 잘 탔다.
자정이 넘어 불꽃놀이가 막을 내리자, 사람들은 이제 불구경을 하러 언덕을 내려 간다. 뒤에서 보자니 천천히 불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좀비들의 행렬 같다.
불 앞에 좀 더 앉아 있다 나는 춥고 졸려 새벽 한 시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듣자하니 아이들과 나만 빼고는 대부분 밖에서 꼬박 밤을 새워 이야기하며 놀다 아침 일곱 시쯤부터 자기 시작했단다. 체력이 받쳐 주어야 노는 일도 잘 하는 거인디. 이제는 밤 새우는 일 같은 건 잘 안 한다.
내가 밤에 긴 시간 푹 잤던 이유를 변명처럼 댄다면, 다음 날 아침 해야 할 중차대한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임무 수행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 불 피웠던 곳에 내려가 보니, 아직 불꽃을 내며 타는 곳도 군데군데 있지만, 큰 불은 잦아들은지라, 기대했던 대로 뜨거운 재가 넉넉하게 쌓여 있었다.
재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남편과 시내 마켓에 나가 생닭 네 마리와 감자 열두 개, 고구마 열두 개를 사 가지고 왔다. 시누이 집에 있는 칠면조 한 마리와 닭 네 마리의 뱃속에는 양파와 마늘을 채워 넣어 한 마리씩, 감자와 고구마도 두 개씩 짝을 지어 알루미늄 호일에 여러 겹 쌌다.
이 대목에서 내 요리법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양철통으로 된 쓰레기통에 음식 재료를 넣어 재에 묻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으나, 내가 계획한 일이니 내 식대로 해봐서 성공하지 않으면, 모두 식당에 나가서 식사를 하는 걸로 하자며 내 방식을 밀어 부쳤다. 물론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쓰레기통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신성한 단체 급식에 쓰레기통이라니 이 뭔 비위생적고 독소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나는 자루가 긴 삽을 든 쥔장을 앞세워 언덕을 내려 간다. 무척이나 뜨거운 재를 헤치고 조심스럽게 칠면조를 먼저 묻어 달라고 부탁한다. 한 쪽 발이 재에 닿았는지, 공기 중에 쥔장의 신발 타는 냄새가 훅 끼친다. 삼십 분 후에 다시 내려가 그 옆에 닭 네 마리를 묻는다. 다시 삼십 분 후에는 그 옆에 감자와 고구마를 묻는다. 그러면 두 시간 후에는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익어 나온다.
삽으로 재를 살살 털어내 익은 음식을 꺼내어서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아침겸 점심식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결과는 물론 아주 흡족했다. 아무도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야하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음 날 점심까지 잘 먹은 사람들은 마당에 널린 폭죽 탄피들을 말끔히 거두고, 쓰레기 청소를 함께 하고, 텐트를 거둔 후 긴 작별 인사(이 가족은 작별 인사도 반 시간 내지 한 시간이 걸린다)를 마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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