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나도 가봤다, 켄터키 주 코리아 마을에

WallytheCat 2018. 11. 22. 00:14

Peeping@theWorld/Days Traveling 2009/08/25 02:05 WallytheCat

 

이 짧은 여행을 시작하기 몇주 전, 어느 한글 싸이트에 '미국 켄터키 주에 코리아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는 사진 한두 장을 곁들인 짧은 뉴스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켄터키 주 지도를 들여다 보니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하거니와 애초 여행을 하기로 한 스모키 산 가는 길에서 많이 벗어나지도 않아 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물론 그 기사에, 그 마을이 코리아란 지명을 갖게 된 것에 대해, 한국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후일 정착해서일지 모른다는 추측이 적혀있던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마을을 뒤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캐물어 그 유래를 더 정확히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귀찮게 하면서까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잊지 않고 있다보면 후일 우연히 알게되는 날 오지 않을까 싶다.

켄터키 주 전체 지도를 놓고 보자면 대략 중앙 지점 즈음에 이 마을이 있던 걸로 기억된다. 이 마을은 전형적인 켄터키 주 시골 풍경을 담고 있다. 미국 광할한 땅 복판, 중서부라 불리는 지역의 대부분이 평지인데 반해 이곳은 한국 산골을 연상하게 하는 언덕과 골짜기들이 이어지는 게 정겹다.




말을 키우는 농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곳곳에 담배 밭이 많은 것도 켄터키 주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마 이곳 기후가 담배 재배에 적합한 모양이다. 어디든 금연하는 게 당연히 여겨지는 이 시대에, 켄터키 주 시골 마을 식당에 가니 대부분의 식당 공간이 흡연석이고, 금연석은 식당 구석 작은 공간에 마지 못해 마련해 놓은 듯 보였다. 담배 농사를 이렇게 많이 지으면서 흡연자를 박대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였다.

코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마을에도 작은 규모의 담배 밭이 여러 군데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담배 밭이다. 어릴 적 외가 근처에 여름날이면 넓고 큰 잎을 서로 경쟁하듯 날로날로 쑥쑥 키워 내던, 이런 담배 밭들이 있었다. 담배 밭을 보노라니, 담배를 엮어 거꾸로 매달아 건조시키는 창고에서 그 잎들을 헤치며 놀곤 하던 묵은 기억이 난데없이 기억의 숲을 헤치며 표면에 드러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뛰어 놀며 얼마나 많은 담배 잎들을 망쳐놓았을까 싶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기억이다.


마을 초입에 드니, 당연하다는 듯 마을을 대표하듯 교회가 하나 서 있다. 작은 마을이라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씩 세워져 있는 미국의 교회에 관해서는 떠오르는 단상이 여럿 있지만, 이야기로 푸는 건 자제하기로 한다.




이 작은 마을을 오르내리는 동안 묘지들도 눈에 뜨인다. 무척이나 소박한, 아니 살림이 좀 궁색해 보이는 모빌홈 바로 옆 땅에 그 집 성씨인 듯한 '퓨게이트 묘지' 간판과 가족 묘 둘이 그 집 모습에 비해 너무나 훌륭하고 번듯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그 깊은 사연을 들어보는 기회도 오기를.


코리아라는 마을을 관통하는 길 전체에 단 하나 있는 기름 펌프 두 개짜리 주유소와 그 주유소에 달린 식료품점이다. 



그 학교가 아직도 건재한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코리아 학교의 동문회 모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다음 달 6일이니, 아직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코리아 학교 동문들이 있다면 알려 주시길. 





작은 가족 묘 외 규모가 큰 이런 마을 공동 묘지도 보았다. 묘지 이름을 보니, 백(Back)씨 성을 가진 가족 묘로 시작한 모양이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아주 가끔씩 이런 묘지를 거닐 일이 생긴다. 묘지를 둘러보며, 묘문을 하나씩 읽으며 걷노라면, 삶이란 것에 대한 만감이 교차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맥없이 허물어지며 겸허해지곤 하지 않는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람의 묘지 바로 앞, 묘지 맨 앞 줄 왼편에 대리석으로 만든, 미색 바탕에 미색 글씨로 새겨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읽히지도 않는 작은 묘지명이 내 시선을 끈다. 그 옆에 몇년 살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다른 영들도 여럿 있지만, 이 아기만큼 빨리 세상을 뜨지는 않았다. 1909년 4월 7일부터 1909년 4월 11일이니, 그 해 꽃피기 시작한 봄날에 태어나 단 나흘을 살다가 간 사내 아이의 묘다. 가슴 아팠을 부모의 마음이 그대로 읽히는 듯 하다. 




<Friday 7/31/2009, Korea, 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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