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in UAE 2012/05/11 23:39 WallytheCat
사막의 좋은 시절은 다시 막을 내렸다. 그저 아쉽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이미 날씨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일어나는 모래바람을 아쉬움과 미련으로 꾹꾹 눌러 앉혀왔건만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일주일 전쯤부터 갑자기 낮기온이 섭씨 사십여 도가 된 것이다.
수업도 없는 목요일 아침, 나의 심신은 이미 나른하게 이완이 되며 주말을 맞고 있었다. 학교에는 오전에 잠시 들러 동향을 살피는 정도면 될 것 같았다. 며칠 전, 남편이 집에 남아 있는 마지막 맥주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듬뿍 담아 캔 꼭지를 따던 게 생각났다. 비워진 곡차 창고를 채울 의향이 있다면 오후에 기꺼이 동행할 의사가 있음을 알렸다. 물론 남편은 맥주를 구하러 가고 싶었을 것이다. 동행을 겸손히 제안하는 듯한 내 의도는 너무나 뻔하다. 혹여나 그 길 위에서 낙타라도 몇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이 첫 번째 낙타는 유난히 배가 큰 것이 아무래도 임신 중인 것 같다.>
이래저래 출발이 늦어져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 되어 버렸으니, 길 위에서 낙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고 줌 렌즈 달린 사진기도 챙기지 않았다. 기대를 완전히 접으면 또 뜻하지 않은 작은 선물을 받기도 하는 법이다. 저만치 네 마리의 낙타가 앞뒤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른쪽 가장자리 도로선을 따라 느리지만 힘있게 발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고성능 신발이라도 신은 듯 가볍고 푹신하게 내딪는 걸음에는 아스팔트의 뜨거움에 대한 투정 한 점 묻어나지 않는다.
몇 달에 한 번씩 거의 비슷한 길 위에서 낙타를 만나곤 하는데,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매번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다 환해짐을 느낀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비로소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며 하늘을 나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는 국수 예찬론자인 내 친구의 마음이, 낙타를 만날 때마다 내게 고스란히 와 닿는다. 친구에게는 그 증상을, 전통적으로 표현하자면 곡기의 힘일 것이고, 요즘 유행어로 옮기자면 탄수화물 중독증일 것이라며 같이 웃어 넘겼었다. 낙타와의 조우는 내게, 내 친구의 국수 한 그릇 이상의 특별한 효과가 있는 듯 싶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짐은 물론, 또 다시 이 더운 땅 위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몇 달을 살아낼 기운까지 얻으니 말이다.
다양한 곡차와 과실차로 창고가 채워지니, 덩달아 마음도 넉넉해 진다. 친구 몇을 집으로 불러 자정까지 몇 잔 같이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졌다.
<1:40 pm, Thursday 5/10/2012, Umm Al Quwain, 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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