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여름 의식

WallytheCat 2018. 11. 21. 01:10

Peeping@theWorld/Days in Ohio 2007/08/01 12:38 WallytheCat


여름. 이 계절을 나는 매해 오하이오에서 난다. 이곳에서 보내는 여름이란 계절의 절정은 내게 옥수수(sweet corn)로 다가왔다가, 계절의 막바지 역시 옥수수가 떠나는 것으로 눈치채곤 한다. 

매해 8월이 되면... 집에 남은 가족들이 아주 느긋하고 게으르게 여름 날 오후를 보내고 있자면, 우편 배달부인 둘째 시누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시골길 이곳저곳을 차로 누비며 해야하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중간쯤에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슈메이커씨네 농장이 있다. 내가 시누이집에 있는 날이면, 시누이는 어김없이 옥수수 13개를 갈색 종이 봉투에 넣어 온다. 한 다스를 사면 꼭 한 개씩을 더 주기 때문에 그 속에는 항상 13개, 아니면 그 배수의 옥수수가 들어 있다.

그 갈색 봉투에 가득한 옥수수들을 보면 금방 모든 걸 다 잊고 행복해 진다. 작년 시세로 옥수수 한 다스에 2불 50전인가 3불인가 했으니, 행복을 사기란 또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시누이와 나는 앞마당에 옥수수들을 와르르 쏟아 놓고는, 가장 편한 자세로 주저 앉아 옥수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여름날 쨍하는 햇빛을 받아 속살을 드러내는 옥수수 알갱이들이라니. 옥수수 수염은 싱싱하게 살아나는 비단실과 다르지 않고, 노란색의 옥수수를 햇빛에 이리저리 돌리면 보일듯 말듯한 분홍빛까지 겹쳐 보이는 게, 옥수수 알갱이들은 물에서 막 빠져나온 진주알들처럼이나 영롱하다.

큰 냄비에 반쯤 부은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옥수수들을 넣어 5분이나 6분만 끓이면 먹기 좋을만큼 적당히 익는다. 밭에서 바로 따온 싱싱한 옥수수의 맛은 내게 오하이오 여름의 진수(眞髓)다. 적어도 옥수수를 먹는 순간만큼은 말이다. 



며칠 전 마켓에서 사 온 옥수수는, 비슷하지만 그 맛과 다르다. 내가 알기론 오하이오에 옥수수 철이 제대로 되려면 아직 며칠 더 남았다. 우편 배달부인 둘째 시누이한테 전화 한 번 해 봐야할 것 같다. 슈메이커씨네 옥수수가 준비되었다고 하면, 아마도 나는 오하이오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나만의 옥수수 의식을 치르러 그 시골에 가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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