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8/04/05 05:35 WallytheCat
인디아, 구루, 요가, 아슈람, 프라나, 차크라...
참, 이상한 날이었다. 이런 단어들을 그녀로부터 듣게 되다니. 그녀는 자신이 처음 인도에 가게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왜, 무엇을 계기로 그녀가 자신의,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영화 속 이야기 같기만 한 요가 수행 이야기를 내게 들이붓듯, 쏟아붓듯 하게 되었는지조차 이미 까마득한 옛날 같은 게, 몇 시간이 수십 년 같게도 느껴진다. 잠시 더듬어 이야기가 시작된 시간 바로 전으로 가는 일조차도 가능하지 않아 보였다. 이야기를 하던 곳이 어디였는지 조차도 잊었다. 쨍하게 햇볕이 든 긴 돌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마른 빵 위에 개미가 새까맣게 모여든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잡담이나 하려고, 커피 한 잔과 마른 빵 하나를 들고 그녀와 밖에 자리하고 앉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심 시간에 집에도 오지 않고 두어 시간 더, 오후 헐헐한 시간까지 합쳐 거의 다섯 시간을 그녀와 앉아 이야기를 계속 했나 보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깊어져서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게된 상황이 되었다.
거의 매일, 얼르고 달래고 협박도 섞어가며, 느릿하고 게으른 아이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곤 하던 것이 그 날은 판도가 달라졌다. 아이들이 과제를 제출하려고, 건물 안에서 사라져 버린 나를 오후내내 찾아다녀야 했다니 말이다. 그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덕분에, 가끔씩은 써볼만한 방법을 하나 우연히 찾은 셈이 되었으니. 어쨌거나 허둥지둥 서둘러 주중 마지막 오후 수업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치 그녀가 내게 막 지도를 건네주기라도 한 듯, 인도 옆 나라 파키스탄에서 만든 장미목 책상 둘째 서랍에 든 케케묵은 세계 지도 한 장을 꺼내 들고와 거실 탁자에 좌악 펼쳐놓는다. 지구 위에 궁금한 데가 생길 때마다 종종 펴보곤 하는 지도다. 지도의 접힌 모서리마다, 이제는 스카치 테이프로도 때우기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른, 커다란 구멍들이 숭숭 나 있다. 지도 어디에도 제작 연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으니, 지도가 얼마나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인지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아직도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땅덩어리에 '소련(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이라 적힌 걸 보며, 소련이 붕괴(1990년)되기 전의 것일 거라 짐작해볼 뿐이다. 그러니 대략 한 이십 년 된 지도인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 인도는 거기 있었다. 그녀의 수행처가 인도 어디쯤인지 찾아 본다.
인도, 인디아.
그녀 덕에 여기 살게 된 이후 처음으로 심각하게, 언젠가는 인도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리로 이사온 이후부터 인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만일 인도에 가 인도인들을 보고 싶은 거라면 굳이 인도에 가 그들을 만날 필요도 없다. 이곳에도 인도인들은 철철 넘쳐나기 때문이다. 사실 징허게 많다. 그런 그들에게 좀 질리기도 했던 터다.
만일 언젠가 내가 인도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영향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 생활이 정 견디기 힘들게 긁어댈라치면, 괴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그 때는 인디아로 가련다. 덕분에 도피처가 한 군데 더 늘었다.
(지도 출처: http://geology.com/world/india-map.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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