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Ohio

원주민의 날

WallytheCat 2021. 10. 12. 07:44

지금까지 10월 두 번째 월요일은 콜럼버스 날(Columbus Day)로 불리었다. 미국 모든 주의 법정공휴일은 아니며, 오하이오주 역시 각 기관이나 직장마다 재량껏 알아서 쉬거나 일을 하는 날이다. 콜럼버스 날이란 순전히 아메리카 대륙의 침략자인 유럽 백인의 입장에서 콜럼버스가 "사람이 살지 않는" 신대륙을 발견한 대단히 기쁜 날이니 기념한다는 의미였던 거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대손손 삶을 이어오던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땅을 치며 울분을 토해도 시원치 않을 참으로 비극적인 날이니, 그것을 인지하는 많은 이들에게 몹시도 불편한 기념일이 아닐 수 없다. 1977년부터 콜럼버스 날 대신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부르자는 움직임이 있긴 했으나 아직은 콜럼버스 날과 원주민의 날이 혼용되고 있긴 하다. 지난 금요일인 2021년 10월 8일, 바이든 대통령이 '원주민의 날'을 선포했다. 이를 계기로 조만간 온전히 원주민의 날로 부르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공휴일에 가능하면 일을 하지 않기로 한지라 오늘까지 내리 나흘을 쉰 셈이다. 좀 길게 쉬니 일에 관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싹 지워진 느낌이 들어 내일 아침부터 출근한다는 게 은근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오늘 일을 하는 줄 알고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차라리 일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오후 네 시쯤 되었나, 프랭키가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혹여 전에 왔던 청설모가 다시 왔나 싶어 살짝 내다보니 역시나 같은 청설모였다. 몇 주 전 해 질 무렵에는 입안에 열매를 하나 물고 자기 몸 하나 숨기기에 딱 좋을 넓적한 가지에 납작 엎드려 있길래 혹시 숨어서 혼자 먹이를 먹으러 왔나 싶었다. 오늘은 입안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데, 몸이 힘들어 보이는 게 역력하다. 숨을 힘들게 쉬며 독특한 신음 내지 신호를 반복적으로 내며 엎드려 있다. 청설모가 내는 그런 소리를 처음 들었다. 털이며 꼬리의 상태를 보니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았다. 얼마나 살았을까. 내내 이 집 뒷마당에서 살았던 걸까. 궁금해 찾아보니 암컷은 13년, 수컷은 8년 정도가 평균 수명이라 한다.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으나 사는 동안 부디 아프지 말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한참을 그리 엎드려 있던 청설모는 어디론가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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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모, Monday 10/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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