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아랍, 미용실의 의미

WallytheCat 2018. 11. 20. 18:14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6/07/05 21:58 WallytheCat


난 누군가가 '오랜 단골 미용실에 간다'고 하면 몹시 부럽다. 남편이나 나나 주체할 수 없는 역마살로 한 군데 정착할 수 없으니, 그런 미용실이 있기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사실 한군데 오래 정착하지 않아서 좋은 미용실에 갈 수가 없다는 건 이 나라에서만큼은 정확한 이유가 아니다.



아랍의 미용실은 거의 다 금남의 집이다. 가끔 호텔 미용실같은 데서 일하는 레바논 남자 미용사가 있는 곳도 있으니 예외도 있는 셈이지만 말이다. 이 나라에서 미용실이란,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하는 데가 아니다. 머리의 스타일보다는 구불구불 긴 아랍 여인들의 머리를 헨나(Henna)나 염색약을 이용해 예쁜 색깔로 물을 들이는 일, 털이 많은 아랍 여인들의 이곳 저곳의 털을 제거해 주는 일, 메니큐어나 페디큐어 등에 촛점을 맞춘다. 파마를 한다는 미용실도 없을 뿐더러 파마를 할 줄 아는 미용사도 없다. 미용사로서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파마를 할 줄 모른다고는 안 한다. 파마라는 걸 하면 머리가 다 망가져 뽑히기 때문에 안 한다고 말한다.




<이건 흔히 볼 수 있는 관광객용 엽서다. 이렇게 손에 곱게 헨나를 한 여인들이 흔히 보인다. 이렇게 적갈색이 돌아야 천연 헨나. 손등에 하면 그리 따갑진 않다. 이걸 오래 보존하려면 설거지도 않고 그림같이 앉아 지내야 한다.>

<이건 몇년 전 젠지바에서 일없이 빈둥거릴 때 리조트 여직원이 이쑤시개로 내 손에 그려 준 아프리카 식 헨나. 이렇게 검정색이 진한 건 예쁘긴 하지만 휘발유같은 첨가제를 넣는다고 했다. 이거 하고 한나절 손등에서 불 나는 줄 알았다.>



내가 사는 캠퍼스에도 미용실이 하나 있는데, 머리를 단발로 자르는 일도 잘 못한다. 그런 상황인지라 덥수룩해진 머리가 거슬려도 거길 선뜻 갈 수가 없다. 사람들마다 제발 거기 가지 말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 사실 내 머리를 내 손으로 잘라볼까 가위를 들었다 놓았다를 몇 번 하다가 결국 그만 두었다. 거울을 보고 제 머리를 자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있다가 문득, 얼마 전 우연히 본 'Blow Out'이란 TV 프로그램 생각이 난다. (2-3년 전 쇼인 듯) 그 쇼의 주인공인 조나단(Jonathan)은 미국 LA 지역, 특히나 헐리우드 등에 '조나단'이란 이름의 미용실을 여러 개 운영하는 유명한 미용사다. 처음에 그 쇼를 보며, 요즘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쇼가 유행이라긴 하지만 미용실 모습까지 저리 적나라하게 보여줘야하나 싶어 채널을 바꿀까 하다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들어 계속 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계속되는 쇼인 모양인데 어쩌다 두어 번 보게 된 거라 앞뒤 얘기는 잘 모른다. 조나단은 고등학교를 마친 후부터 미용 일을 시작한 모양이다. 샴푸 보이로 시작해 지금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제법 준수한 외모, 유명 인사인 덕에 데이트하려는 여자들이 줄줄이 있지만 본인 스스로는 정말로 따뜻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걸 아직도 꿈으로 갖고 있는 사십 대 남자다. 그러나 일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니, 아무래도 현재로선 그게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조나단은 나름대로 완벽주의자다. '나름대로'란 말의 의미는, 스스로 완벽해지려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는 있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는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사는 삶처럼 보이니 하는 말이다. 일에 관한한 그는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해서, 보고 있자면 안쓰러워서 쓴웃음이 날 정도다. '조나단'이란 미용실 체인점이 여러 개 있는 데다, 이런 저런 패션쇼에도 직원들과 함께 가 머리 일을 하고, 헐리우드 스타들의 집에도 방문 출장을 간다. 게다가 백만여 불도 넘는 돈을 들여 '조나단' 브랜드의 머리 관련 크림 등을 개발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 결과물이 나왔는데, 세상의 어떤 헤어크림보다 좋아야 할 '조나단 크림'이 제대로 나와주질 않아 결국엔 역정을 내며 벽에다 내 던지는 소동도 낸다.)



조나단이 무슨 일을 할 때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특히, 그가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을 때 그의 모습은 완전 삼매경에 빠진 모습 그 자체다. 아무리 중요한 미팅이 있어도 머리를 자르는 순간에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한 번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두세 시간을 기다리다 모두 입이 댓발로 나오고 머리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회의를 하는 장면도 보여준다. 물론 그 회의가 부드럽게 진행될리 만무다.



미용실 손님들이 조나단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다. 조나단은 우선 일류 미용사다. 그가 머리를 자르고, 매만져 마무리를 해 놓으면 완전 사람이 달라 보인다. 한 신인 모델이 조나단한테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복장을 제대로 갖추자 몇 시간 전 그 모습이 아니다. 물론 미화 500불이 훨씬 넘는 금액을 지불하는 것에 좀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여자 손님들을 위한 배려가 수준급이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세련된 언행으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조나단 스스로도 고백하지만 그에게는 사업 수완같은 게 부족해 그의 헛점을 아는 사람들의 술수에 넘어가 여러 번 당하기도 한 모양이다. 자꾸만 사세를 확장하고, 수 백 명의 직원들 문제로 골치를 썩고, 불면증과 불안증에 시달리고... '사람이 어찌 저렇게 산단 말인가' 할 정도다. 그는 정기적으로 신경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바깥 세상에서의 강한 모습 따위는 다 버리고 펑펑 울면서 인생에 대한 하소연을 한 시간쯤 하고 나오기도 한다.



내가 조나단 보기를 멈출 수 없었던 건, 그의 허물어진 듯 약한 모습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마음이 짠했던 이유에서였을 거다. 조만간 조나단이 사세를 축소해 일을 줄이고, 그의 너무나도 팽팽해 끊어질 듯해 보이는 긴장의 강도를 늦추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어 삶을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러지 않고 계속 긴장한 채 완벽한 척 하는 가면같은 삶을 강행군 한다면, 급기야는 속이 병들어 썩은 고목처럼, 어느 순간 퍽 쓰러져 버릴지도 모르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그를 우연히 길에서라도 만나게 된다면(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Hey, Jonathan, loosen up, man!"



그나저나 어디가서 머리를 자르나... 내 상황에 조나단의 가위질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좌우 길이가 같은 단발로라도 잘라줄 수 있는 미용사라면 달려 가리라. 이 다음에 한국에 가면, 속성 미용 과정에라도 등록을 해, 머리자르기, 파마하기를 배워 볼 참이다. 어디 좋은 곳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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