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UAE

시공을 초월한 네 존재의 이(齒) 이야기

WallytheCat 2018. 11. 21. 13:06

Peeping@theWorld/Days in UAE 2007/11/18 04:33 WallytheCat


1. 몇주 전.
왈리의 동거인이자 보호자인 미국 오하이오주 둘째 시누이로부터 온 이메일 한 통. 만 16세가 넘은, 그러니까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칠십 대 중반쯤 된 왈리 할아버지께서 며칠째 식사를 잘 하지 못하는 걸 목격하고 병원에 데려갔더니, 이 하나에 충치가 심해 뽑아야 한다며 여지없이 뽑아낸 후 입원 치료를 했단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우는 사자가 되려다 태어나기 바로 전 마음을 바꿔 너구리를 닮은 고양이로 태어나기로 작정했던 왈리. 야생 사자였다면 사냥감을 잡아 죽이고, 물어 뜯는 먹이화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송곳니 네 개 중 하나를 뽑아야했다니, 사자로 치자면 야생 생활의 은퇴, 곧 죽음 아닌가. 차라리 집고양이로 태어나길 잘 했는지도 모르겠다, 왈리야. 사자가 아니니 이 하나 뽑아 내면, 까짓거 딱딱한 사료대신 몰랑몰랑한 깡통 음식을 먹으면 그 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 서글프긴 하지, 그치, 왈랴?

어쨌거나, 밤이면 자주 사냥을 나가곤 하던 왈리의 체면이 말이 아닐 건 불을 보듯 빤하다. 내년 여름에 봐도, 그가 내게 새앙쥐를 잡아 선물로 줄 수 있으려나는... 의문이다. 그래도 나는 왈리가,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주길 바란다.


2. 일주일쯤 전.
저녁 식사를 하다가 아무래도 잡곡밥 속의 돌을 씹은 것 같은 느낌을 세 번이나 받았다. 돌이 아니고 옛날 옛적에 한국서 때워 넣은 금니가 접착력을 잃고 빠진 것.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오래되니 접착제가 접착력을 잃었다.

다행히 꿀꺽 삼키질 않아, 치과에 가 다시 붙였다. 긴 대화를 나누려는 치과의의 기미가 보이자, 나는 짐짓 못알아 들은 척, 묻지도 않고 치료 의자에 앉아 치료를 서둘렀다.

오래된 금니를 다시 제자리에 붙이고는 선선한 아침 공기를 한껏 즐기며 혼자 식당 밖에 내다 놓은 탁자에 앉아 긴 시간 아침 식사를 즐겼다. 다시 붙인 금니로 우아하게 음식을 씹으며... 아, 그 여유로움, 선선해진 사막의 초겨울 공기, 바람, 잘 자라 흐드러지게 피어 넘치는 부겐빌리아꽃, 그 여유로움에 여유로움을 더하려는 듯 느릿느릿 배회하는, 흰 건물과 대조를 이루던 검은 고양이. 며칠도 더 지난 그 풍경은 내게 아직도 좋은 꿈이요, 환상이다.


3. 며칠 전.
대한민국 육군 장병으로 복무 중인 조카가 제대를 앞두고 부대에서 넘어지는 사고가 나 송곳니 등 이 두 개가 부러졌다고 했다. 생니가 부러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내가 불의를 보면 잘 참지 못하는 성격(사실 잘 참는다)이라고 생각한 언니가 정확한 사건의 정황을 잘 설명해 주지 않는 걸로 봐서 뭔가 부당한 처사가 있는 게 읽혀진다만, 어쩌랴, 내 몸이 그들과 천 리쯤 떨어져 있는 걸...


4. 십년 전 쯤, 조카 그러니까 시아버지의 손녀딸 결혼식이 가까웠던 즈음.
당시 고양이 나이 아닌 인간 나이 만 83세의 젊은 나이셨던 울 시아버지, 고양이 왈리와 비슷한 이유로 이를 하나 뽑으셔야 했다. 손녀딸 결혼식 때의 미관과 미용을 위해 당시 미화 $1,000쯤 하는 그 이 해 넣으시라는 자손들의 제안을 당당히 뿌리치신 그분의 이유란 건 이랬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그냥 이대로 살다 곧 죽을란다."

결과는... 십 년이 넘은 지금, 시아버지의 연세는 만 93세를 바라본다. 젊은 우리보다 더 건강하시다. 문제의 이 하나는 여전히 빠진 채지만. 그 이 하나 없으신 채로 20년쯤 나이 차이나는 젊은 여자 친구도 있으시다. 우리, 세상의 '세'자도 모르는 어린 것들의 낭비 가득한 충고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생각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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