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in Korea

오블의 아름다운 인연, 부석사에 영글다.

WallytheCat 2018. 11. 21. 17:07

Peeping@theWorld/Days in Korea 2008/01/06 22:50 ()



전자메일로 받은 영주 부석사 사진을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으로 깔고 보니 그날의 행복감이 나도 모르게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한국에 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내 일정을 얘기하자 이틀만 더 한국에 머물 수 있으면 아랍에서 오는 귀한 손님과 만날 수 있다고 그녀는 날 유혹했다. 우리 공장의 12월은 하루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늘 사이버 상에서만 대화를 주고받던 지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데야 이틀이 대수겠는가^^



전날 밤 멀리 아랍으로부터 날아온 왈리님과 마침 방학식을 마친 너도바람님 그리고 다음날 출국해야하는 왕언니의 절묘한 시간 맞추기 미션은 겨울의 부석사를 보러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서울에서 부석사가 만만찮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내공 9단의 너도바람이 자신 있게 추천했다. 부석사가 처음인 해외동포를 위한 과감한 결정인 것이다. 피곤한 장거리 운전을 마다않는 그녀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와 너도바람, 왈리와 너도바람은 각기 귀국 때마다 만난 탓에 구면이지만 왈리와 난 초면이다. 나를 픽업하러 온 너도바람의 승용차 앞에서 함께 온 왈리와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온라인에서의 인연이 오프라인의 인연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처음 만난 왈리님은 그러나 전혀 초면 같지 않다. 오블에서 서로 근황을 알고 지낸 탓이리라. 오프라인의 구체적 추억 만들기로 당첨된 부석사는 우리의 그런 인연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름다운 인연의 여인네들을 하늘도 돕는 것일까? 도로는 막힘이 없었고 우리의 수다 또한 막힘없이 흘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전형적인 산골 풍경은 낮게 드리운 잿빛 하늘이 만들어 주는 근사한 수묵화로 우릴 반겼다. 우리 같은 해외동포가 만나기 어려운 풍경을 하늘은 또 그렇게 선물해 주셨다.^^




일주문을 향해 오르는 길은 겨울 산사의 고즈넉함을 예고했다. “다른 곳은 갈 때마다 변화가 심한데 부석사는 늘 한결 같아요.” 그녀가 추천하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산사에 들면 천 년 전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게 될 거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도란도란 얘기하며 지나가는 몇 안 되는 관광객 역시 다른 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보다 조용조용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며 점수 따기 위해 학창시절 열심히 외웠던 무량수전을 실제로 마주하니 감격스러움에 목이 멘다. 무량수전 앞에서 해 바라기하며 앉아있어도 한없이 좋다는 너도바람은 그러나 처음 온 우리를 위해 여기저기 안내하고 설명하기에 분주하다. 운전하느라 피곤했을 건데... 그저 또 감사한 마음만 가슴 한편에 새겨둔다.




유명세를 타는 부석사 일몰은 아쉽게도 감상하지 못했다. 날이 너무 흐려서 이미 해님이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몰을 포기하고 우린 대웅전에 들었다. 무념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나도 모를 평화가 깃들인다. 신 앞에 마주 앉는 것. 그것은 내가 어느 종교를 가지고 있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저 겸손히 나를 내려놓으면 그 뿐.



법고소리에 무념의 상태에 있던 우린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누각의 법고는 조용하다. 어디서 울린 것일까? 어둑해지는 산사를 어슬렁거리는 우리에게 절 사람은 저녁식사를 권한다. 이미 공양 시간이 지났음에도 염치없이 공양 간에 들었다. 아랍과 중국에서 왔다고 우리를 소개하자 동지에 쑤어 놓은 팥죽을 보너스로 챙겨주신다. 이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뿐이다.




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에 서둘러 공양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산사는 이미 어둠에 덮였고 스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순서에 의해 예불의식을 올린다. 어둠 깔린 산사의 마당 한 편에 서서 우리도 그 경건한 의식을 지켜본다. 사바세계로 퍼져나가는 마지막 장엄한 종소리를 대웅전에서 목탁으로 받으며 예불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그 경건함에 자연스레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탄절 이브에 기독교 신자라 자처하는 번뇌 많은 한 여인네가 중생을 굽어보는 아미타불 앞에 조용히 무릎을 굽히고 앉아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엄히 꾸짖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법도 한데 그저 여인의 마음은 평온하기만 하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우상이란 결코 종교의 다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는지. 




고즈넉한 산사의 선방에 두 다리 쭉 펴고 둘러앉아 동짓달 긴긴밤을 새운다 한들 여인네들의 이야기 샘이 마르기야 하랴만 우리네 삶이 그런 시간까지는 허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아미타불이 그 또한 덧없는 욕심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어둠이 포근히 감싼 고적한 산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떠나옴이 못내 아쉬운 걸까? 자꾸만 뒤돌아보는 우리를 휘영청 밝은 달이 빙그레 웃으며 따라온다. 우리의 보폭에 맞춰 적막한 밤길을 온몸으로 밝히며 배웅하는 동지의 보름달을 주차장에서 간단히 이별하고 우린 다시 분주한 일상을 향해 내달린다. 아름다운 인연의 열매를 한 아름 가슴에 안고..^^

** 사진은 왈리님과 너도바람님이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날 참으로 행복했어요.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