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6일 월요일, 노동절이라 쉬었다. 노동계의 일원으로서 다른 날은 몰라도 신성한 노동절만은 하루 쉬어야 예의 아닌가 싶어 챙겨서 쉬는 날이다. 또 경험상 명절이나 휴일에 일한다고 해봐야 삐그덕거림의 연속으로 그리 유쾌하지도 생산적인 날이 되지도 않을 게 뻔하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2021년 9월 2일 금요일, 새 냉장고를 영접했다. 명절이나 휴일에는 무슨 이유를 내세우든 세일을 해서 호객을 하려는 게 상술이니 이번 노동절 세일을 놓친다 해도 가전제품 세일이야 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왠지 이번 노동절 세일을 빌미로 지난 몇 년간 벼르던 냉장고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긴 얘기를 짧게 하자면, 헌 냉장고는 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내 집으로 걸어 들어와 지난 16년간 내 부엌 공간을 차지하고 서 있었다. 전혀 원치 않던 디자인의 냉장고여서 쓰는 내내 불평을 했던 것 같다. 몇 년 전, 전기 보드 고장으로 물 나오는 기능이 멈추었다. 사람 불러 수리를 하려면 몇백 불은 깨질 테니, 차라리 조금 더 고장 나기를 기다렸다 새 냉장고를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물 나오는 기능을 가진 냉장고를 가진 집들마다 한참 후에는 결국 그 기능이 작동을 멈추어 방치되어 있는 걸 자주 본다.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한 것이어서, 이미 품질보증 기간을 넘긴 지 꽤 된 상황에서 생돈 몇백 불씩을 지불하고 그 기능을 고쳐 쓰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얼음 만드는 기능은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었지만 얼음 쓸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두터운 냉동고 문과 가뜩이나 기다랗게 좁은 냉동고 실내에 쓸모없이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얼음 시스템이 늘 거슬렸다. 냉동고 맨 아래 위치한 플라스틱 바구니는 걸핏하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레일을 빠져나와 덜컥 바닥으로 떨어져 사람을 놀래키기 일쑤였다. 지난 16년 세월, 나의 애정은커녕 구박덩이로 서 있던 냉장고를 보내자니 살짝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던 게 사실이다.
나는 아주 단순한 디자인의 냉장고를 원했다. 프렌치 도어에 냉동고가 하단에 있는 새 냉장고에는 물 나오는 기능 없이, 얼음 만드는 기능만 있다. 몇 년 후면 고장이 나거나 구식이 될 인공지능이니 와이파이 같은 자질구레한 기능도 원하지 않았다. 새 냉장고를 영접하는 때가 팬데믹 시절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도 종종 내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답시고 또다시 물이 나오는 기능에다 큰 얼음통을 장착한 모델로 구매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팬데믹 탓에 집안에 사람을 들이지도, 나가서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 상황이 두 해째 지속되면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번 경우뿐 아니라 전반적인 나의 물건 구매 때의 심리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다른 고려나 배려는 다 배제하고 대체로 나 자신의 충족에만 집중한다고나 할까. 어떤 면에서 생활에 군더더기가 줄어 간결해진 것 같아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자면, 인간 관계 결핍에서 오는 현상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주에 사는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다가 노동절 세일을 해 오래된 냉장고를 바꿨다는 얘기를 하니, 자기네 냉장고는 19년이 되었는데, 냉장고 안에서 물이 새어 커다란 타월을 넣어 쓰고 있는지가 몇 년 되었다는 거다. 냉장고 시장 조사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으니, 이 참에 내가 구매한 것과 똑같은 걸로 사겠다는 거다. 게다가 한술 더 떠 냉장고, 전자레인지, 그리고 오븐 달린 스토브까지 세 가지를 세트로 사 10%의 추가 할인도 받을 거란다.
어쨌거나, 단순한 디자인 덕에 냉장고 공간이 훨씬 넓어져 가뜩이나 먹을 것 없는 냉장고 안이 더 텅텅 비어 보인다. 조만간 장을 좀 봐야 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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