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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쌓기, 두 번째

집 옆에 만만한 크기의 꽃밭 겸 텃밭인 밭이 하나 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넓어 그 폭이며 넓이를 대폭 줄였던 게 칠팔 년은 된 것 같다. 그 밭을 둘러놓은 두어 단 짜리 돌담이니 담이라 할 것도 없지만 어느덧 그마저도 경계가 모호하게 허물어져 정리 정돈이 필요해 보였다. 두어 주 전 주말, 큰마음먹고 일을 시작했다. 시작하고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돌들을 걷어내던 중 돌과 돌 사이 작은 뱀 하나가 보인다. 한여름에는 종종 개미집이 나타나 기겁을 하곤 했지만, 뱀이라니, 전혀 예상치도 못한 복병이었다. 뱀은 제 몸이 드러나자마자 재빠르게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일을 시작했으나, 같은 뱀을 다다음 돌 밑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두 번째 마주했을 때 비로소 뱀의 몸 색..

Days in Ohio 2022.10.04

십년의 숙원, 돌담을 새로 쌓다

제주도에 현무암이 흔해 현무암 돌담이 흔하듯, 내가 사는 곳에는 석회암(limestone)이 흔해 석회암 돌담이 흔하다. 석회암의 강도가 3-4이니 단단한 돌은 아니지만 집 외장, 벽난로 외장, 담장 등에 많이 쓰인다. 석회암은 작은 조개껍질이나 물고기 등의 화석으로 가득해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오래된 듯 허물어져 가는 석회암 돌담을 어디 다른 곳을 지나다 보았다면, 고색창연하니 멋스럽다며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이 내가 사는 테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주위 환경을 돌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말이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담을 보며 심란하여, 헐고 새로 반듯하게 돌을 쌓는 상상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그런 세월이 아마도 십 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겨울은..

Days in Ohio 2022.08.15

Honey Locust

목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차를 후진하려다 보니 집 앞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가 옆집 마당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간 밤에 비도 바람도 없던 것 같은데 제법 큰 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말이 나뭇가지지 웬만한 나무 한 그루쯤 되어 보이는 큰 것이었다. 가려던 길을 멈추고 일단 가지를 끌어다 나무 밑으로 옮겨다 놓고 출근길에 나섰다. 저녁에 퇴근 후 다시 보니 크긴 컸다. 잎이라도 좀 마르게 며칠 놓아두었다가 장작용으로 패던가 해야 할 것 같다. 집 앞에 우람한 몸집을 하고 선 이 나무는 오하이오에서 흔하게 보는 것으로, '허니 로커스트'라 부른다. 한글로는 '미국주엽나무(콩과 주엽나무 속 낙엽 교목)'라 한단다.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왕성하게 자라는 중으로 보이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

Days in Ohio 2022.08.05

앞뜰에 여름꽃

퇴근 후 집 앞을 둘러보니 이십여 그루의 비비추(Hosta)에 모두 꽃이 핀 게 보인다. 눈에 띄게 화려한 꽃은 아닐지언정 모두 동시에 꽃을 피우니 마치 연보라색 등이라도 밝힌 듯 집 앞이 환하다. 벌도 딱 한 마리 날아들어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별로 가꾸지도 않은 뜰에서 죽지도 않고 매해 알아서 싹 틔우고 쑥쑥 자라서 꽃까지 피워 주니 늘 고개 숙여 감사하는 마음이다.

Days in Ohio 2022.07.19

블로그 이사 두 번째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다음 블로그로, 다시 티스토리 블로그로 이전을 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서버의 서비스 폐쇄 결정에 의한 것이니, 다소 서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사 갈 방을 마련해 주며 방을 빼라니, 대성통곡하던 첫 번째의 경우와 달리, 큰 불평 없이 일단 이사를 하긴 했다. 다만 예전에 티스토리에 개설해 놓은 계정으로의 이전이 불가능해 그 계정을 폐지한 후 닷새를 기다렸다 이전을 해야 했다. 블로그 이전 후 스킨 설정부터 편집까지 단장을 해야 하는데, 남의 옷 얻어 입을 때처럼이나, 선택 가능한 10개의 스킨을 다 적용해 보았지만, 그 10개 중 입맛에 딱 맞는 게 없다. 레이아웃이 괜찮아 보이는 건 홈 화면에 글쓰기 버튼이 없는 것도 있다. 헐~! 티스토리의..

Days in Ohio 2022.07.16

마지막 인사

지난주 금요일, 둘째 시누이의 남편(아주버님)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분의 죽음의 이유가 단순한 노환이 아닌 암이라 부르는 병마와 오랜 기간 싸우고 버티다 가신 것이라 나를 포함한, 장례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만감이 교차했음은 물론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병원에서 하라는 모든 항암 치료를 빠짐없이 받았고, 더 이상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할 때부터 집에서 가능한 치료와 진통제로 버티셨다. 점점 쇠약해지고 형편없이 몸무게가 줄어가는 모습이, 가끔씩 들러 보는 내게도 고통으로 다가오는데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버티는 본인은 어떨까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매 두 시간마다 모르핀을 투여받으며 거의 종일을 주무시는 그분이 잠시 깨었을 때 이야기를 나눴다. 몸의 고통에 비해 너무나 또렷한 의식과 정신..

Days in Ohio 2022.06.04

도시 거위들

아침 출근길에,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는 거위 10마리를 만났다. 넷은 어른, 여섯은 새끼다. 아마도 두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모양이다. 눈치를 보며 몇 번 멈칫거리다 차가 멈추자 확신을 갖고 사차선 도로를 건너기 시작한다. 선두에 둘, 후미에 하나, 자동차 쪽으로 하나, 어른 넷이 새끼들을 완벽하게 호위한 모양새다. 거위가 당차고 똑똑한 건 대충 알았지만 오늘 거위 열 마리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존경심도 더해야겠다고 다짐한다.

Days in Ohio 2022.06.02

봄날 비 온 후

아침엔 쌀쌀하고 낮엔 선선하던 봄 날씨가 일주일 전 난데없이 뜨거운 한여름 날씨로 변했다. 엘리뇨 현상이란다. 꽃이 피었다 말다를 반복하더니 훅하게 더워진 날씨에 주변의 식물들도 어쩔 수 없이 땅을 밀고 나와 서둘러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앞마당의 라벤더, 호스타는 잎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라일락 꽃도 피는 중이다. 몇 년 전 심은 키 작은 소나무들도 조금 더 자라 땅바닥을 기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일주일 전 잡풀을 뽑아 정리한 후 훠이훠이 뿌린 200개의 난쟁이 수레국화 꽃씨도 벌써 싹이 난 게 아닌가. 꽃씨 2,000개라면 모를까 200개라야 뿌릴 때 보면 몇 안 된다. 작년에 하수도 공사 후 맨땅 상태였던 마당에 정성스레 뿌린 잔디 씨도 가냘프지만 싹이 난 게 보인다. 주위의 ..

Days in Ohio 2022.05.16

아마포 방석 여섯 개

쓰지도 않고 오랫동안 갖고 있던 목화솜 요 두 개 중 하나는 절 방석 세트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방석 네 개로 변신을 했다. 지난 몇 주 주말마다 꼼지락거리며 조금씩 작업을 하다 오늘 드디어 바느질을 끝냈다. 제법 두툼한 요는 재봉용 가위로 자르기에는 한계가 있어 좀 더 강력한 절단 가위로 잘라야 했다. 솜은 면으로 속껍질을 만들어 씌우고, 겉감은 예전 아랍에 살 때 사 둔 미색과 살구색 아마포가 제법 있어 그걸 잘라 만들었다.

Days in Ohio 2022.05.01

달걀 여섯 다스

우연히, 한 시골 마을서 농사를 짓는다는 분을 알게 되었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자주 나오니 배달쯤 어렵지 않다길래 그럼 달걀 여섯 다스만 부탁한다고 했더니 정말 바로 다음 날 내 일터까지 배달을 해주셨다. 저녁에 집으로 가져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꾸러미 하나를 열어 보았다. 그걸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지는 게 아닌가. 늘 사다 먹던 달걀들은 흰색 아니면 갈색 단 두 가지 색이었던 반면, 이 달걀들은 크기도 모두 제각각인데다 색깔도 회색, 옥색, 살구색부터 진한 갈색까지 알록달록 다양해 보는 눈이 다 즐거웠다.

Days in Ohio 20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