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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 파티 #13

둘째 시누이 주최 독립기념일 파티는 올해로 13번째였나 보다. 패널로 인쇄한 단체사진 12장이 파티장 왼쪽 입구 후식이 놓인 탁자 위 벽에 고스란히 전시된 걸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매해 사진이 하나씩 늘어가니 내년에는 13장의 사진이 걸려 있을 거다. 세상에, 가기 싫다 싫다 하면서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해 빠진 걸 빼고, 나는 도합 열두 번이나 그 자리에 있었구나. 시누이가 그 모임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준비했을까를 뻔히 아니 차마 외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시누이가 또 내 남편을 얼마나 듬직하게 여기는 지를 아는지라 내가 나서서 실망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자면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들여다 보여, 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

Days in Ohio 2023.07.04

금토일월화

다음 주 화요일이 독립기념일 공휴일이라 사이에 끼는 월요일까지 합해, 금요일인 오늘부터 닷새를 쉬게 되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몇 날 며칠 혼자서도 잘 노는 체질이니 집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둘째 시누이께서 연중행사로 벌이시는 그 '독립기념일' 파티가 바로 코앞인 내일로 다가와서다. 내게 밥과 김치를 파티에 내어 놓으라는 주문을 하셨다. 음식이 넘쳐 나는 그곳에 나의 소박한 밥과 김치가 꼭 필요하다기보다는, 혹여라도 내가 그 자리에 안 나타날까 봐 나름 머리를 써 내게 숙제를 준 거라는 혐의가 짙다. 늘 가기 싫은 그 파티에 갈 때면, '연세 드신 시누이가 이 연중행사를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으시랴' 싶어 훗날 후회하지 말고 꾹 참고 가자는 마음을 앞세운다. 오늘 김치를 담그며..

Days in Ohio 2023.07.01

늦봄 혹은 초여름 언저리, 붓꽃

붓꽃 구근을 심었던 게 한참 전이라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에도 없다. 해마다 꽃의 수가 줄더니, 올해는 손에 꼽을 만큼 몇 안 되는 꽃이 피었다. 흰색 꽃이 몇 피더니, 그 다음날 노란색 꽃 딱 하나, 또 그 다음날 옆으로 누운 채 보라색 꽃 하나가 피었다. 흰꽃은 청초해 보이고 노란 꽃은 든든해 보이지만 그중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훔치는 건 역시나 보라색 꽃이다. 붓꽃이 고운 꽃이긴 한데, 그 큰 꽃을 지탱하는 길고 가는 꽃대를 보자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어쨌거나,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마당의 꽃구경 덕에 그나마 마음 흔들리지 않고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으니, 늘 고마운 존재들이다. 작년 11월 18일 둘째 시누이댁에 갔다가 얻어 온 도기 항아리다. 내 기억으로 그 댁 벽난로 앞..

Days in Ohio 2023.05.25

돌담 쌓기, 세 번째

집 주위에 규모가 각각 다른 돌담이 모두 넷 있다. 집 앞쪽에 있는 것들은 작년에 다시 쌓는 작업을 마쳐 앞으로 당분간은 잊고 살아도 될 것 같다. 뒷마당 돌담의 상태가 내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그날 사실 밖에 나갔던 건 그 돌담을 어떻게 해보려던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무성하게 자란 정체 모를 노란 꽃 무더기를 제거하려고 나간 것이었다. 밤새 비가 온 후라 풀 뽑기 딱 좋은 날이었다. 잔잔한 크기의 노란 꽃은 세상 화려한 게 예쁘긴 했지만 주위 다른 식물을 점령할 위험도 있으니, 뽑는 게 맞다고 봤다. 늘 그렇듯이 풀이나 좀 뽑을 요량으로 가볍게 시작한 일은 가볍게 끝나지 않았다. 풀을 다 뽑자 드러난 돌담의 상태는 차마, 망설임 없이 휙 돌아서서 작업용 장갑을 벗어 두어 번 툴툴 털며 별일 아니라..

Days in Ohio 2023.05.22

날 풀리다

다시 겨울로 되돌아갈 듯 그리 쌀쌀하더니 어제부터 날이 풀렸다. 날 풀리고 해가 나니, 어정쩡 멈춰있던 튤립들도 어찌 더 활짝 꽃을 피워보려고는 하나 이미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던 지라 부서지고 깨진 꽃들 투성이라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다. 내가 원하던 보랏빛꽃은 딱 한 송이가 피었는데, 비바람에 꽃대가 꺾여 마치 할미꽃 같다. 관상용 꽃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농사이기라도 했다면, '올 튤립 농사는 정말 폭망 했구나' 싶어 절망했을 거다.

Days in Ohio 2023.05.06

쌀쌀한 봄, 그래도 꽃을 피우려

지난 닷새 내내 비도 매일 내리며 으슬으슬 추웠다. 낮 최고기온이 화씨 45도(섭씨 7도)쯤 되었던 것 같다. 이틀 전인 월요일 밤에는 비가 눈으로 변해 내릴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5월에 눈을 다 보겠다 싶었는데, 눈은 내리지 않았다. 두어 주 전부터 수선화는 사라져 가고, 튤립이 올망졸망 자라며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바람 불고 추운 날이 계속되니 튤립이 그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머물러 있는 게 보인다. 모두 보라색이나 혹 그 비슷한 색인줄 알고 심었던 튤립이 예상치 못한 알록달록한 색들이라서 좀 놀랐다. 게다가 새로 나온 꽃을 대여섯 개 사슴이 먹어치우기까지 해 심히 마음이 아프다. 수선화는 먹지 않더니, 튤립은 사슴이 먹을 수 있는 꽃인 모양이다. 활짝 핀 튤립도 곱..

Days in Ohio 2023.05.04

어영부영 봄

밝은 노란색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다른 꽃이 피기엔 아직 이른 때, 칙칙한 회색 앞마당을 단번에 환하게 밝혀 주니 나도 모르게 자꾸 노란색 수선화 무리에 눈길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수선화를 봄의 전령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몇 주 그렇게 등불같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던 수선화가 시들기 시작하자 주위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노란 수선화가 거의 다 시들 즈음 난데없이 흰색 수선화가 딱 한 송이 피었다. 군계일학이란 사자성어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여쁘기도 하여라. 비죽비죽 땅을 비집고 올라오던 튤립에도 꽃망울이 맺힌 게 보인다. 며칠 후면 스물 다섯 송이의 튤립을 보게 되겠지. 보라색인 줄 알고 심었지만 또 어떤 색의 꽃들이 피어나게 될지는 일단 나와봐야 알 것 같다.

Days in Ohio 2023.04.24

긴 의자 덮개

왕년에 새것이었을 때는 현관 앞에 두고, 앉아서 신발을 신거나 벗는 용도로 쓰이다가, 좀 낡은 상태가 되자 버리기에는 아까워 지하실로 내려 보내 재봉질 때나 쓰이는 벤치다. 지하실로 내려 보낼 때만 해도 좀 낡은 정도였는데, 내가 모르던 사이 지하실에서 고양이들에게 박박 긁히기 딱 좋은 가구였던 모양이었던지, 세상에나, 네 모서리마다 발톱에 긁힌 자국이 현란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마침 넉넉하게 사 둔 인조가죽이 있어 덮개를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네 귀퉁이 모두 똑같은 길이에 90도 각도를 딱딱 맞추고 늘어짐 없이 반듯하게 재봉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너 번 박았다, 뜯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대충 괜찮아 보이는 시점이 도래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차피 구석마다 또 긁힐 것은 뻔한..

Days in Ohio 2023.03.21

수선화

수선화, 매년 봄이면 앞마당 구석에 나지막이 겨우 몇 송이 피어 봄이 오기 시작했음을 알리던 꽃에 불과했다. 매년 보던 그 꽃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수선화임을 알았을 때, 꽃의 생김새가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생뚱맞아 보여 살짝 배신감까지 드는 거였다. 영문 이름(Daffodil)의 발음은 또 수선화(水仙花)란 어여쁜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또 어찌 그리 안 어여쁜 느낌을 주는 것인지, 소리 낼 때마다 한 호흡 멈춘 다음 말하게 된다. 작년 늦여름, 상점에서 튤립 구근을 살 때 단지 그 옆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내 손에 들게 되었다. 나도 왜 덥석 수선화 구근을 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덕에 구근 50개로 땅속에 있던 수선화는 2월 중순에 이미 정신없이 잎을 내기 시작하고 ..

Days in Ohio 2023.03.12

윈드차임

뒷마당 어디쯤, 묵직하게 깊은 소리를 내는 윈드차임 하나를 두고 싶은 마음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긴 했다. 얼마 전 아마존을 뒤져 보니 파이프 외경이 30.5mm 되는 것들은 가격이 제법 비쌌다. 하나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윈드차임 하나를 만들자고 알루미늄 파이프 등 재료를 여기저기서 구하는 것도 어수선한 낭비 같아 방법은 아닌 듯싶었다. 재료만 사놓고 그걸 또 언제 만들지는 기약이 없을 수도 있으니, 역시나 아니다 싶었다. 한데 며칠 전 장을 보러, 한 달에 한두 번쯤 들르는, 대형 마트에 갔더니 파이프 외경이 38mm인 듬직해 보이는 윈드차임이 떡하니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가격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혹여나 묵직한 윈드차임이 유리창으로 날아와 유리가 깨지는..

Days in Ohio 2023.03.06